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잊자, 잊자 잊어버리자~. 이렇게 다짐을 해도 잊혀지지 않고 오히려 또렷해지는 지난날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대롱대롱 매달리는 아련함의 세월이 인생사다. 그러다가 끝내는 못 잊은 그 무엇을 가슴 방에 품고 하늘 여행을 나선다. 이런 사연을 얽은 노래가 진미령이 부른 <미운 사랑>이다. 남몰래 기다리다가 가슴만 태우던 밤, 이런 사랑을 품은 사람의 가슴 방은 늘 텅 비어 있다. 한평생 매겨놓은 월세금도 전세금도 없는, 그리움만 그득한 무상(無償)의 사랑방이다.

‘라라라라란 라라라 라란~’으로 감흥의 물결을 잘랑거리게 하는 해금 전주곡에 눈물이 먼저 그렁거린다. 노랫말과 가락이 축축한 삼베 자락 같은 오선지에 돌돌 말려 있는 듯하다. 남몰래 사랑의 끈을 붙잡은 여인의 서글픈 절창. 절절한 가사와 애절한 가락은 가슴속에 한 뭉텅이 멍 덩어리를 안고 살아가는 중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노래 발표 당시 55세이던 진미령(본명 김미령)의 서글픈 목청에 걸친 이 사연은, 가수 본인의 인생곡 같은 절창이다.

남몰래 기다리다가/ 가슴만 태우는 사랑/ 어제는 기다림에 오늘은 외로움/ 그리움에 적셔진 긴 세월/ 이렇게 살라고 인연을 맺었나/ 차라리 저 멀리 둘 걸/ 미워졌다고 갈 수 있나요/ 행여나 찾아올까 봐/ 가슴이 사랑을 잊지 못해/ 이별로 끝난다 해도/ 그 끈을 놓을 순 없어/ 너와 난 운명인 거야// 이렇게 살라고 인연을 맺었나/ 차라리 저 멀리 둘 걸/ 미워졌다고 갈 수 있나요/ 행여나 찾아올까 봐/ 가슴이 사랑을 잊지 못해/ 이별로 끝난다 해도/ 그 끈을 놓을 순 없어/ 너와 난 운명인 거야/ 그 끈을 놓을 순 없어/ 너와 난 운명인 거야.(가사 전문)

이 노래를 2020년 5월 30일 송해 선생 헌정 무대, 불후의 명곡에서 내일은 미스터트롯 진(眞) 임영웅이 불러서 송해(본명 송복희. 1927년 해주 출생) 형님을 눈물짓게 하였다. 어제는 기다림으로, 오늘은 외로움으로 살려고 인연을 맺었나. 유행가 노랫말은 가끔 상처의 씨앗이 되어 원곡 가수들의 삶 속에 현실로 이행되기도 한다. 가슴이 사랑을 잊지 못해 이별로 끝이 나는 경우다. 진미령은 1993년 9세 연상 전유성과 결혼하여 18년간 속살을 부비면서 살다가 2011년 이혼했다. 그리움에 적셔진 세월, 이렇게 살라고 인연을 맺었나 차라리 저 멀리 둘걸. 이런 것을 두고 운명(運命)이라고 하나, 아니 숙명(宿命)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오스트리아. 1856~1939)는 ‘말이란 형상화되는 물질 에너지로서 끊임없이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 그것은 이루어진다.’고 했다. 긍정적인 말을 계속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 행복한 말을 계속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된다. 된다고 계속 말하는 사람은 그 일이 분명히 된다. 어떠한 경우에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지혜이다. 우리 만남, 너와 나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이것이 인과응보(因果應報)다. 우리 만남은 운명과 숙명을 합친 필연(必然), 신명(神命)이다. 신이 미리 정해놓았다고 하는 사주팔자와도 연계된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유행가 노랫말을 짓는 작사가들은 운명을 역행하거나, 숙명에 굴복하는 어휘들을 오선지 가락에 걸칠 때는 이를 유념해야 한다. 유행가 노랫말이 가수나 애청자의 인생길이 될 수도 있으니까.

노랫말이 씨가 된 가수는 많다. <세상은 요지경>을 불렀던 신신애는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잃었다. <0시의 이별>을 부른 배호는 1971년 11월 7일 0시에 30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서른 즈음에>를 불렀던 김광석은 이 노래를 부르고 31세의 인생을 마감했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불렀던 가수 차중락은 29세의 젊은 나이에 낙엽처럼 떨어졌고,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를 열창하던 선망의 젊은 가수 김정호는 인생 초반(33세)에 암으로 요절했다. <이별>을 불렀던 패티김은 작가 길옥윤과 이별했으며, 김상희는 <멀리 있어도>를 부르면서 남편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어 몇 년간 떨어져 있게 되었다. 일엽스님(본명 김원주)의 일생을 얽어는 <수덕사의 여승>을 부른 가수 송춘희(1939~.)는 결혼을 하지 안했었는가 못했었는가. 유행가 가사는 굴곡진 인생의 예고편인가, 후속편인가.

<미운 사랑>의 주인공 진미령은 1958년 서울 출생이다. 그녀는 화교(華僑)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인 아버지 김동석의 딸이다. 어머니(진옥례)가 화교이니 절반의 설담(說談)이다, 예명 진미령은 엄마의 성을 따랐다. 2019년 미스트롯 진(眞) 송가인(본명 조은심, 진도 출생)이 어머니 송순단(진도씻김굿 전수조교, 무형문화제 72호)의 성씨를 따른 것과 같다. 김미령의 아버지 김동석은 1923년 함경북도 명천 출생,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에 참전한 예비역 육군 대령이다. 1961년 예편(豫編, 전역하여 예비역으로 편입)하여 삼척군수·강릉/속초시장·제주도지사 직무대행·목포시장·수원시장·이북5도위원회 함경북도 지사 등을 역임했다. 그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말기이던 1942년 중국에서 대한 광복군 소위로 입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일본 패망)된 시기까지 복무를 하였다. 해방광복 직후이던 1945년 10월 귀국, 1949년 육사 8기(특 8기)로 졸업했다. 졸업 당시 임관계급은 육군 대위. 이후 1950~1953년까지 6.25 전쟁, 3년 1개월 1,129일 동안 참전하였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후 1959~1961년까지 특무부대와 방첩부대를 거쳐 1961년 7월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이 김동석의 딸 김미령은 1975년경부터 노래를 부르다가 1977년 제1회 MBC 서울가요제에서 <소녀와 가로등>으로  데뷔하였다. 그녀가 진미령으로 부른 노래는 <지난 이야기>·<하얀 민들레>·<혼자가 좋아>·<님의 목소리>·<이제는 안녕> 등이 있다. 그녀가 부른 노래 제목들도 청감(聽感)부터 스산하다. 미운 사랑의 맞은편에는 고운 사랑이 있으려나,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걸친 수많은 노래 중에서 미운 사랑과 고운 사랑을 모티브로 한 노래는 몇 대 몇일까. 고운 사랑보다 미운 사랑을 얽은 곡조가 더 많고, 대중들의 인기 온도계를 더 뜨끈뜨끈하게 한 이유는 뭘까. 유행가는 우리네 인생사다. 오선지 위에 드러누운 유행가 노랫말은 우리가 사는 인생 곡절이다.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