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검정 호랑이의 해가 동녘에 환하다. 대한민국의 동창(東窓) 독도에서, 간절곶에서, 정동진에서, 서울의 허파와 심장 같은 목멱산 너울에서. 새해의 바램(소망)은 얼마나 많고 간절한가. 보건의료 환경이 쾌청해지면 좋겠다. 국민들이 던지는 불덩어리(投票)도 자유 대한민국을 위하여 활활 타오르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온 나라가 노래하며 춤을 추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이런 사회적인 소망을 얽은 노래가 안언자 작사 김현우 작곡의 <노래하며 춤추며>이다. 이 보물 같은 노래를 계은숙이 절창을 했다. 이 노래는 40여 년 세월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오다가 21세기 트로트 열풍을 타고 다시 인기 역주행을 하고 있다. 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 기성 가수 김수찬이 열창을 하고, 트롯 전국체전에서 고등학생 윤서령이 간들간들 무대를 휘저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호강시켰다. 이 노래를 발표할 당시 계은숙은 18세였다. 충북예술고에서 경기민요를 공부하는 트롯 전국체전 윤서령도 18세다. 끼를 타고난 요정 계은숙은 지금 어디에서 노래하며 춤을 추고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모여서 흥겨웁게 춤을 추려는 새해가 밝았는데...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함께 모여서/ 흥겨웁게 춤을 춥시다/ 괴로운 일 슬픈 일/ 모두 잊어버리고/ 이 순간을 노래 불러요/ 오고 가는 눈길 속에/ 사랑이 넘치고/ 그대와 같이 느껴보는/ 행복한 기분/ 지난 일은 생각을 말고/ 춤을 추어요// 사랑하는 연인들/ 서로 마주 보면서/ 흥겨웁게 춥을 춥시다/ 괴로운 일 슬픈 일/ 모두 잊어버리고/ 이 순간을 노래 불러요/ 오고 가는 눈길 속에/ 사랑이 넘치고/ 그대와 같이 느껴보는/ 행복한 기분/ 지난 일은 생각을 말고/ 춤을 추어요// 사랑하는 연인들/ 서로 마주 보면서/ 흥겨웁게 춤을 춥시다/ 괴로운 일 슬픈 일/ 모두 잊어버리고/ 이 순간을 노래 불러요/ 이 순간을 노래 불러요/ 이 순간을 노래 불러요/ 이 순간을 노래 불러요.

괴로운 일 슬픈 일 모두 잊어버리고 흥겨웁게 오늘을 살아내자. 이 순간을 노래 부르자. 대지(땅)를 밟고 선 오늘이 우리네 인생이다. 나의 운명, 손금에 새긴 글자 풀지 못할 내 운명, 그것은 아모르 파티이다. 망치를 든 철학자, 신은 죽었다고 한 니체(1844~1900)는 설파했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고. 이것이 <노래하며 춤추며> 노래가 전하는 메시지다. 작사가 안언자의 주창이다. 이 주창에 간들간들 멜로디를 얽은 김현우는 한국가요창작협회 의장단 국제위원장이다. 오래 흘러온 노래는 오래 흘러간다. 원곡 가수의 유한한 인생 여로에 걸렸다가 오랜 세월 인기 바람에 치렁거리는 것이 대중가요다. 그래서 가인(歌人)은 무대를 떠나가도 그가 남긴 노래는 대중들의 가슴팍을 뒤흔든다.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 1980년 계은숙이 히트한 나이트클럽 단골 곡 <노래하며 춤추며>가 그중의 하나다.

<노래하며 춤추며>는 가사도 가락도 단출하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노래하며 춤을 추자는 메시지. 반복되는 노랫말에 도돌이 멜로디, 이것이 인기의 비결 명품이다. 이 노래가 나온 1980년은 서울의 봄날이었다. 1960년대 후반 체코의 민주화 운동 프라하의 봄에 엇된 우리나라의 민주화 물결 풍자 말이다. 권위와 낭만의 충돌점 대마초사건(1975.12.3.)으로부터 5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다. 대중문화예술인들의 입에 물렸던 재갈도 슬슬 풀리고, 손발을 얽어 묶었던 방송출연금지의 끈도 느슨해지던 시절이다. 3S(섹스·스포츠·스크린) 정책의 깃발 아래 통행금지도 풀렸다. 스크린 속에 유희의 물결을 흥건하게 했던 영화 <애마부인> 류가 어두컴컴한 극장 안을 굼실거렸다. 백악관·맘모스·국빈관 등등 나이트클럽과 카바레 간판들이 네온싸인 불빛에 휘감기면서 지나가는 기객(嗜客, 어떤 일을 몹시 즐기는 사람)들의 소매자락을 끌던 시절이다.

