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검은 토끼가 토굴 속에서 뛰쳐나올 채비를 하는 정월이다. 연둣빛 새싹이 눈을 틔워 짙어질 푸르름처럼, 온 나라에 싱싱한 기운이 감도는 듯하다. 21세기 해를 거듭하면서 더욱 세차게 쿵쾅거리는 흘러온 우리 노래, 리메이크 열풍도 여전하다. 원곡 가수가 전했던 메시지에 가창과 연출미를 더한 재미(在美)와 흥미(興味)에 어깨가 덩실거린다. 이런 시절에 다시 의미(義味)를 더하면서 풍미(豐美)할 유행가는, 지난날 온 나라와 지구촌을 들썩거리게 했던 <아침의 나라에서>이다. 이 노래의 주인공 열창 가객 김연자가 무대와 심사위원석을 오가기가 바빠 숨이 가쁘다. 시민축제와 열린음악회에서 이 노래를 열창하고,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감성을 머금은 공감 평을 전달하여 참가자들의 의기에 풍구질도 한다. 이 노래는 1986년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를 머금은, 대회 개최 4개월여 전에 발표된 유행가다. 시인 출신 작사가 박건호(1949~2007, 원주 출생)가 노랫말을 짓고, 치과의사 출신 작곡가 길옥윤(1927~1995, 영변 출생)이 멜로디를 얽어서 엔카의 여왕 목청을 통하여 세상에 나온 후, 37년의 세월 고개를 넘어서 흘러온 절창이다. 우리의 가슴이 열리는 곳, 오~ 서울 코리아.

모두가 다정한 친구처럼 / 모두가 다정한 형제처럼 / 우리의 가슴이 열리는 곳 / 오 서울코리아 / 사랑이 넘치는 거리에서 / 바람이 시원한 강변에서 / 일류의 꿈들이 피어난다 / 오 서울코리아 / 푸른 하늘에 나부끼는 깃발은 / 세계가 하나로 뭉쳐지는 평화의 손길 / 모이자 모이자 아침의 나라에서 / 모이자 모이자 우리 함께 달리자 // 나라와 나라는 이웃처럼 / 나라와 나라는 가족처럼 / 모두가 하나로 이어지는 곳 / 오 서울코리아 / 찬란히 떠오른 햇빛 아래 / 언제나 이 땅은 아름답게 / 지구의 미래는 밝아온다 / 오 서울코리아 / 푸른 하늘에 나부끼는 깃발은 / 세계가 하나로 뭉쳐지는 평화의 손길 / 모이자 모이자 아침의 나라에서 / 모이자 모이자 우리 함께 달리자.

노래 속 코리아는 아침의 나라다. 이곳에, 세계가 스포츠 십(ship)이라는 기치 아래 모여서 평화로운 길을 지향하는 경기를 펼치자는 메시지를 품은 노랫말에 정감이 넘친다. 시원한 강변은 ‘한강의 기적’을 품은 한강이다. 한강은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백두대간 중 해발 1,418m 금대봉 허리가 발원지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온 샘물이 검룡소에 고였다가,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 해구(海口)까지 490여km를 유장하게 흐른다. 서울을 통과하는 한강의 폭은 6백~1천2백 미터, 프랑스 파리 센 강보다 3~5배 정도 넓은 강이다. 한강(漢江)은 큰 강이라는 의미이며, 고구려 때는 아리수, 백제시대에는 욱리하라고 불렀다. 이 한강을 소재로 한 노래는 1932년 이은상의 『노산 시조집』에 실린 <고향생각>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것이 가곡·민요·유행가를 망라하여 최초인 듯하다. ‘어제 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 하기/ 소식을 전하자고 갯가로 나갔더니/ 그 배는 멀리 떠나고 물 만 출렁거리오.’ 이 노래 속의 고향은 노산의 출생지 마산인 듯하다. 이어지는 한강 노래는 1952년 6.25 전쟁 중에 심은옥이 부른 <한강>(한 많은 강가에 늘어진 버들가지는~)이 오늘까지 강물처럼 흘러온다.

