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넓고도 좁은 요술 같은 인생사, 그 안에는 오직 두 사람이 마주하며 살아간다. 하나는 여자, 또 하나는 남자다. 그중에서 세상의 절반인 여자의 한평생을 절절하게 부른 노래가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다. 이 노래의 메시지는 고래(古來)로 이어가는 인류사의 맥락에서 현모양처(賢母良妻)로 함의되는 여성들의 희생과 헌신을 전제로 한 삶의 마디 마디를 리얼리티 노랫말로 얽은 엘레지(elegy)이다. 비가(悲歌)·애가(哀歌)·만가(挽歌)이다. 노래 속에서 참아야만 하는 인고(忍苦) 세월의 주인공이 바로 여성이고, 그 세월 뒤에 매달리는 열매의 메시지는 생략되어 있다. 이 노래가 21세기 트로트 복고 열풍의 바람결 속에서 2009년에 출생한 김다현이 불러서 대중들의 가슴팍을 헤집었다. 요술 같은 세상사에서 연기(煙氣)처럼 지는 노래, <여자의 일생>.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 마디 못하고 /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 아~ 참아야 한다기에 /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굵은 주름 성글진 어머님의 얼굴과 물 젖은 양손이 노랫가락에 어른거린다. 노래 속의 저 여성은 누군가의 딸로 태어나 아름다운 낭자로 자랐을 터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아이들을 낳고 어머니가 되었다. 그 세월 자락에 참을 수가 없도록 아픈 가슴을 스스로 다독이며, 고달픈 인생길을 거쳐서 아이들을 짝지어 주었다. 그리고 짝들의 시어머니 혹은 장모가 되었다가, 할머니 혹은 외할머니로 이승을 등진다. 딸·아내·엄마·시어머니·장모·할머니·외할머니, 이 7단어를 더하면 여자(여성)이다. 이분의 삶이 <여자의 일생>이다. 이는 아들·남편·아빠·시아버지·장인·할아버지·외할아버지로 함의 되는 남자(남성)과 대칭된다. 고영준이 부른 <남자의 길>, 오기택의 히트곡 <아빠의 청춘> 등 노래의 주인공이 이들이다.

<여자의 일생> 노래가 이 세상 사람들의 가슴팍을 후비던 1960년대는 통칭 뽕짝이라고 불리든, 오늘날 트로트라고 하는 유행가 장르가 새로운 노래강줄기를 만들든 시기다. 그 시절 세상에 나온 노래들은 전주(前奏)에 뒤이은 1절, 간주(間奏)와 2절, 마무리는 짧은 후주(後奏)로 대중들의 감흥을 북 돋우었었다. 이러한 일련의 가창 과정에서 통용되던 경향이 오프닝·중간대사였다. 효과음향이나 조명 기술이 오늘날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관객과 청중들 감흥에 부채질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감흥 사설(辭說)은 음반 녹음에는 통상 포함시키지 않았었고, 실제 공연무대에서 이루어졌었다. 음반 녹음 1곡은 3분 내외의 시간이 통상이었는데, 그래서 <여자의 일생>도 실제 가창을 할 때에 중간대사로 노래의 흥취를 더했다.

‘울고 살기 마련이냐/ 속아 살기 마련이냐/ 죄 없는 내 가슴에/ 못을 박고 떠난 사람아/ 얼음같이 찬 세상에/ 너 하나를 믿었더니/ 운명의 수수께끼 아들마저 날 버리니/ 아~ 음~ 여자의 일생/ 이다지도 모질던가// 가도 가도 산이더냐 가도 가도 물이더냐/ 꽃 매화 봄에/ 불을 놓고 떠난 사람/ 요술 같은 세상사에/ 연기같이 지는 인생/ 마지막 숨 지으며 불러보는 아들, 아들/ 아~ 음~ 여자의 일생, 이다지도 비극인가.’ 노랫말보다 더 절절한 중간대사 사설에 대중들은 가슴 쥐어뜯는다. 이런 여주인공들은 <여자의 일생>노래가 나온 지 60여 년 세월이 흐른 오늘도 허다하다. 그래서 이 노래가 12세 가수 김다현의 목청에 걸려서, 떨리고 울리면서 100년 애창곡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견딜 수가 없도록 외로워도 슬퍼도 / 여자이기 때문에 참아야만 한다고 / 내 스스로 내 마음을 달래어 가며 / 비탈진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 아~ 참아야 한다기에 /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여자의 일생> 노래 속 화자는 봉건·가부장적 시대의 여성 주인공으로 치면 좋으리라. 구한 말 대한제국기·일본제국주의 식민지·미군정과 6.25 전쟁기를 거쳐 베트남 전쟁의 터널 속을 통과해온 우리 어머니들이다. 이 절창을 2020년 12월 미스트롯2 경연에 12세 김다현이 불렀다. 다현이는 노래보다 41년이나 이 세상에 늦게 나온 청학동 김봉곤 훈장의 둘째 딸이다. 그녀는 ‘국악트롯요정 12살 김다현입니다.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보이스트롯)에서 준우승을 하였지만, 아직 배울 점이 더 있다고 생각하여 미스트롯2에 나오게 되었습니다.’라고 소개를 한 후, 본 서절(緖節)을 내질렀다. 이 곡은 2020년 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 사형제(영탁·김수찬·안성훈·남승민) 팀이 절창하기도 했던 곡이다.

