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동해안 바닷길 남북으로 이어지는 대동맥 7호선 도로가 사랑 추억을 머금었다. 장민호가 부른 <7번국도> 노래다. 이 도로는 부산광역시 중구에서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면까지 어어졌던 길이 1,192km 도로이며, 옛 부산시청이 있던 중구 중앙동 교차로에서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남측 구간은 513.4㎞이다. 2017년 장민호가 부른 이 노래 속의 화자(話者)는, 동해안 해변을 따라 강릉 정동진에서 남쪽 울진 간절곶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을 산책(散策)하면서 옛사랑의 추억을 더듬는다. 노래 속에는 아침 해도 떠오르고, 처럭거리는 파도 소리에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가 뒤엉킨다. 추억어린 옛 포장마차는 들렀을까, 그냥 스쳐 지나쳤을까. 가다가 우두커니 멈추어 서서 떠올린, 뜨거운 옛사랑이 아롱진 선술집~.

해 뜨는 정동진에서 / 바닷길 7번 국도 따라 / 끝이 없는 사랑 길 / 아프니까 사랑이랬지 / 잊으려 애를 쓰니 더 보고 싶더라 / 7번 국도 바닷길 따라 / 끝없는 나의 사랑길 / 해 뜨는 정동진에서 / 뜨겁게 사랑도 했지 / 가다가 멈추어 보니 / 그때 그 포장마차 / 사연 많은 술 한 잔 / 무심한 갈매기 소리 / 내 마음 끼룩끼룩 / 보고 싶다 사랑아.

소주잔이 이별 사연을 머금으면, 술은 쓴 물이 된다. 소(牛)의 태(胎)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 소태나무 껍질을 삶은 물보다 더 쓰다. 이런 쓰라린 사랑의 기억은 입 안에 도는 침마저 쓰게 한다. 무심한 갈매기 소리를 들으며 사연 많은 포장마차를 스치듯 지나치지만, 눈앞에 아롱지는 옛사랑의 실루엣을 어이하리요. 우리나라 유행가 중에 도로(道路)이름을 차운(次韻)한 곡은 1960년대 남상규가 부른 <애수의 김포가도>다. ‘다시는 안 찾겠다 맹서했건만/ 그래도 잊지 못해 마지막으로/ 애절하게 달려온 김포공항이여/ Trap마저 떨어지고 허공만 남아/ 님 없는 활주로여 아아 아아아/ 애수의 김포가도 눈물의 가도.’ 이 노래는 김포공항의 이별을 모티브로 한 곡조였는데, 장민호의 노래는 추억을 머금었다.

<7번국도> 노래 첫 소절의 정동진(正東津)은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에 있는 바닷가다. 강릉 남쪽 18㎞ 지점, 서울 경복궁(광화문)에서 정 동쪽에 있는 나루터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위도상으로는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도봉산의 정 동쪽에 있다. 신라 때부터 임금이 사해용왕(四海龍王)에게 친히 제사를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해안 단구(段丘) 절벽은 천연기념물 제437호다. 근처 정동진역은 항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역으로 세계 기네스북에 올라 있고, 1994년 TV 드라마 『모래시계』 촬영지다. 이 드라마의 주제곡은 백학(白鶴), 이 곡은 전우를 잃은 슬픔을 주제로 한 러시아 시인 라술 감자토프(1923~2003)의 시에 작곡가 얀 프렌켈(1920~1989)이 멜로디를 붙인 곡으로, 여러 가수가 녹음했었다. ‘나는 가끔 병사들을 생각하지/ 피로 물든 들녘에서 돌아오지 않는 병사들이/ 잠시 고향 땅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학으로 변해 버린 듯하여~.’ 이 노래 속 주인공은 학으로 변했는데, 장민호가 뜨겁게 나누던 노래 속의 주인공 연인은 무슨 갈매기로 변했을까.

해 뜨는 간절곶에서 / 바닷길 7번 국도 따라 / 끝이 없는 사랑 길 / 해 뜨는 간절곶에서 / 뜨겁게 사랑도 했지 / 가다가 멈추어 보니 / 그때 그 포장마차 / 사연 많은 술 한 잔 / 무심한 갈매기 소리 / 내 마음 끼룩끼룩 / 보고 싶다 사랑아 / 무심한 갈매기 소리 / 내 마음 끼룩끼룩 / 보고 싶다 사랑아.

정동진은 6.25 전쟁 당시 옥계전투(玉溪戰鬪)가 벌어진 곳, 1950년 6월 25일 옥계면 일대에서 우리 해군과 북한군이 벌인 최초의 전투다. 6.25 전쟁 발발 이전 이곳(양양·강릉)은 국군 제8사단 제10연대가 38선 경비를 맡았고, 제21연대는 삼척에 주둔하며 후방경계의 임무를 담당했다. 동해안 경비는 해군 제2정대·묵호경비부가 담당하고 있었다. 이 지역을 6월 25일 03시경, 북한군이 38선 일대에 대한 전면 공격을 하기 이전에 침투 공격을 한 부대가 제766유격대와 945육전대다. 당시 766부대장은 1917년생 오진우, 6.25 전쟁 휴전 후 북한군 인민무력부장을 역임한 그는 1995년 평양에서 사망했다. 제945육전대는 오랫동안 549부대로 알려졌었다. 제945육전대는 강릉과 삼척 사이 정동진과 옥계지역 해안으로, 766유격대는 삼척 임원항과 울진 죽변항 일대로 상륙해서 후방 교란작전을 전개했다. 이들의 작전목적은 국군 제8사단의 퇴로인 7번국도 후방을 차단하여 궤멸시킨 뒤, 6월 29일까지 포항까지 남하해서 부산을 신속히 점령한다는 계획이었으나, 묵호사령부는 육군과 경찰병력 등이 연합해서 북한군을 격퇴한 후, 6월 26일 포항으로 철수했다.

