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고무신이 그립다. 어머님이 그립다. 지금은 보물 취급을 받고, 깊은 산중 절간의 섬돌에서나 볼 수 있는 고무신, 이는 우리 민족 삶의 진화와 함께 기억 속 퇴적물이 되어간다. 더군다나 검정 고무신에 얽힌 기억을 되살피려면, 기인 세월 저편에 있는 추억 여러 장을 들추어야 한다.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 갈피에 걸려 있는, 기업 CEO들이 반추하면 이야기 꺼리가 될 만한, ‘잊혀져 가는 과거, 살아 있는 역사 속의’보물이다. 이런 면면들은 흘러온 유행가 노랫말과 그 행간에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유행가의 매력이다. 흘러온 유행가는 저마다 그 탄생 시점의 시대 상황과 민초(民草)들의 삶을 품고 있는데, 그 노래가 세상에 나올 당시 작사·작곡·가수·시대·사연·모티브·사람들 습생 등을 섬세하게 묘사한 노래일수록 대중들의 입에 오래 불리고, 가슴팍에 애잔하게 도사려진다. 이런 노래가 국민애창곡이 된다.

2010년 한동엽의 목청을 타고 넘어 온 <검정 고무신>을 되새김해보시라. 어머님 따라 고무신을 사러 5일 장터에 가던 기억이 대롱거린다. 어렵사리 구한 검정 고무신을 밤마다 머리맡에 두고, 배고픈 보릿고개에서 잠이 들었었다. 잃어버릴라 닳아질세라 애도 태웠다. 그 고무신을 신고 어머님 따라 서낭당 고개를 넘어 외갓집에 갈 때는 고무바닥이 닳을까 봐, 신을 벗어 양쪽 손에 한 짝씩 들고, 맨발로 흙바닥을 담방 담방 걷던 기억이 새록거린다. 하얀 서릿발이 송송하던 그 겨울날의 아련한 추억, 아~ 어머님이 사 주신 검정 고무신.

어머님 따라 고무신 사러 가면 / 멍멍개가 해를 쫓던 날 / 길가에 민들레 머리 풀어 흔들면 / 내 마음도 따라 날았다 / 잃어버릴라 닳아질세라 / 애가 타던 우리 어머니 / 꿈에서 깨어보니 / 아무도 없구나 세월만 휭휭 / 검정 고무신 우리 어머니 // 잃어버릴라 닳아질세라 / 애가 타던 우리 어머니 / 꿈에서 깨어보니 / 아무도 없구나 세월만 휭휭 / 검정 고무신 우리 어머니.

노랫말이 어머님과 아들과 멍멍개의 발자국을 졸졸 따라 5일 장터로 간다. 길가에 들꽃도 팔랑거린다. 마음은 발걸음을 앞서가고, 시장에 다녀와서는 고무신을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자며 꿈도 꾼다. 어린 날의 기억이다. 노랫말을 얽은 김병걸·이충재의 검정 고무신에 얽힌 되새김이다. 607080세대들 삶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한국대중가요100년사에 고무신은 어떤 모티브로 얽혔는가.

1960년대 최숙자는 <옥색 고무신>을 절창했다. 1956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흑백 TV가 방영되었고, 1960년대 방영된 불후의 인기 드라마가 <아씨>였다. 이즈음 아씨들의 로망이 옥색 고무신이다. 지푸라기에 양잿물 비누와 재(災)를 묻혀서 싹싹 문질러 닦으면 옥색처럼 빛이 났었다. 청 푸른 흰색이었다. 이 시대 서정을 얽은 노래가 고무신 노래의 원조 격이다. ‘수줍은 분홍댕기 옥색 고무신/ 사뿐히 딛는 걸음 청초한 모습/ 달 밝은 보름밤에 꽃 내음 따라/ 살랑대는 치맛바람 나들이 가네/ 님 그려 고운 사연 풀잎에 돋아/ 이슬처럼 빨간 눈빛 무지개 피네~.’ 이 노래 속의 흰 고무신 보다 앞선 고무신이 검정 고무신이다.

1975년 한대수가 <고무신> 노래를 불렀다. 바다 어부인 아버지가 명태잡이에서 돌아오면 그 명태를 팔아서 고무신을 산다는 곡조다. 그 고무신을 신고 사랑하는 촌색시를 만나러 가는 시대 서사 곡이었다. 1990년대까지 뒤이어진 고무신 노래는 둘다섯의 <얼룩 고무신>, 오애란의 <검정 고무신>, 이미영의 <노랑 고무신>, 주병선의 <검정 고무신>, 김국환의 <검정 고무신>으로 이어져 왔다. 김국환의 노래는 할배 할매들로부터 아버지 엄니로 이어져 온 고무신에 얽힌 서사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렸을 적에 신으셨던/ 추억의 검정 고무신/ 엄마 아빠도 어릴 적 신던/ 헐렁하고 못생긴 검정 고무신/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웃지 못할 이야기~/ 꿈같은 얘기 검정 고무신~.’ 노랫말에 매달린 이야기가 전설 갔다. <검정 고무신> 2절 노랫말은 또 가슴을 꼬들꼬들 옥죄어 매이게 한다.

보리쌀 한 말 이고 장에 가면 / 사 오려나 검정 고무신 / 밤이면 밤마다 머리맡에 두고 / 보릿고개서 잠이 들었네 / 잃어버릴라 닳아질세라 / 애가 타던 우리 어머니 / 꿈에서 깨어보니 / 아무도 없구나 가슴만 휭휭 / 검정 고무신 우리 어머니.

