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대중가요 유행가에서 노랫말이 귀한가 멜로디가 더 빛나는가? 대중들의 영혼은 노랫말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몸통은 가락에 쉽게 반응한다. 노랫말이 나의 삶을 대변하고, 내가 노래 속의 화자로 화(化)하여 한을 흥으로 치환하여 주기 때문이리라. 1985년 조용필이 절창한 대곡(大曲), 5분20여 초를 토크 멜로디와 가창으로 이어간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음유하여 보시라. 이 노래는 오프닝이 빠른 탬포의 토크 멜로디로 열린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에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호(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 한 줄기 연기처럼 / 가뭇없이 사라져도 /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 묻지 마라 /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이 노래가 발표된 1980년대 중반 조용필은 대중가요계 1대 100의 걸물이었다. SBS 골든디스크를 수상하고 난 뒤, 모든 상을 고사(固辭)하던 시기와 맞물린다. 이때 새 노래를 내민 작품자가 양인자·김희갑 부부다. 그들이 조용필에게 내민 가사지는 A4지 절반, 이를 받아들고 고민을 한 작곡가가 양인자의 남편이다. 그래서 이 노랫말 절반은 토크 멜로디(랩) 스타일이고, 절반은 가락으로 얽었다. 묻지 마라, 고독한 남자(나그네)의 불타는 영혼을~

1절 통창(痛唱) 뒤에 또 랩(토크)이 이어진다.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에/ 그것을 위안해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사랑 때문인가/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내 청춘의 건배...’ 

낭송 뒤에 또 가창이 이어진다.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 /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저 절절한 사랑의 종말은 후회하지 않는 것이란다.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 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 사이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 되리/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이십일 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이 노래가 불린지 37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 오늘이 바로 그때 외친 노랫말 속의 21세기이다. 그러니 다시 휘청거리며 흥얼거리는 나그네의 가락을 청음하시라. 홀로 배낭을 메고 킬리만자로 정상에 서서 고독과 악수를 하면서 서늘한 바람을 마주한 행객(行客)의 혼잣말을~.

 

구름인가 눈인가 /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 오늘도 나는 가리 / 베낭을 메고 / 산에서 만나는 / 고독과 악수하며 / 그대로 산이 된들 / 또 어떠리, 라~.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래의 메시지는 단 한 어휘, 한 남자(나그네)의 고독(孤獨)이다. 이 고독은 스스로의 귀를 스스로 자른 뒤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자화상(自畵像)으로 그린 화가 고호(1853~1890. 네덜란드)와 킬리만자로 정상에 선 표범의 외로움이다. 이 표범은 내가 살아온 흔적을 남기기 위한 영혼을 불태우는 한 사내다. 왜 양인자는 노래 주인공을 아낙네로 하지 않고 남정네를 내세웠을까. 나보다 더 외롭게 살다 간 외로운 노래 속 주인공 그를, 고호는 서양미술사상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정상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매니아(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예술가였다. 그는 내성적이었으며, 어린이답지 않은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자랐다. 학교 교육에도 적응을 잘못하여 집에서 가정교사로부터 배운다. 그는 스스로 어린 시절을 ‘우울하고 차가웠던 불모스러운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훗날 신학교에 진학했지만 중간에 그치고, 광산촌의 평신도 설교자가 되지만, 이 또한 중도 하차했다. 이후 목탄화와 등에 관심을 가지며 그림에 몰입한다. 이후 과부인 4촌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사창가의 여인에게 구애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1888년 그는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른 후에 그린 자화상을 사창가 여인에게 건네고, 출동한 경찰에 의하여 정신병원으로 옮겨져 1890년 자살(추정)로 생을 마감했다. 양인자는 왜 이 고독한 예술가를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래 속 주인공으로 불러들였을까. 노랫말의 절묘함이고, 대중들을 노래 속 주인공으로 천이(遷移)시킨 묘수이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살고 있다는 킬리만자로산은 탄자니아 동북쪽에 있는 해발고도 5,895m의 성층 화산이다. 이 산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으며, 세계에서 네 번째로 돌출된 산이다. 킬리만자로의 뜻은 ‘빛나는 산 혹은 하얀 산’이다. 케냐 국경 가까이 있으며, 이곳은 산 밑에서 정상까지 식물대가 이어져 있고, 사냥이 금지되어 있다. 지구에서 가장 큰 휴화산(休火山), 그 정상에 표범이 살기나 하는가. 사람들은 말한다. 눈물로 지워지지 않는 슬픔이 있다면, 욕설로 삼켜지지 않는 아픔이 있다면, 견디어 내는 힘도 또 하나의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싶다면, 킬리만자로로 가라고. 지구의 지붕 티벳 안드록쵸(4,998m)가 ‘분노한 신들의 안식처’라면, 킬리만자로 정상은 ‘외롭고 슬픈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가장 높은 가슴’이라고 전해 주고 싶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눈으로 덮인 산봉우리까지 올라가서 힘들게 먹이를 구하는 표범에 한 남자(나그네)의 인생을 건 노래다. 도전하면서 자신의 꿈에 천착(穿鑿)하는 인생이다. 배우 최민수는 무명 시절에 눈발이 흩날리는 한계령을 넘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듣고, 벅찬 감동에 차를 멈추고 끝까지 들었단다. 음반녹음 실무진과의 밀고 당기는 실랑이 끝에 녹음을 마친 김희갑은 지구레코드사 대표에게 노래를 들려주었다. 이에 대표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걸 타이틀곡으로 합시다. 조용필이라면 그냥 말하는 것도 상품 가치가 있을 것이요.’라고 했단다. 이렇게 국민애창곡은 탄생한다. 우연과 필연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네 인생도 이와 다를 바가 뭐 있는가.

작사가 양인자는 학창시절 『돌아온 미소』라는 소설을 쓴 문학 실력파다. 그런고로 대학시절(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는 신춘문예를 꿈꾸었고, 그 입상에 대비하여 소감 글을 미리 써 두었었단다. 여러 번의 낙방을 거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강짜를 부리면서 다짐한 글, 그 시절 흔하던 다방에 틀어박혀서 써 둔 필문(筆文)이 이 노래의 모티브란다. 그러니 이 글은 원래 악보 위에 드러누울 노랫말이 아니라 신춘문예 당선 소감문으로 실릴 글이었다. 하지만 유행가 노랫말로 환생했다. 대중가요 유행가는 3분이라는 통념을 깨고, 5분 이상의 긴 노래도 히트곡이 될 수 있다는 작사의 혁명을 일으킨 절창으로 거듭났다. 처사부곡(妻辭夫曲, 아내 작사 남편 작곡)의 국민애창곡이다. 1998년 탄자니아의 벤자민 월리엄 무가파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조용필은 그 나라 산을 한국에 널리 홍보한 공로로 감사패를 받았다. 조용필은 1950년 화성시 송산면 쌍정리 소금밭 집 아들, 서울 경동중학교로 유학을 와서 국민배우 안성기와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한 절친이다. 조용필이 찾아가는 인생, 킬리만자로의 산은 어디일까. 가슴 저리도록 외로운 가요황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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