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검은 호랑이의 해, 임인년 마지막 달력 한 장이 대롱거린다. 서둘러 기다려지는 새봄과 함께 피어날 꽃무리 사이로 가물거릴 아지랑이를 향한 마음도 포롱거린다. 이런 날 닻이 없는 밤 배에 홀로 앉아서, 그리운 곳을 향하여 흘러가라고 한다면, 그대의 지향점은 어디가 될까. 만약 그대가 푸르른 날, 가슴팍 활활거리게 하던 첫사랑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면, 고향의 강기슭에 두고 온 서러운 눈물방울을 떠올린다면, 밤하늘의 별은 그대가 타고 있는 배의 돛을 어디로 돌려줄까. 이런 상념에 젖게 하는 노래가 귓전에 자랑거린다. 병아리 가수에서 어른이 가객으로 성장해가는 정동원의 <아지랑이꽃>이다. 어른이는 어린이와 어른을 융합한 의미다. 그의 목청을 넘어오는 애절한 노랫가락이 그러하고, 작품자들이 얽어서 오선지 위에 드러눕힌 감흥의 노랫말은 더하다. 아지랑이와 아지랑이꽃은 어찌 다른가. 내 마음속에서 헤실거리는 고운 님이 꿈속에서 건네주어, 아랑~ 아랑~ 간들거리는 아지랑이꽃이여~.

고운 님 건넨 아지랑이꽃 / 내 맘에 앉아 헤실거리네 / 노란 별 무리 밤하늘에 총총 / 내게 손짓하듯 반짝반짝 빛나면 / 따스한 봄 같은 그의 손을 잡고 / 둥실둥실 구름 위를 떠다니고파 / 님의 걸음 비추는 등대가 되리 / 달처럼 그 곁에 있으리 / 힘이 들고 지치면 내게 기대오 /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언제나 지켜주리.

노랫말이 시보다 더 낭랑하고 달콤하다. 그러니 이 곡은 노래라기보다는 낭송시(朗誦詩)로 청음(聽音) 하면 더 좋을 사설(辭說)이라고 해도 된다. 노래를 낭송하듯 부르는 정동원의 호흡이 자꾸 거칠거리고 탁성으로 목구멍에서 쉭쉭거린다. 그럴 때마다 애청자의 가슴팍도 훅훅~ 답답해지다가 뒤를 이어가는 서정적인 노랫말에 숨을 다시 고르게 된다. 그대는 지금 어디를 지향하여 흘러가고 있는가. 닻이 없는 밤 배에 그리움 싣고 둥실둥실 흘러흘러 출렁거리며 익어가는 인생이여~.

이 노래 속의 아지랑이는 땅 거죽 가까이에서 뜨거워진 공기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가는 모양이다. 이때 높은 곳의 서늘한 공기는 아래로 흐른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볼 수가 없고,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봄날에 볼 수 있는 대류(對流) 현상이다. 어린 날 이 아지랑이를 붙잡으려고 푸석푸석 매마른 들녘을 내달리던 기억이 노래를 따라 가물거린다. 이 노래의 모티브 아지랑이꽃은 사할린과 일본이 원산이며, ‘은쑥, 구와쑥’으로 불린다. 줄기에는 하얀 털이 붙어 있고, 이파리는 녹색으로 5~7월에 외줄기 꽃대를 길게 내밀어서, 그 끝에 진노랑색 방울꽃을 매단다. 꽃말은 ‘사모하는 마음’이라고 하니, 노래를 듣는 내내 마음이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듯하다. 뉘라서 이런 마음이 일지 않으리오. 2절 노랫말은 떠나간 고운 님의 모습을 아롱아롱 또 불러낸다.

고운 님 닮은 아지랑이꽃 / 내 맘에 가득 나풀거리네 / 닻이 없는 밤 배 그리움을 싣고 / 둥실둥실 그 꿈속을 떠다니고파 / 고운 님 닮은 아지랑이꽃 / 내 맘에 가득 나풀거리네 / 닻이 없는 밤 배 그리움을 싣고 / 둥실둥실 그 꿈속을 떠다니고파.

이 노래를 지은 작사가 조은희·임성현은 아지랑이에 대한 추억과 기억의 감흥을 감칠맛이 좌르르 흐르게 얽었다. ‘반짝반짝·나풀나풀·둥실둥실~’이란 어휘가 ‘별무리·등대·구름 위~’와 어우러져 노곤한 일상에 허우적거리는 어른이(애늙은이)들의 자장가처럼 재랑거린다. 연세(年歲)는 무거워도 마음은 늘 가볍고 푸른, 늘 봄 같은 늙청이(늙은 청년)들의 귀와 마음도 호사시킨다. Alaways KOALA(임성현·김태형·이근섭)의 가락이 먼저였을까, 아니면 노랫말이 밤하늘의 별을 먼저 지칭했을까. 오늘날 MZ세대들은 둔탁해지는 사회환경과, 다난하면서도 개체 주관적으로 옹골져 가는 사회관계 속에서 영혼이 애늙어 간다. 하지만 늘어만 가는 고령 세대는 오히려 몸과 마음이 연식보다 훨훨~ 새파랗다. 그래서 이 노래 <아지랑이꽃>의 감흥이 더 반짝거린다. 황혼의 산 너울을 바라보는 세대들이 이 노래에 갈채를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추억은 지나간 날에 매달려 있는 아름답고 달콤한 생각의 자락이다. 바짝 마른 솔잎을 태우는 향기로운 내음과 같다. 기억은 따끔거리는 아픔을 아롱아롱 짜깁고 있다. 장미꽃 떨기를 만지작거리다가 줄기에 매달린 가시에 나도 모르게 찔렸던 아픔과 같다. 대중가요 유행가는 이런 추억과 기억을 버무린 예술품이다. <아지랑이꽃>은 이런 신곡이다. 예술은 머릿속으로 메시지를 전해주고, 오락은 가슴팍과 어깻죽지에 흥을 달군다. 이런 면에서 흘러간, 흘러온, 흘러갈 유행가의 원곡은 예술품이고, 리메이크(remake) 곡(가창)은 오락흥품(娛樂興品)으로 통념(通念) 함이 좋으리라.

