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울다가 지친 송가인이 금강산을 그리워한 날은 몇 해이던가. 그녀의 목청에 매달린 한의 무개는 얼마나 될까.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목소리의 연못에서 솟구치는 비련곡성(悲戀曲聲)이 또 터져 나왔다. 민족 동질성과 이념의 상극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우리나라, 1천만 이산가족의 서러운 한은 언제쯤 풀리려나. 휴전선을 대칭으로 한 남북한 8천만 민족의 염원, 평화통일의 방정식이 풀릴 날은 언제쯤 오시려는가. 이러한 한과 사연을 얽은 노래가 송가인의 <비 내리는 금강산>이다. 아~ 그리운 고향 산천이여, 피멍이 들어 응어리지도록 그리운 혈육이여~. 눈물과 한숨과 빗물에 젖은 금강산이여~.

비에 젖은 금강산이 한 맺혀 우는데 / 흐느껴 외쳐 봐도 목 놓아 불러 봐도 / 대답이 없네 / 고향 땅 그려보며 지새운 세월 / 울다가 지친 날이 그 언제던가 / 떠나올 때 눈물짓던 어머니 모습 / 헤매 도는 불효자식 / 불러나 주오.

노랫말 1절 끝자락에 매달리는 중간대사를 어이할꼬. ‘어머니 살아생전 보고픈 맘이/ 그 모습이 이제는 점점 흐려져만 갑니다/ 우리 엄니 보고파 울며/ 나 홀로 잠든 밤이 몇 날 몇 해였던가/ 꿈속에서나 다시 만날거나/ 보고픈 우리 어머니~’ 

송가인의 목청이 그렁거린다. 커럭커럭 울컥거린다. 한을 품고 넘실거리는 강 물결 같다. 먼 옛날 신파극 <홍도야 우지마라>(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OST)를 연상하게 한다. 이처럼 세월의 강을 따라 흐르는 대중들의 감흥은 우리가요 100년사에 도도하게 흐른다. 창가에서 유행소곡으로 신민요로, 예술가요에서 유행가 대중가요 전통가요로 천이되는 동안, 공통된 맥락은 한을 흥으로 넘실거리게 하는 감흥이 열쇠였다. 그래서 노랫말에 모티브 메시지를 더하는 오프닝 대사, 중간대사, 엔딩 에드립이 생멸했었다. 2022년 송가인의 목청에 걸린 <그리운 금강산>의 중간대사가 더욱 절절하게 울리는 것은 이런 경향과 사조의 끈을 엇대었기 때문이다.

고향 땅 그려보며 지새운 세월 / 울다가 지친 날이 몇 해였던가 / 이제는 기억 속에 멀어져 가네 / 저녁달도 홀로 지는 이국 하늘에 / 헤매 도는 불효자식 불러나 주오.

<비 내리는 금강산> 노래는 두 단어가 골간이고, 이를 모티브로 한과 그리움을 전하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어머니와 고향’을 기저로 ‘그리움과 불효자’를 대칭 사설했다. 먼 옛날 원숭이들은 높은 나무의 가지에서 가지로 공중으로 날아다니며 열매를 따 먹었다. 그들(유인원)이 땅으로 내려와 두 발로 걷기를 시작하면서 영역(營域)이 생겨났다. 이 공간을 기준으로 하는 땅(지역)이 고향의 바탕이다. 그때부터의 사람들을 호모사피엔스라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의미다. 오늘날까지 지구를 살아 낸 이들을 300억여 명이라고 추산하는데, 이들의 가슴 속에 공통된 단어가 고향과 어머니란다. 그래서인가, 이 노랫말을 얽어낸 금나영·최송학·최고야의 가슴팍 속내가 궁금하다. 그들 중 누군가는 이산가족의 후예가 아닐까. 여기에다 우리민족의 감흥과 경취(景醉)의 첫 번째 공감 매체로 꼽을 수 있는 금강산을 오선지 가락 위에 드러눕혔다. 비가 내려서 흠뻑 젖은 감흥에 한을 조롱조롱 매달고 있는 봉우리와 기암절경~.

