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칼칼한 소주 한 잔이 그리운 찬바람이 쌀쌀거린다. 동짓달 기인~ 밤에 한 잔 술을 걸치면 장닭이 목청을 돋우는 새벽이 서둘러 오실까. 그 새벽을 따스한 님의 가슴팍에서 맞이한다면, 어제 마신 술은 보약이다. 하지만 님을 보내고 혼자서 어둠 속을 푸지락거린다면 그 술은 공허이리라. 이런 감흥을 품은 노래가 2003년 임창정의 목청을 타고 이 세상에 나온 <소주 한 잔>이다. 이 노래는 운문으로 불러야 할까, 산문으로 감흥해야 할까. 운문의 아버지는 시경이고, 산문의 어머니는 서경이다. 굳이 가락을 붙였으니, 노래(歌詞)가 분명한데, 노래 속 화자는 완료된 이별의 슬픔을 소주 한 잔에 담아서 옛사랑에게 띄워보낸다. 토크 멜로딩이다. 노래 속 화자는 떠나보낸 그대와 이별한 그 이전보다 더 그대를 원한다고 직설한다. 하지만 혼자다. 혹시나 연인이 먼저 울지나 않을까 서둘러 스스로가 먼저 돌아선 그때부터, 다시 그리웠다고 울고 있다. 화자는 혼자 술을 마시면서 잔은 두 개를 펼쳐놓았을 것이다. 이 곡은 이별 후 실연의 아픔을 느끼는 감정을 남자 입장에서 얽은 노래, 때문에 남성들에게 더 사랑을 받는다. 아~ 한 잔의 소주에 어리는 사무침이여. 닭 울음소리가 들려올 새벽은 멀고 먼데~.

술이 한잔 생각나는 밤 / 같이 있는 것 같아요 / 그 좋았던 시절들 / 이젠 모두 한숨만 되네요 / 떠나는 그대 얼굴이 / 혹시 울지나 않을까 / 나 먼저 돌아섰죠 / 그때부터 그리워요 // 사람이 변하는 걸요 / 다시 전보다 그댈 원해요 / 이렇게 취할 때면 / 꺼져버린 전화를 붙잡고 / 여보세요 나야 / 거기 잘 지내니 / 여보세요 왜 말 안 하니 / 울고 있니 / 내가 오랜만이라서 /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 그대 소중한 마음 밀쳐낸 / 이기적인 그때에 나에게 / 그대를 다시 불러오라고 / 미친 듯이 외쳤어.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거나한 취중에 혼잣말을 허공중에 던진다. 허공지언(虛空之言)이다. 전화기 버튼을 꾹꾹 눌러 보지만 전원이 꺼져 있다. 몇 잔을 더 들이켜 마시고 난 뒤, 저쪽에서 전송되어 온 신호의 주인공은 낯선 사람이다. 떠나가신 연인이 전화번호를 바꿔버린 것이다. 아뿔싸, 사랑도 가고 전번(電番)마저 허공중에 날아 가버렸다. 공중지정(空中之情)이 되어버린 저 연인의 가슴팍을 무엇으로 채우랴. 임창정은 손길에서 조탁(彫琢)된 소주 한잔, 이 술은 스스로를 위무하는 보약 같은 술이다.

<소주 한잔>은 임창정이 2003년 가수 활동 은퇴를 선언하며 발표한 노래다. 제목에 술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방송금지(?) 되기도 하였으며, 임창정이 운영하는 술집(프랜차이즈 실내 포차) 이름이기도 하다. 훗날 그가 발표한 노래 <구월>은 이 <소주 한잔> 노래 주인공의 상대방(여성) 입장에서 부른 노래다. ‘이 세상 예쁜 사람보다/ 예쁜 그 사람/ 떠나던 그 눈이 부신 날에/ 멈춰진 그 모습/ 길에서 티비에서 인터넷/ 또 문득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흐르는 그 노래/ 받을 수 없었어/ 너인 것 같아/ 늘 함께 쓰던/ 그 번호와 많이도 닮아서/ 네가 그리운 건/ 내가 아닌 그 날의 약속일 뿐/ 난 익숙하게 잘 웃고/ 잘 살아가 자 이렇게/ 너 떠날 때 다짐한/ 그 약속을 위한 거라 난 괜찮아~.’ <소주 한잔>의 노랫말이 임창정의 손끝에서 지어진 사연도 달달하다. 어느 방송에 출연한 임창정의 실토이다. 한 작사가가 가사를 써오기로 했는데, 의사소통이 잘못돼서 녹음하는 날 가사를 써오지 못했단다. 그래서 본인이 녹음실로 가는 차에서 썼는데, 작곡가한테 혼났단다. 무슨 가사가 이러냐, ‘발라드에, 여보세요 나야~’가 뮈냐고. 그래도 한번 불러보자고 해서 겨우 녹음을 했단다. 작곡가는 나중에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했고, 그제사 임창정은 작곡가를 오히려 혼냈단다. 그 작곡가가 바로 이동원(1979~. 여고괴담, 태풍)이다.