대중가요는 탄생 시점의 사회상을 품고 있다. <노래하며 춤추며>는 그 시절 나이트클럽 문화로 통하는 오솔길을 아물고 있다. 그 시절 나이트클럽은 20~30대들이 주로 찾는 곳. 브라스 캄보밴드에 헤비메탈·전자록·힙합 등의 장르를 연주하며, 계은숙 같은 섹시컬한 연예인들을 무대에 올려서 흥을 달구었었다. 우리나라에 나이트클럽은 해방광복 후 미군정기와 6.25 전쟁기를 거치면서 도입되었고, 1950~60년대는 로큰롤, 1970~80년대에는 디스코텍·콜라텍, 1990년대는 록·힙합·테크노 등을 연주하였으며, 이후 개별적인 특성을 가진 클럽으로 진화 혹은 퇴화했다.

<노래하며 춤추며> 원곡 가수 계은숙은 1962년 충남 서산 출생. 15세에 럭키 샴푸 광고모델을 거쳐 1978년 가수로 데뷔하였고, 1980년 MBC 10대가수가요제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일본인 작곡가 하마 케이스케에게 발탁되어 일본에서 데뷔하였다. 특유의 허스키한 보이스가 매력인 그녀는 한국 가수 최초로 NHK 홍백가합전에 7년 연속 출연하였으며,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계은숙 팬클럽 회장을 맡았던 사실은 그녀의 일본에서 인기를 가름할 만한 에피소드다. 그녀가 고교 시절에 사이클 선수를 했던 사실을 알고 있는 팬은 얼마나 될까. 그 시절 다른 팀 선수와 다툼이 계기가 되어 여러 번 전학을 한 종착지가 서울 천호동에 있는 성덕여상고이다. 일본과 우리나라를 오가며 대중들의 인기를 누리던 그녀의 인생도 빛과 그림자의 멍이 든 파랑(波浪)을 머금고 있다. 그녀는 1992년 3세 연상의 사업가와 조용기 목사 주례로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결혼을 하지만 1998년 각자의 길로 돌아섰다. 계은숙의 인기곡은 <배 타고 간 님>, <총각님>, <보고픈 걸 어떡해>, <다정한 눈빛으로>, <바람은 왜 불었나요> 등이다. 1994년 장윤정의 히트곡 <어머나>도 윤명선의 손끝에서 만들어질 때는 일본에서 활동 중인 계은숙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이어서 주현미에게 제공했으나, 노래 제목을 바꿔주면 부르겠다는 조건을 내세우는 바람에 취입하지 않았다. 노래와 가수도 연분(緣分)이 있음이다. 트롯 전국체전에서 <노래하며 춤추며>를 열창한 윤서령은 2003년 청주 출생, 청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트로트가수 윤태경의 딸이다. 충북예술고에서 경기민요를 전공하였으며, 청주 <무심천 벚꽃가요제>, <제천 박달가요제>, <MBC 편애중계> 등에서 입상을 한 유행가요계의 유망주다.

안언자 작사가와 김현우 작곡가는 우리 대중음악계에 백년해로(百年偕老)하는 원앙부부의 푯대이다. 얼마 전 강남의 가로수길에서 신설동으로 작사 작곡의 아지트도 이전하여 다시 꾸몄다. 성좌엔터테인먼트. 성좌(星座)는 별자리, 별처럼 반짝거리는 대형 가수를 품은 자리라는 의미다. 이곳에서 다시 백 년을 이어갈 국민 애창곡이 탄생하길 빈다. 안언자·김현우 부부의 합작 명품은 <노래하며 춤추며>, <다정한 눈빛으로>, <연정>, <기다리는 여심>, <필요합니다>, <사랑을 느낀 것일까>, <잊으려는 마음>, <말해버렸네>, <잊지 말자 하더니>, <만나러 왔습니다>, <가는 길>, <비>, <잊으려는 마음>, <떠난 뒤에 남은 것은>, <어떤 만남>, <밀밭 길의 추억>, <철부지 사랑>, <혼자라고 느낄 때>, <무엇을 생각할까요>, <내 마음은 사철나무>, <버스 정류장>, <꽂을 닮은 너>, <철부지 사랑> 등이다. 이중에서 <밀밭 길 추억>은 2021년 12월 20일 가요무대에서 허인순이 열창을 하여 대중들의 가슴팍을 적셨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대중가요 작사 작곡 부부는 안언자·김현우, 양인자·김희갑, 정은이·남국인, 이경미·이현섭, 이수진·설운도 등이다. 부사부곡(婦辭夫曲)이다. 내자는 노랫말을 얽고, 외자는 곡을 엮는다. 2022년 사랑하는 자유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이 삼삼오오로 모여서, 노래를 하며 흥겨웁게 춤을 추기를 빈다. 괴로운 일 슬픈 일 모두 잊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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