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스산한 갈바람이 마른 낙엽을 쓸어가고, 쌩쌩거리는 눈바람이 옷을 벗은 나무들이 촘촘하게 서 있는 능선을 널름널름 넘보는 12월이다. 비망록에 촘촘하게 적었던 2021년 한 해의 소망을 뒤돌아본다. 가을의 꼬랑지가 보일 듯 말 듯 저만치 멀어져 간다. 이 가을바람이 북녘에서 출발하여 남녘으로 향하면서, 추풍령(秋風嶺)을 넘으면 우리나라는 전국이 겨울로 접어든단다. 옛사람들의 말이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추풍령, 가을 바람고개다. 《고려사지》에는 금산군(김천)에서 35리에 위치한다 했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황금소 추풍역이라고 했다.

이 역에는 대마 2필·중마 2필·소마 10필이 역무와 관련한 자산이었단다. 조직 인원은 역리 32명·노(奴) 3명·비(婢) 1명이었다. 역장은 종6품 찰방. 이곳의 역참은 마전(馬田)을 경작하여 운영하였고, 나라에서 운영하는 숙박업소이던 원(院)과 봉수대를 관리했다. 그 시절 바다나 강물 길을 관리하는 수참(水站)에서는 말 대신 도선(渡船, 강을 건너는 배)을 관리했다. 이러한 역참제도가 폐지된 것은 고종 32년 1886년이다. 원은 관영과 사영으로 구분했으며, 사영(私營)은 주점 혹은 주막이라고 했다. 1966년, 이 역마제도 습속을 모티브로 한 대중가요가 탄생한다. 남상규의 <추풍령>으로.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 가는/ 추풍령 구비 마다 한 많은 사연/ 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보는/ 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 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고개// 기적도 숨이 차서 목메어 울고 가는/ 추풍령 구비 마다 싸늘한 철길/ 떠나간 아쉬움이 뼈에 사무쳐/ 거치른 두 뺨 위에 눈물이 어려/ 그 모습 어렸구나 추풍령 고개.(가사 전문)

가을바람 고갯마루에 올라선 나그네의 도포 자락이 펄럭거린다. 저만치 눈 아래 달려가는 열차의 기적소리도 숨차다. 거치른 두 뺨에 눈물방울 그렁거리는 저 처사여~ 그대의 지향점은 어디이신가. 추풍령은 문경새재와 함께 경상도에서 서울로 가는 대표적인 길목, 김천시 봉산면과 영동군 추풍령면(황금면) 사이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나누어지는 곳이다. 고개 정상의 물방울이 동쪽으로 흐르면 낙동강, 서쪽으로 흐르면 금강이다. 추풍령은 해발 표고 221m. 이름의 명성보다는 꼭대기 높이가 낮은 감이 든다. 추풍령의 또 다른 이름은 백령(白嶺)이다. 옛날 추풍령 인근 지역에서 메밀 농사를 많이 지어 새하얀 메밀꽃이 고갯마루를 뒤덮었었다. 그래서 붙여진 흰 고개다. 한때는 황금소면이었다. 황금소면 지명은 황금소라는 찰방(察訪) 관리 숙소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란다. 이 황금은 영동군 추풍령면 사부리 황보와 금보마을의 머릿글을 합친 것이란다.

이 노래 작사가 전범성은 이 가사를 추풍령 고갯마루에 서서 지은 듯하다. 그가 마주한 고갯마루는 김천 쪽이었을까, 영동 쪽이었을까. 이 추풍령에는 나라의 긴급한 상황을 전파하는 봉수대가 있었다. 추풍령 눌의항산(訥伊項山) 봉수대가 그것이다. 이 봉수대는 영동 봉수로의 하나인데, 영동 봉수로는 조선 봉수로 제2거(동래-남해-금산-서울 남산·목멱산)가 통과한 경로다. 추풍령면 눌의항산은 744.5m다. 눌의산이라고도 하며, 주민들은 선계산 누리산이라고도 부른다. 그 시절 우리나라에 이런 봉수 경로는 크게 다섯 경로였으며, 함경도 두만강 변 경성 근처·평안도 압록강 변 근처·부산 태종대 근처 다대포·전라도 여수 순천 등등이 그 시발지였다. 남산봉수대는 최종 도착점으로 경봉수대(京烽燧臺)라고 명명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다대포에서 남산까지 12시간 만에 경보를 알렸단다. 38개 봉수대가 20분 이내로 경보 전달된 셈이다. 조정은 엉성했지만, 경보 전달체계는 살아있었음이다.