소주의 원조 같은 술은 언제부터 사람들의 벗이 되었을까. 술은 눈물도 되고 한숨도 되고, 또 그 한숨과 눈물을 합친 시름을 견디어 내게도 한다. 프랑스 보들레르(1821~1867)는, ‘취하라, 언제나 너희는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거기에 있다. 유일의 문제다’라고 설파하면서 술을 예찬했다. 이 술이 우리 대중가요 유행가의 가사와 멜로디에 얽힌 시기는 1932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남자직업가수 채규엽의 목청에 걸린, <술은 눈물일까 한숨이랄까>가 그 노래다. ‘술이야 눈물일까 한숨이런가/ 이 마음의 답답함을 버릴 고장이/ 오래인 그 옛적에 그 사랑으로/ 밤이면 꿈에서 간절했어라// 이 술은 눈물이냐 긴 한숨이냐/ 구슬프다 사랑의 버릴 곳이여/ 기억도 사라진 듯 그 이로 하여/ 못 잊겠단 마음을 어쩌면 졸까.’

<소주 한 잔> 노래의 소재, 술은 시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김소월의 시를 보자. ‘술은 물이외다, 물이 술이외다/ 술과 물은 사촌이외다/ 헌데 물을 마시면 정신을 깨우치지만/ 술을 마시면 몸도 정신도 다 태웁니다/ 술 마시면 취케하는 다정한 술/ 좋은 일에도 풀무가 되고/ 언짢은 일에도 매듭진 맘을 풀어주는 시원한 술/ 나의 혈관 속에 있을 때에 술은 나외다/ 되어 가는 일에 부채질하고/ 안 되어 가는 일에도 부채질합니다/ 그대여 그러면 우리 한잔 듭세/ 우리 이 일에/ 일이 되어 가도록만 마시니/ 괜찮을 걸세’ 가수의 술은 눈물과 한숨, 시인의 술은 풀무와 부채인가 보다.

<소주 한잔> 노래의 주인공 임창정은 1973년 경기 이천 출생, 이천고를 졸업하고 중앙대에서 영화학을 공부하고, 1990년 영화 <남부군>으로 배우로, 1995년 <이미 나에게로>로 가수로 데뷔했다. 별명도 많다. 나창정·나두창정·창정이형·갓창정·킹창정·임착한·임번복·임꺽정·런창띵·쉰파파·임구라 등등...  그는 멀티엔터테이너라는 수식어를 정착시킨 인물이다. 이는 가수·예능·연기 세 분야에서 뛰어난 연예인을 의미하며, 김민종, 엄정화, 이승기, 아이유 등이 계를 잇는 추세다. 베테랑 남진은 이들의 이정표라고 해도 되리라. 임창정은 어렸을 때 창(唱)을 배웠기 때문에 음(音)의 널뛰기나 꺾기가 자연스러운데, 이런 이유로 임창정의 노래는 그가 아니면 느낌이 덜 살아난다는 세간의 평판도 있다.

대중문화예술계에는 천재(天才)와 영재(英才)가 많다. 천재는 특정 분야에 교육을 시키지 않더라도 스스로 도(道)를 깨친 사람, 먼 옛날로부터 한 나라에 분야별로 3~4명이 존재했단다. 또한 교육을 통하여 조기에 특정 분야를 통달하는 사람을 영재라고 한다. 이 영재는 백분율로 3% 정도가 되는데,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이를 15% 정도로 높이려는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천재와 영재는 누구일까. 이난영·반야월·박시춘·박춘석·이미자·조용필·나훈아·김이나·조영수·정동원 등등의 이름과 얼굴이 떠오른다. 대중가요 종사자 중 음악(국악·양악·실용음악)을 전공한 이들은 전문가들이고, 다른 분야를 전공하고 뮤지션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매니아들이다. 요즈음은 매니아가 전문가를 능가하는 시대이다.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든 술의 기원은 1만 2천 년 전이란다. 중국 북부 허난 지역 신석기 마을 지아후(Jiahu)에서 발견된 항아리의 흔적이 증거다. 『National Academy of Sciences』(2004. 12)에 의하면, 포도·호손 열매·꿀·쌀로 만든 발효음료는 BC 7000~6650년경에 생산되었단다. <소주 한잔> 노래의 주인공 임창정의 펜카패는 <빠빠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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