<여자의 일생> 노래는 프랑스 소설가 기 드 모파상(1850~1893)의 원작 소설 『여자의 일생』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것이다. 젊어서는 남편의 학대와 굴욕 속에 살다가 늙어서는 자식들에게 버림을 받고, 옛날 하인의 집에 여생을 의탁하게 되는 여인의 슬픈 인생을 그린 작품. 원제목은 『어느 생애』이다.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모파상의 고향 노르망디 지방 귀족의 외동딸 쟌느가 주인공이다. 이 소설이 문화예술의 서세동진(西勢東進)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로 와서 대중가요로 환생(還生)하였다. 소설로 와서 노래로 환생했다가 다시 영화로 거듭났다. 1968년 신상옥 감독의 영화 《여자의 일생》이다. 이미자가 주제곡을 불렀고, 최은희·도금봉·남정임·남궁원·허장강이 출연했다. 1883년 발표된 소설 속의 주인공은 12세 때부터 5년간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고, 행복한 소녀 시절과 약혼기를 거쳐 결혼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첫날밤 남편의 난폭한 야수성을 보게 되자 환멸과 비애를 느낀다. 난봉꾼인 남편 쥘리앵은 하녀 로잘리에게 아이를 낳게 하고, 백작의 부인과 간통하여 그 남편에게 살해되고 만다. 쟌느는 남은 외아들인 폴에게 모든 희망을 걸지만, 아들마저 감당할 수 없는 방탕아가 되어서 집을 떠나 그녀를 절망시킨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서 대중가요 작사·작곡가와 가수는 예술적인 영혼의 부부라고 해도 된다. 한산도와 백영호가 그 대표적 인연이다. 이 영적인 인연은 연분이 있어야 만나고, 감성적 호흡이 맞아야 대중들의 가슴속으로 파고들 수 있다. <여자의 일생>이 탄생할 당시 이미자는 27세, 백영호 48세, 한산도는 37세였다. 이미자는 1941년 서울 한남동에서 태어나 문성여상고 3학년이던 1958년 TV 노래자랑에 참가하여 1등을 하였으며, 이듬해에 나화랑의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를 하였다. 이어서 1964년 <동백아가씨>로 35주간 연이어 가요순위 1위를 차지한다. 이때 <동백아가씨>는 앨범이 100만 장이나 팔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밀리언셀러 음반이다.

작곡가 백영호는 1920년 부산 출생, 본명 백영효다. 진주 출생설도 있는 그는 만주국 신징음악학원을 수료했다. 만주는 중국 54개 민족 중, 만주족의 발상지 백두산 인근 연변 조선족자치주를 일컫는 통칭이다. 또한 신징(新京)은 오늘날 창춘, 일본이 1932년 만주국을 건국하고 지정한 수도로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동시에 사라진 괴뢰 나라, 서울이었다. 백영호는 1964년 <동백아가씨>로 23세의 이미자를 국민가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동백아가씨>, <여자의 일생>, <울어라 열풍아>, <황포돛대>, <추억의 소야곡> 등 100여 곡을 이미자와 함께 히트시켰다. 또한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 남상규의 <추풍령> 등을 명품예술로 남겨 두고 2005년 향년 83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나이보다 더 무르익은 모습과 감흥으로 대중들의 가슴팍을 파고드는 김다현은 2009년 진천 출생, 2020년 청학동국악자매 싱글앨범 『경사났네』로 데뷔했다. 그래서 그녀가 청학동에서 출생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많다. 그녀는 공주 박동진판소리명창 명고대회 학생부 판소리부문과 전국 어린이 판소리 왕중왕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국악신동이다. 또한 2020년 12월 미스트롯2 경연에서는 올 하트를 받지 못한 아쉬움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녀의 노래는 앵지행화(櫻枝杏花), 앵두나무 가지에 매달린 살구꽃과 같다. 도지만화(桃枝蘭花), 복숭아나무 가지에 활짝 핀 목란(木蘭)과 같다. 너무 빨리 무르익었다. 김다현 공식 팬카페 《얼씨구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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