이러한 역사적 현장을 품은 <추풍령> 노래는 백영호가 곡을 지어서 남상규가 부른다. 대중들의 인기를 등에 업은 이 곡은 이후 배호·나훈아·이미자 등이 리메이크한다. 노래가 명곡이면 리메이크 가수가 늘어나고, 가수가 인기를 끌면 모창 가수가 득실거린다.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 가던 곳. 기적도 숨이 차서 목메어 울고 가던 그곳은 지금 우리나라 고속도로 제1호인 경부선 추풍령휴게소가 있다. 추풍령면 소재지에서 김천 방향으로 조금 가면 추풍령 노래비도 있다. 돌기둥 비(碑)의 한자 추풍령(秋風領)은 노래 앨범 재킷 글씨처럼 고풍스럽지만, 사실 1988년 올림픽 때, 성화 봉송을 기념하여 영동군이 건립한 현대의 것이다. 추풍이란 지명은 가을 추(秋)와 바람풍(風)을 합친 말인데, 이는 역사 속에서 추풍역리, 추풍역으로 등장한다.

이 추풍령은 서울과 부산 사이 한가운데 고개라고 하여 ‘반고개’라고도 불렸다. 추풍역은 조선시대 파말마가 이어 달리던 역이다. 파발마(擺撥馬)란 변방(지방)으로 가는 공문서의 신속한 전달을 위하여 운영한 통신수단이다. 1597년(선조 30)부터 1895년(고종 32)까지 400여 년간 운영된다. 이 파발제는 중국 송나라에서 시행되었고, 송나라는 북방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남하해 오자 이에 대비하기 위해 군사첩보기관 파포(擺鋪)를 설치하였는데, 전달 방법은 보체(步遞), 급각체(急脚遞), 마체(馬遞) 등으로 나누어졌고, 조선은 말(馬)을 이용하였다. 이 역을 역참이라고도 하였는데, 참(站)은 제주도 방언으로 거리를 나타내는 말이고, 표준어로는 리(里)에 해당된다. 추풍령은 고종 10년 1906년에 경북 금산군(지금 김천)에서 충북 영동군으로 편입되었다. 이 노래는 1965년 개봉된 영화 <추풍령> 주제가다.

당시 28세였던 남상규는 1939년 청주 태생. 그는 1960년대 부산에 있던 공병부대에서 복무할 때, 부산 MBC 방송국이 주최한 진로소주 직장대항 노래자랑에 군부대 대표로 출전하여 2등에 입상한다. 이때, 작곡가 백영호에게 선발되어 당시 전계현·이수련·김동원 주연 영화 <스타탄생>의 주제가를 불러 가수로 데뷔하였다. 전역 후 1962년 <등대>·<남행열차>를 불러 히트한다. 1965년에는 김진규·이경희·최남현 주연 영화 <추풍령> 주제가를 불러 가요계 정상에 오르고, 같은 해 영화 <나그네 밤거리> 주제가, <철수야 가거라>를 불렀으며, 1970년 <고향의 강>으로 다시 한번 인기를 얻었다.

<추풍령> 노래는 우리나라 고속도로 제1호, 최초의 휴게소가 생긴 추풍령고개를 품은 유행가다. 경부선 고속도로는 1968년 2월 1일 기공, 2년 5개월 만인 1970년 6월 말에 완공하여 7월 7일 개통을 했다. 이것은 세계고속도로 건설 역사상 최단기간의 공정 기간이며, 서울~부산 418㎞ 중간, 서울 기점 214㎞ 지점인 추풍령에 높이 30.8m의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우리 대중가요 100년사에 도로를 모티브로 한 노래는 <김포가도>·<7번 국도>·<돌아가는 삼각지>·<비 내리는 명동거리> 등이 있다. 유행가의 모티브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역사의 실타래가 노랫말 솔기마다 얽혀있다.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 가는 추풍령 고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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