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안동역 광장에 노래 꽃이 피었다. 국민가요 <안동역에서> 노래 탄생지, 안동역 광장에서 펼쳐진, 제1회 김병걸가요제가 그 꽃떨기이다. 한국예술인총연합회 안동지회 회원들의 땀과 노고가 아롱진, 한국대중가요사의 새로운 100년을 향한 주춧돌 같은 무대였다. 유행가도 고향이 있다. 그 노래의 고향이 안동역처럼 빛난다면 얼마나 귀할까.

이 안동역 광장은 오늘날은 구안동역으로 부른다. 2020년 12월 6일 신안동역사가 송현동으로 이전해 갔기 때문이다. 이 구안동역은 1970년대 후반 김병걸 선생이 대중문화예술인의 꿈을 품고 서울을 향하여 무작정 올라탔던 그 기차역이다. 그는 문학의 꿈을 품은 시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 행로는 대중가요 작사가의 길로 들어섰다. 도피였을까, 도전이었을까. 인생길은 운명(運命)과 숙명(宿命)을 버무린 신명(神命)의 길이다. 그 청푸르던 김병걸 선생은 이제 먼 산의 큰 바위 얼굴 같은 베테랑 작품자(작사·작곡가)로 우뚝한 별이 되어 빛난다. 45년여의 외길 인생이었다. 그는 수천여 곡의 우리 대중가요를 스스로 일군 가슴 밭에서 씨눈을 티우고, 거목으로 자라게 해서, 열매를 맺어, 오늘 그의 이름패를 단 제1회 김병걸가요제를 성황으로 펼친 것이다. 그 예술가의 수작(秀作) 중 백미(白眉)가 바로 진성(1960~. 부안출생, 본명 진성철)의 목청을 타고 세상에 나온 <안동역에서>이다.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오지 않는 사람아 / 안타까운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 기적소리 끊어진 밤에 // 어차피 지워야 할 사랑은 꿈이었나 /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 / 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 /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 대답 없는 사람아 / 기다리는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 / 밤이 깊은 안동역에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나. 이루어짐과 않음의 경계는 어디인가. 그대가 나를 지우지 않는 한, 내가 그대를 끝내 기다리는 한, 우리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니 돌아오시라. 기다림의 사랑은 만남의 사랑보다 더 간절할 수가 있다. 더욱 절절하고 신실할 수가 있다. 그대는 안 오는 건가, 못 오시는 건가. 말을 해라. 그대가 오실 때까지, 못 오신다는 대답이 올 때까지 나는 무작정 기다릴 테다. 첫눈이 내리는 날, 그 눈이 무르팍까지 차오를 때까지. 그래, 기다려 봐야지. 기다려야지.

이 노래는 2008년 진성의 목청을 타고 세상에 나와서 2013년 우리 전통가요 부문 대상을 받은 노래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작품자와 가수에게 주신 상이다. 이후 오늘날까지 10여 년을 노래방에서 콜링(calling)되는 1위 곡이다. 우리나라에 노래방은 1992년 부산 동아대 앞 로얄전자오락실 코인 노래방이 시초이고, 사업자 등록은 그해 광안리 해수욕장 ‘하와이안비치노래방’이 1호 사업자라고 친다. 이 노래방 역사상 최고의 히트곡이 바로 김병걸의 <안동역에서>이다. 이 절창을 제1회 김병걸가요제에서는, 이 노래 홍보대사 가수 심재민이 열창하여 수 많은 관객들의 가슴팍 휘저었다. 청중들의 호응도 대단했다. 예술가의 가슴팍에도 사랑의 불꽃은 피고 진다. 그래서 예술가는 세상을 움직인다. 그들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가슴팍을 울렁거리게 하고, 그 울렁거림이 세상을 향하여 빛으로 발산되게 한다. 이 에너지 발전소가 김병걸 작사가이다.

