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신의칙 들어 노동자 추가 임금 배척하면 안돼”
경제계 “기업경영에 큰 부담…비슷한 소송증가 우려”

올해 후판가격의 급등으로 3분기까지 3200억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낸 현대중공업이 노조가 제기한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 소급분에 포함해 지급해야 한다’는 소송에서 패하면서 최대 6000억원의 추가 임금을 지급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임단협 갈등으로 크레인을 점거한 현대중공업 노조원. 사진/연합뉴스
올해 후판가격의 급등으로 3분기까지 3200억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낸 현대중공업이 노조가 제기한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 소급분에 포함해 지급해야 한다’는 소송에서 패하면서 최대 6000억원의 추가 임금을 지급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임단협 갈등으로 크레인을 점거한 현대중공업 노조원. 사진/연합뉴스

올해 후판가격의 급등으로 3분기까지 3200억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낸 현대중공업이 노조가 제기한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 소급분에 포함해 지급해야 한다’는 소송에서 패하면서 최대 6000억원의 추가 임금을 지급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대법원 3부는 16일 현대중공업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 상고심에서 사측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소송은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재산정한 법정수당과 퇴직금 등의 차액을 청구하면서 개시됐다.

대법원은 "기업이 일시적 경영상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사용자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경영 예측을 했다면 그러한 경영상태의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며 "향후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들어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현대중공업의 상여금은 2개월마다 100%씩 총 600%에 연말 100%, 설·추석 명절 50%씩을 더해 모두 800%였다. 회사는 이 '800% 상여금'을 전 종업원과 퇴직자에게 일할 계산해 지급했지만 명절 상여금(100%)은 재직자에게만 지급했다.

노동자들은 상여금이 정기성(정기적인 지급), 일률성(일정한 조건을 만족한 모든 노동자에게 지급), 고정성(노동자가 노동을 제공했다면 업적·성과 등과 무관하게 당연히 지급) 등 통상임금의 성격에 들어맞는 만큼 800%에 해당하는 소급분을 회사가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가 지급해야 할 4년 6개월(2009년 12월∼2014년 5월)치 통상임금 소급분의 총 규모는 4000억원(노조 추산)에서 6000억원대(사측 추산)로 추정된다.

9년 동안 이어진 재판의 쟁점은 신의칙이었다. 통상임금 소급분을 줘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면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칙을 위반한 것이므로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1심은 신의칙을 부정해 노동자들의 손을 들었고, 2심에서는 신의칙이 적용돼 사측이 승소했다.

이날 대법원은 현대중공업 소송과 동시에 진행된 현대미포조선 노동자들의 통상임금 사건도 유사한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현대미포조선의 이번 판결 임금은 868억원 가량이다.

이와 관련 산업계는 유사한 소송이 잇따르지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날 논평에서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경기회복 지연 등으로 국가 경쟁력이 약화한 상황에서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는 이번 판결로 예측하지 못한 인건비 부담이 급증해 기업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한경연은 "통상임금 소송이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임금협상 과정에서 노사 간 형성된 신뢰를 먼저 고려하고, 부가적으로 경영지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경영상의 어려움을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통상임금 논란의 본질이 입법 미비에 있는 만큼 신의칙 적용과 관련한 구체적 지침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대법원은 사용자가 경영 상태 악화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근거로 기존 신의칙 판단 기준을 더욱 좁게 해석하며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경총은 "대법원은 해외의 경제상황 변화와 이에 따른 영향을 모두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판단하고 있지만, 오늘날 산업은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코로나19 등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위기와 변화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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