이 산은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으로 불린다. 북위 38도에서 39도 사이에 걸려 있는 1만2천봉, 그중에 제일봉인 비로봉은 해발고도가 1,646m다. 산 이름 금강은 불교의 불퇴전(不退轉), 즉 ‘물러나지 않는 진리를 향한 굳은 마음’을 뜻한다. 동서로 40㎞, 남북으로 60㎞이고 휴전선을 기준으로 제일 동쪽이 명사십리 바다 끝자락 구선봉이고, 그와 마주하고 있는 까치봉 고황봉이 휴전선 남쪽이다. 이 비경에 더한 가칠봉(加七峯)은 양구군 해안면 일대의 도솔산(1,148m)과 가리봉(1,519m) 등이다. 이들 7봉우리를 더해야 비로소 1만2천봉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그러니 금강산은 남과 북을 잇는 지형의 대동맥 태백의 형제임이 분명하고, 우리네 감성의 응어리임을 그 누가 부인하리요. 이 금강산을 매체로 오고 가던 남북한 고향길은 2008년 7월 11일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다시 막혀버렸다. 해방광복과 6.25 전쟁 휴전 이후 가로막혔던 녹슨 철조망 틈으로 배시시 열렸던 쪽문이 다시 닫혀버렸고, 금강산 자락 너럭바위 위에는 푸른 이끼가 피어나고 마르기를 거듭하고 있다. 이 마른 이끼에 비가 내린다. 그 빗소리를 작사가가 예술 감흥의 귀로 들은 듯하다. 그래서 노래 이름패를 <비 내리는 금강산>으로 붙였으리라.

어머니~ 하고 울다가 지친 날이 해방광복으로 치면 77년, 6.25 전쟁 휴전으로 치면 69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노래를 지은 작품자들과 송가인은 말한다. ‘이산(離散) 혈육의 상봉(相逢)과 자유로운 고향 왕래 당위와 필연을 외칠 때가 바로 지금이고, 마지막 시기’라고. 그렇다. 우리대중가요 100년사에 이런 설움을 머금은 노래가 얼마나 많은가. <흘러온 남매>, <가거라 38선>, <대동강 편지>, <평양 아줌마>, <서울에서 평양까지> 등등 가락마다 소절마다 눈물 자국이 흥건하다. 아~ 산이 막혀 못오시나요. 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 다 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건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 길, 밤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 38선을 탄한다. 그 세월에 매달린 한이 이 노래 <비 내리는 금강산>의 모티브이고 메시지이다.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동광동 40계단, 그 계단 층층대에 앉아서, 금강산을 그리워하며 우는 실향민의 한은 언제쯤 풀릴까. 이북으로 가는 고향길이 틀 때까지 국제시장 거리에서 담배 장사를 하면서라도 살아 볼 요량이었던 그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송가인, 가인이어라~. 가인(歌人)의 목청에 걸친 노래는 가일(歌一)이 된다. 일등 노래로 훠얼~ 훨 난다. 1986년 진도 출생 범띠 가시내, 본명은 조은심이다. 그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무속인 송순단의 딸이다. 중학교 2학년부터 판소리를 사사받았고, 광주예술고·중앙대 음대에서 공부한 정통파다. 그녀의 스승은 목포판소리 명창 박금희다. 그로부터 수궁가와 춘향가를 사사 받았다. 그래서인가, 진도민요경창대회에서 일반부 우수상(한국문화예술위원회장상)을 받았다. 광양시 제1회 광양남해성판소리 경연대회에서 일반부 대상도 받았다. 제22회 목포국악경연대회 일반부 대상도 받았다. 여기까지가 그녀의 국악 경연대회 이력이다. 이후부터는 그녀의 목청에 유행 가락을 걸쳤다. 대중성과 통속성에 엇댄 발길 돌림이다.

2010년 전국노래자랑 진도군편 최우수상, 연말결선에서 우수상을 받는다. 그리고 2012년 <산바람아 강바람아>, <사랑가>로 대중가수로 데뷔를 했다. 이때까지 그녀는 조은심이었다. 그후 2017년부터 송가인이란 예명을 사용했다. 어머니 성씨 송(宋)+가인이다. 이 이름으로 2019년 미스트롯에서 1등, 진(眞)을 했다. 홍자와의 중간대결에서 패배했었지만, 부활했다. 그리운 인생길, 한 많은 인생길~ 패자가 다시 부활 하는 매커니즘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러한 패자 부활은 개천에서 용이 날아올라 성공에 이르는 날개와 사다리를 펼쳐 주는 일만큼 귀하다. 송가인의 절창은, 신명창창(神命唱唱) 허공지성(虛空之聲)이다. 운명과 숙명을 합친 신명(神命) 곡조다. 듣고 보고, 또 듣고 들어도 더 듣고 싶은 허공을 가르는 가인이다. 그녀의 팬카페는 가인, <AGAIN>이다. 금강산에 비가 내린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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