그렇다. 이제는 애가 타던 그 어머니는 꿈속에서만 뵐 수가 있다. 휭휭한 세월 속의 아련함이다. 우리나라에 고무 산업이 시작된 시기는 1919년경, 부산 대륙고무주식회사가 시초다. 고무로 만든 구두모양 신발을 신은 시기는 1921년경, 최초로 고무신을 신은 사람은 대한제국 마지막 임금(조선 27대) 순종(1874~1926)이었다. 이 신발 원료인 고무는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부산항이 개항되면서 처음 유입된 물품 중 하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통용하던 신발은 짚신(짚세기)이었다. 이 시기에 검정 고무신이 생겨난 것이다. 이는 해방광복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1960~1970년대로 이어진다. 이 검정 고무신 상표들은 대부분 부산에서 생산되었으며, 국제화학·태화·삼화·동양고무 등은 한국 신발산업의 선봉이었다. 당시 대표적인 고무신 상표는 경성고무 만월표·국제화학 왕자표·태화고무 말표·삼화고무 범표·동양고무 기차표·진양고무 진양·보생 등이었다. 이런 고무공장과 관련한 서글픈 역사의 면면도 유행가 속에 아롱져 있다.

1960년 3월 2일 07시 30분경 주·야 작업조가 교대하던 시간, 부산시 동구 범일동에 있던 국제화학공업사 제2공장(국제상사, 현 LS네트웍스 전신)에서 성냥 취급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했다. 60여 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부상한 사고였다. 신입직원 이00(여. 1935년생, 당시 26세)이 작업대 위에 있던 성냥을 장난삼아 켠 순간, 옆에 있던 동료 직원이 이를 제지하자, 놀란 나머지 실수로 옆에 있던 연료통으로 성냥 불을 던져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이 화재로 600여 평 건물이 불에 타서 1억 환(약 10억 원)의 재산피해도 발생했다. 불의의 사고 예방 중요성을 직관(直觀)할 수 있는 지난날의 교훈이기도 하다. 공공기관이건 사설 단체이건 사고 예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 사연을 얽은 유행가가 1960년 남인수의 목청으로 세상에 나온 <한 많은 내 청춘>(사백환의 비극. 반야월 사, 나화랑 곡)이다. ‘열여덟 꽃봉오리 열아홉 꽃봉오리/ 눈물의 부산 처녀 고무공장 큰 애기야/ 하로에 사백 환에 고달픈 품 삵으로/ 행복하겐 못 살아도 부모 공양 극진 터니/ 한 많은 네 청춘이 불꽃 속에 지단 말이냐~.’ 이 공장 직원들은 17~18세 전후 여직원들이었다. 하루 24시간을 3~4개 조로 나뉘어 일한 그들의 하루 급료는 400환 내외였다. 1960년 당시 80㎏ 쌀 1가마 3만 환, 자장면 한 그릇 150환, 맥주 1병 400환, 4식구 하루 보리밥 끼니 식대가 400환 정도였다. 1950~70년대 초까지 공순이(공돌이)·식순이·차순이·빠순이·방순이 등의 비속어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었다. 제조공장 생산 라인 직원·식모살이·대중교통 버스 차장·술집 여급·다방 아가씨 등과 관련지은 말들이다. 우리 근현대사에 멍울진 상흔이다. 요즘은 공과대학 여학생(남학생)을 공순이(공돌이), 공부만 하는 여자(남자)들을 칭하기도 한다는데, 격세지감(隔世之感) 세풍지수(世風之水)이다.

<검정 고무신> 노랫말을 지은 김병걸은 의성에서 출생하여 안동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는 낙동강 변 부자의 9형제 중 일곱째. 대구예술대에서 방송 연예를 전공 후 월간 문학세계를 통하여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의 노랫말 스승은 <마포종점>을 작사한 삼포 정두수(1937~2016. 하동 출생 본명 정두채)다. 그는 여수 MBC·광주 교통방송에서 가요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2천여 곡의 대중가요를 만들었다. 그는 가요·찬불가·동요·지방자치단체 노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다함께 차차차, 찬찬찬, 서울아 평양아, 삼각관계, 사나이 눈물> 등 노랫말도 지었다. <검정 고무신> 원곡 가수 한동엽(거제 출생, 본명 한천도)은 1980년대 그룹 블랙이글스 보컬 출신으로 <휴전선아 말해다오>로 솔로로 데뷔하였다.

한국근현대100년사에 얽힌 노래,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1백 1만여 곡 중에서 <검정 고무신>만큼 역사를 아물고 있는 노래도 드물다. 순종 임금이 고무신을 처음 신은 1921년은 우리 대중가요 100년의 시초 곡이라고 할 수 있는, <희망가>(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를 민초들이 본격적으로 부르기 시작한 때다. 그래서 2021년을 한국대중가요 100년이라고 하는 것이다. 2022년 우리나라 중소기업인은 660만, 대한민국 실물경제 혈맥 같은 이들의 삶을 품은 신유행가(新流行歌)는 언제, 어느 가객의 목청을 넘어 대중들의 귓불에 쟁쟁거릴까. 꿈에서 깨어보니 아무도 없구나, 가슴만 휭휭~ 검정 고무신 우리 어머니와 같은, 시대 이성과 대중들의 감성을 버무린 절창. 커럭커럭 저물어 가는 임인년(검은 호랑이), 환하게 밝아 오는 계묘년(검은 토끼)의 서정과 희망을 매달은 화살 같은 유행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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