제1회 김병걸가요제. 사단법인 한국예술인협회 안동지회(지부장 이양수, 운영위원장 이정희) 주관으로 개최된, 이날 사회는 35년 경륜의 희극인 베테랑 조문식과 아나운서 김혜정의 진행으로, 10월 단풍물결처럼 알록달록한 감흥의 순서를 이어갔다. 영상 축하메시지로 흥을 돋운 진성·박우철·박상철·서지오의 맛깔스러운 추임새는 제1회 김병걸가요제에 꽃물을 수 놓은 만산홍엽(滿山紅葉)과 같았다. 안동시장이, 15만여 명 시민을 대신하여 김병걸 작사가에게 전달한 감사패에는 ‘안동이 키워낸, 안동을 빛낸, 안동을 더욱 빛나게 할’예술가 김병걸에 대한 보상·격려·기대·찬사·응원이 아우러져 있었다. 무지개빛 띠를 이은 오프닝 테이프 컷팅은,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의 첫 벽돌에 오색의 수를 놓는 듯하였다. 오프닝무대는 <거기까지만>, <삼각관계>, <안동역에서>가 혼합 매들리로 이어졌다. 김병걸 작사가의 손끝에서 지어진 노랫말들이다. 이어진 김병걸 작사가의 인사말에는 ‘노래로 연 김병걸의 외길 인생’이 대롱거렸다. 참여자들에 대한 기대와 격려, 안동에 대한 감사, 국민가요의 꽃 <안동역에서>를 애창해 주는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경의를 담은 겸허한 말로 고마움과 응원을 당부하기도 했다. 설핏 목이 매이는 듯한 주인공에게 수많은 안동시민과 전국 각지에서 모여 든 청중들은 박수갈채로 그의 인생길을 응원했다. 김병걸~을 외치면서 환호했다.

이 행사는 1부는 축하공연 2부는 본선 진출자 경연으로 펼쳐졌다. 축하공연 가수들의 면면도 안동의 명물 월영교 위에 빛나는 ‘안동의 달빛’처럼 휘황(輝煌) 찬연했다. 축하공연 가수, 나다운의 <60점만 하세요>, 설아의 <그 사람도 나처럼>, 안경희의 <꽃잎>, 오정하의 <물망초 여인>, 박서현의 <육십령 고개>, 남수봉의 <대전 연가>, 권승의 <월영교>, 지명화의 <사랑 밤>, 장태수의 <산뜻한 남자>도 빛나는 곡창(曲唱)이었다. 이 많은 가객들이 환한 대중예술의 꽃으로 피어나게 하는 것이 ‘김병걸가요제의 주인공’김병걸의 여망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이름패를 단 축제(가요제)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다음은 김병걸가요제의 초대가수. 모든 축제의 초대가수는 맛난 요리에 구미를 더 당기게 하는 때깔 나는 드레싱과 같다. 행사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보다 색다른 빛을 발산하고, 스스로 인기온도계를 상승시킨다. 이날 초청된 묵직한 가수들의 면면과 열창은 현장에 온 대중들의 가일흥(加一興)이었다. 검정색 싱글 정장에 검정 나비텍타이를 맨 강진은 그의 히트곡 <마부>, <못난 내가>, <붓>, <문풍지 우는 밤>에 이은 앵콜곡으로 <삼각관계>를 덤으로 선사했다. 빨강색 정장에 금색단추를 단 의상의 정연순은 <저 기차>를, 김병걸의 절실한 친구이자 동반자 류기진은 <사랑도 모르면서>와 <그 사람 찾으러간다>를 그 만의 절묘한 스타카토 창법으로 무대 위의 가수와 김영철악단과 청중들을 하나로 아울렀다. 류기진은 김병걸을 선생으로 존칭하면서, 노랫말 작사의 천재라고 칭송했다. 우리 대중가요 작사의 전설 같은 반야월(본명 박창오. 1917~2012. 진해 출생)선생도 김병걸을 ‘김작사’라는 훈장 같은 별호를 달아준 바가 있다. 뒤이은 김은주의 <거기까지만>, 심재민의 <아름다운 강산>, 성진우의 <포기하지마> 감흥은 관객들의 가슴 방에 아직도 감흥의 물결로 잘랑거리고 있을 테다.