우리나라 도로 노선번호는, 노선의 대체적인 방향이 남북인 것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면서 홀수 번호를, 대체적인 방향이 동서방향인 것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면서 짝수 번호를 순차적으로 부여한다. 간혹 세 자리 숫자 352번 등이 있는데, 이것은 3번 도로에서 5번째로 파생되고, 또 거기서 2번째로 개통된 의미이다. 이 바둑판식 도로 명칭은 국가비상사태시에도 사용되고, 군사작전계획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국도 1호선은 목포에서 신의주를 연결하는 도로다. 목포·무안·함평·나주·광주·장성·전주·논산·공주·천안, 평택·수원·안양·서울·고양·장단·개성·평양·신의주를 연한다. 국도 1호선은 일본제국주의 강제 점령기에 신작로(新作路)를 설치한 것을 근간으로 하는데, 천안 이북 구간은 조선 시대 대로(大路)와 거의 일치하지만, 이남은 일본의 쌀 수탈과 식민 통치의 목적에 따라 일부 변형되어 오늘에 이른다. 1971년 8월 31일 일반국도노선지정령에 의해 국도 제1호선으로 지정되었고, 우리나라 등록문화재 제79호다. 횡단 국도 첫째인 2호선은 전남 신안군에서 목포를 거쳐 부산 중구를 잇는 도로, 377.9㎞이다.

<7번국도> 노랫말 두 번째 모티브 간절곶(艮絶串)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일대 바다 쪽으로 튀어나온 지점, 곶(串, cape)이다. 동해안에서 맨 먼저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곳. 영일만 호미곶보다 1분, 강릉 정동진보다도 5분 빨리 해가 돋는다. 이 간절곶은 간절한 소원을 비는 곳이 아니다. 곶(串)은 막다른 한계점의 땅이라는 뜻. 이 근처 회야강(回夜江) 어귀에 임진왜란 유적지 서생포가 있다. 그곳에 임진왜란 발생 이듬해인 1593년 평양까지 진출했던 왜군이 명나라와 강화협상을 하면서 경상도 해안지역으로 철수하여 돌로 성(城)을 쌓은, 왜성이 있다. 동남해안에 쌓은 왜성 28개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한 성, 왜장(倭將) 가토 기요마사가 주둔했던 곳이다. 인근에는 울산성, 이곳에서 정유재란(1597~1598) 당시 불꽃이 튄다. 제1차울산성전투다. 왜구는 이를 벽제관전투·제2차진주성전투와 더불어 임진왜란 3대첩으로 꼽는다. 우리가 한산도대첩·행주대첩·제1차진주대첩을 3대첩으로 하는 데 대한 대칭 논리다.

제1차울산성전투 당시 조선의 권율과 정기룡 장군, 명나라 양호와 마귀 장군이 연합한 5만 7천여 명의 공격(1597.12.3. 음력)은 가토 기요마사의 1만 5천 명이 방어한 울산성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하지만 왜군은 식수(食水)가 고갈되어 밤마다 성벽을 넘어 태화강 물에 머리통을 쳐박고 물을 마시다가 조선군에게 척살(刺殺)된 놈이 한둘이 아니었다. 또한 식량 고갈로 말을 잡아먹고, 성벽 돌에 붙은 이끼를 긁어서 삶아 먹고, 눈을 녹여 식수로 사용하는 등 전장 공황에 빠졌다. 조명연합군이 철수한(1598.1.4. 음력) 후 가토 기요마사는 울산성에서 서생포 왜성으로 퇴각해 주둔하다가 1598년 일본으로 패퇴(敗退)한다. 그 후 가토는 구마모토 성 안에 120여 개의 식수용 우물을 파 놓았고, 고구마 줄기로 된 다다미를 만들어서 침대로 사용했었다. 울산성전투를 교훈 삼아서. 고구마 줄기 다다미는 유사시에 삶아서 먹을 군량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유행가를 흥얼거리면서 휘늘어지고 간들거리는 가락에 어깻죽지를 덩실거리면서도 노랫말(모티브)을 재갈재갈 씹어보시라. 그 사연들이 우리의 역사다. 내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의 아버지들 인생이 얼룩진 빨래처럼 걸려 있다. 그래서 유행가를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강원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멈춰 선 7번국도는 고성·통천·안변·원산·문천·고원·영흥·정평·함주·함흥·홍원·북청·이원·단천·학성·김책·길주·명천·경성·청진·부령·경흥·나선·경원·온성으로 이어진다. 그 곳곳에 사연을 매달고 있는 노래들은 언제쯤 1곡 7요소(작사·작곡·가수·시대·사연·모티브·사람)로 스토리텔링할 수 있을까. ‘명사십리 해당화~’같은 노래가 이런 절창인데...  

<7번국도> 노래 속 주인공은 사연 많은 술 한 잔을 나누던 옛사랑을 다시 만났을까. 무심한 갈매기 소리, 내 마음 끼룩끼룩 보고 싶다 사랑아, 사랑아~. 장민호는 신사가락(紳士歌樂) 미호낭랑(美好朗朗)이다. 조각으로 다듬은 듯한 수려한 외모의 가수여~ 미남과 호남이 하나 되어 부르는 맑고 밝은 노래여~. 장민호의 팬카페는 ‘민호특공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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