이런 맥락에서 보면 오늘날 열풍처럼 펄럭거리는 대중가요 경연프로그램과 스핀오프(spin off) 무대에는 리메이크 가창이 지나치고 과(過)하다. 이는 오래전 세상에 나온 노래 가사와 가락 일부를 수정하여 새 가수의 창법으로 흥을 달구는 것인데, 간들간들 쿵쾅거리는 무대와 공중·지상파를 타고 배송된 안방 시청자들 사이를 연결해 주는 메시지와 흥을 가름하거나 엇대기가 난감하다. 휘황찬란한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들고 열창하는 새파란 가객들이, 먼 옛날 악극단 무대 위의 어색하게 화려했던 앵조(鸚鳥, 조련된 앵무새)처럼 처연(悽然)하게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 머리를 뜨겁게 하는 재미와 어깨를 덩실거리게 하는 흥에 겨워 가청우민(歌聽愚民)이 되어가는 듯한 팬덤들에게 전해드릴, 흘러온 유행가가 품은 역사의 마디에 매달린 의미(義味)는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 원곡 노래 작사·작곡·가수들이 몰입한 땀과 가창이 품은 시대적 메시시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듯하다.

우리 대중가요 유행가는 1920년대에 불리기 시작하여, 1930년대에 기반을 다지고, 1960년대에 뽕짝이라는 이름으로 크게 발흥(發興)했었다. 오늘날 트로트의 태동이다. 이는 1970~80년대 권위와 낭만의 충돌기를 거치며 잠잠하다가, 1990년대에는 전통가요 부활 정책으로 트로트 삼국시대를 다시 열었지만, 신구세대 간의 갈등과 양극화로 두 갈래가 되었었다. 이러한 잠든 바람의 불길에 휘발유를 뿌린 것이 2019~2020년 미스·미스터트롯 경연이다. 30년 만의 유행회귀(流行回歸)이다. 대중가요의 유행도 의식주(衣食住) 유행 윤회와 유사하다. 660만 중소기업 CEO들이 눈여겨 살필 인류학적인 흐름이고, 경제 경영학적인 경향과도 연계된다. 이러한 우리 유행가 강 물결에 크다란 징검다리로 놓인 서양음악의 장(場)이 미8군무대였다. 이는 1955년 미8군사령부가 일본 동경에서 서울 용산으로 이전해 온 이후 생겨난 뮤지션 시장이었다. 그리고 또 70여 년이 흘렀다. 이처럼 생성·진화·강화·승화해온 21세기 우리 유행가 물결은 공중지월(空中之月)이다. 하늘에 환한 둥근 달과 같다. 오래 흘러온 노래는 오래간다. 오래 흘러갈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감응하는 나라는 흥세(興世)를 누린다. <아지랑이꽃>은 오래 흘러갈 신유행가다.

<아지랑이꽃>을 열창하는 열여섯 살 정동원은 나이보다 어른스럽다, 앳되고 잘 생겼다. 트롯병아리, 하동 출신으로 서울로 삶(가수)의 터전을 옮긴 국민손자다. 한국대중가요100년사에 나타난 21세기의 명물이다. 동원이는 하동군 진교초·진교중을 거쳐 2020년 서울 선화예술중으로 전학했다. 그의 노래에 배인 한(恨)과 흥(興)의 옹달샘은 무엇일까. 동원이는 2018년 전국노래자랑 함양군편에서 진성(1960년 부안 출생, 본명 진성철. 카바레 예명 최윤진)의 절창 <보릿고개>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날 알토 색소폰으로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을 연주했고, 연말 결선에서 <그물>을 불러서 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목청에 걸린 <그물, 청포도 사랑, 불효자는 웁니다, 동백아가씨, 효도합시다, 나성에 가면> 등의 노래에는 열성 팬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의 노래는 백년가웅(百年歌雄) 춘개추화만만(春園秋花萬滿)이다. 백 년에 한 번 피어나는 13월의 노래 영웅, 봄 정원에 그득하게 피어나 무르익는 만발 꽃동산이다. 정동원 팬클럽은 ‘우주총동원’이다.

한국대중가요100년사에 정동원처럼 어린 나이에 신동(神童)으로 가수의 길로 들어선 이들은 많다. 이애리수 9세, 황금심 13세, 이미자 6세, 윤복희 6세, 하춘화 7세, 장윤정 8세, 오유진 13세, 홍잠은 8세, 김태연 10세, 김다현 12세, 김유화 8세...  모두가 반짝거리는 가인(歌人)들이다. 그중에 정동원은 남진·나훈아·진성·이봉조(색소폰 연주가. 1931~1987. 남해 출생. 가수 현미의 남편)의 합체(合體)라고 할 수 있다. 오디오형·비디오형·애간절형·통절연주형을 합친 가객이다. 2022년 섣달의 밤바람이 차갑다. 겨울이 깊은 것은 새봄이 저만치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다.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이여 어서 오시라. 아듀 검은 호랑이여, 월컴 검정 토끼님 2023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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