제1회 김병걸가요제. 이날의 주인공은 김병걸, 행사를 이끈 주역(主役)들은 바로 경연 참가자들이었다. 수많은 예심 응모자들과의 경합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12명의 경연은 어둠이 내린 역 광장 저녁 7시부터 저마다의 노래 끼와 열정을 포효(咆哮)했다. 검정 코트 차림의 문정옥은 노사연의 <돌고 돌아가는 길>을 송가인 버전으로 열창했다. 돌고 돌아가더라도 내 꿈 찾아가야겠네~. 허공지곡(虛空之曲)의 절창이었다. 하늘을 향하여 울려 퍼진 노래. 회색 정장 차림의 홍지호는 <사랑도 모르면서>를 열창했다. 사랑은 통속한 잡지에 긁적거리는 낙서가 아니야~. 은반옥옥(銀盤玉鈺)이었다. 은쟁반에 굴러다니는 구슬 같은 노래. 금빛 긴 머릿결에 가을 코트를 걸친 류경옥은 <거기까지만>으로 청중들의 갈채를 받았다. 내 마음 속속들이 들키고 말았네, 사랑하기 때문에~. 수중지월(水中之月)이었다. 강 물결 속에서 일렁거리는 달빛, 한 움큼 손두레박으로 건져 올릴 수 없는 달빛이여. 군청색 정장으로 치장하고, 사뿐사뿐 무대 위로 마차를 이끄는 듯한 연출을 하면서 등장한 박정환은 <마부>를 내질렀다. 세월 앞에 장사 있나, 고장 날 때도 됐지~. 머슴인생(~人生)이다. 그렇다. 우리네 인생은, 나 스스로가 타고 있는 마차를 이끌고 가는, 말의 고삐를 잡은 마부이다. 결국 우리네는 스스로 말(馬)이기도 하고, 마차이기도 하고, 마부이기도 한 것이다.

배재곤은 김병걸이 졸업한 안사면 쌍호총등학교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노래 <분교>를 열창했고, 단고은은 <여기서>를, 김현수는 <눈물비>, 유진표는 <첫사랑에게>를 내질렀다. 아홉 번째 출연자 권희승은 <벤치>를 노래와 몸과 마음을 혼융하여 불렀다. 붉은 칠보 드레스 같은 톱날 치마에 검정 숄티를 걸친 그녀는 선곡을 참 잘했다. 무대 위에서 너풀거린 안무는 심플했지만 감흥의 물결을 일렁거리게 했다. 노래와 감정과 안무를 일체로 아우른 가인일체(歌人一體)의 절창, 노래가 품은 메시지 전달이 간결했다. 나는야 너의 벤치야, 비를 맞고 와도 되, 술 취해서 와도 되, 나는야 너의 벤치야~. 기다림의 애환을 품은 노래다. 인생은 기다리다가, 끝내 기다리다가 떠나가는 돛단배다. 뒤를 이은 흰색 정장 중년의 배정식은 <머나먼 고향>으로 관객들을 고향의 강으로 흘러가는 배에 태웠다.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인생은 풍선고풍(風船古風), 마음의 고향으로 흘러가는 배다. 정영빈의 <그 사람>, 남동현의 장민호 버전 <상사화>가 이날 경연의 휘날레였다. 경연 결과 영예의 대상은 권희승, 그녀에게는 김병걸 작사가의 신곡 노래와 상금 5백만 원이 수여되었다. 금상 1명·은상 1명·동상 1명·인기상 2명에게도 각각 상금과 상패가 수여되었다. 모두가 대상(大賞)을 받을 만한 가창력과 음정과 박자와 무대매너와 청중들의 호응을 얻은 가객들이다. 이분들이 세상에 빛을 뿌리는 예술 가객으로 거듭나기를 성원한다.

이날, 제1회 김병걸가요제에는 대한민국의 유수한 SCEO(Social CEO)들이 동반하여 대중가요 유행가의 풍류에 감흥했다. 전현직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들, 한국예술인총연합회 안동지회 회원들~ 그야말로 감흥의 일장일막,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의 새로운 주춧돌을 놓았다. 심사위원의 면면도 창창하다. 주인공이자 작사 작곡가인 김병걸, 작곡가 김진룡, 작곡가 최강산, 유차영(한국유행가연구원장·대중가요 칼럼니스트·한국유행가스토리텔러 제1호) 등등. 이 작품자와 르뽀에세이 기자들은 김병걸 작품자와 예술을 동반하는 저마다의 별들이다.

김병걸의 가요천국에서, 필자와 작사가
김병걸의 가요천국에서, 필자와 작사가

첫눈이 내리는 날 해후를 약속한 첫사랑을 기다리는 역은 안동역이다. 기차역이다. 우리나라에 기차역은 630여 곳이나 된다. 이 역에서 첫눈이 내리는 날 만나자고 약속한 연인들이 <안동역에서> 노래의 주인공들이다. 올해 첫눈이 내릴 날이 멀지 않았다. 그래, 약속한 그 역에서 기다리시라. 마지막 기차의 기적소리가 끊길 때까지.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속을 태우면서 눈발 속을 서성거려라. 구안동역은 서울과 경주를 잇는 중앙선의 중간역이었다. <안동역에서> 노래의 첫눈이 오는 날 사연을 품은 역은 이 역이다. 그래서 제1회 김병걸가요제가 이 광장에서 개최된 것이다. 구안동역의 급수탑(給水塔)은 12각형 구조물로 형태가 독특하여, 등록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어있다. 대중가요에 매달린 모티브 단어에는 우리 근현대사의 노고(勞苦)가 매달려 있다. 그래서 대중가요 유행가를 역사의 보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제1회 김병걸가요제 주인공, 김병걸은 안동·의성·예천이 만나는 낙동강 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 안동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예술대에서 방송연예를 공부한 그는 월간 문학세계를 통하여 시인으로 등단했다가 대중가요 노랫말을 쓰는 작사가다. 박건호·조은파가 시를 쓰다가 대중가요 작사가로 전업한 것과 같은 경우다. 그는 여수MBC·광주교통방송에서 가요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2천여 곡의 작사와 3백여 곡을 작곡한 베테랑 작품자이다. 그는 <안동역에서>로 제13회 대한민국 전통가요대상 작사부문 대상, 2014 MBC 가요베스트 작사가상, 2014 자랑스러운 경상북도 도민상을 수상했다. 가요·찬불가·동요·지방자치단체 헌정가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는 <다함께 차차차, 찬찬찬, 서울아 평양아, 삼각관계, 사나이 눈물> 등의 노랫말도 지었다. 그가 지은 안동노래는 <내 고향 안동, 제비원아지매, 부용대 연가, 안동 껑꺼이, 월영교> 등이다.

안동에서 열린 제1회 김병걸가요제가 앞으로 횟수를 더해가면서, 대중가요의 별을 탄생시키는 산실이 되기를 기원드린다. 권기창 안동시장의 축사에 매달린 어휘가 가슴을 또 다른 기다림으로 설레게 한다. 안동에서는 ‘첫눈이 내리는 날 가요제’를 꿈꾸고 있단다. 올해 첫눈은 어느 날에 오실까. 그날을 기다리면서, 김병걸 예술가의 또 다른 걸작(傑作)을 기다린다. 한국예술인총연합회 안동지회의 무궁한 발발(勃勃)을 빈다. 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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