<아침의 나라에서> 노래 제목에 달린 ‘아침의 나라’는 피렌체 출신 영국 탐험가 헨리 새비지 랜도어(A. Henry Savage-Landor, 1865~1924)가 1895년에 발표한 책,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he Morning Calm)에 소개된 우리나라다. 이 책은 고고학자이기도 한 그가 일본을 거쳐 조선·중국을 경유한 여행 중, 우리나라 방문 때에 쓴 기행문이다. 그는 27세였던 1889년에 요코하마를 시작으로 극동 지역과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을 했다. 일본을 거쳐 조선을 방문한 그는 민영환(1861~1905. 서울 출생, 호조판서 민겸호의 아들) 등 당시 권력가들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고, 조선 사람들 생김새와 일상의 모습들을 스케치했다. 이 책에는 그림과 함께 조선인들의 다양한 문화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서울 아시아경기대회는 1986.9.20.~10.5일까지 열렸다. 이 경기는 1951년 인도 뉴델리에서 제1회가 개최되었다. 서울 대회에서는 ‘영원한 전진(Ever Onward)’이라는 표어 아래 27개국 4천8백여 명이 25개 종목으로 기량을 겨루었다. 이때 1만9천여 명의 진행요원들이 잠실올림픽경기장을 중심으로 33개 경기장에서 활약하여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루었다. 이 대회에는 5만4천여 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였고, 우리나라는 금메달 93개를 획득하여 종합 2위를 했고, 이 경기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누른 첫 대회였다. 아시아경기대회를 수행한 조직은 1982년 4월 23일 발족 된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가 시초이며, 이 조직위원회는 1983년 2월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와 통합되었다. 이 대회에 사용된 33개의 경기장 중 15개는 신설하였고, 54개의 연습장은 대부분은 각급학교나 실업팀의 기존 체육관으로 충당하였다.

<아침의 나라에서>를 작곡한 길옥윤은 제주도 출신 혜은이(본명 김승주)가 절창한 <감수광>을 만든 본명 최치정이다. 길옥윤은 1927년 진달래꽃의 고향 평안북도 영변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치과대를 다녔지만 색소폰을 연주하며 음악의 길로 들어서서 대중음악인이자 음유시인으로 살았다. 그는 1966년 결혼한 패티김과 이혼 후 몇 차례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패를 거듭했고, 1977년에는 혜은이와 함께 서울가요제에 <당신만을 사랑해>로 참가해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재기한다. 당시 두 사람은 수상 감격에 겨워 작곡자와 가수로 서로 부둥켜안고 뛰면서 기쁨을 표시했다. 이를 지켜본 팬들 사이에 두 사람의 염문설(廉問說)이 나돌기도 했다. 혜은이는 자상하며 섬세했던 길옥윤은 아버지라기보다 어머니 같은 감성의 작곡가라고 회상한다. 이후 길옥윤은 일본에서 기거하던 중 병이 악화되어 초취한 모습으로 돌아와 1995년 3월 강동구 강동성심병원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는다. 그의 영결식에서는 옛 아내 패티김이 그의 작품, <초우>(가슴속에 스며드는 고독이 몸부림칠 때~)를 부르며 영별하였다.

열창 가객 김연자는 1959년 광주광역시 출생, 1974년 16세에 <말해쥐요>로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광주 수피아여고를 졸업하였으며, 우리나라 홍익기획·일본 YJK company 소속이다. 그녀의 대중적인 인기는 1981년 <노래의 꽃다발> 트로트 메들리 음반을 발표하면서다. 이후 <진정인가요, 수은등, 씨름의 노래, 아침의 나라에서, 10분 내로, 아모르 파티, 쟁이쟁이, 천하장사> 등 히트곡을 이어간다. 김연자는 28세에 <아침의 나라에서>를 불렀는데, 오늘날 이순의 고개를 넘은 인생 나그네 가객으로 대중들과 활기찬 소통을 하고 있다.

<아침의 나라에서> 노래가 머금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는 탁구 여제(女帝) 현정화의 감동 어린 실화도 매달려 있다. 그녀는 공식 대회 메달은 총 133개, 그중 금메달만 75개를 보유하고 있는 주인공이다. 어느 방송사의 국대(국가대표)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녀의 회상, 아직 현정화의 메달 벽을 넘은 선수는 아무도 없단다. 현정화는 1985년 17세 때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고, 1986년에 서울 아시안게임이 있었다. 당시 현정화의 결승 상대는 중공(중화인민공화국. 1992년 한중수교 후 중국으로 명명), 무려 3시간 동안 접전 끝, 3대 1로 금메달을 쟁취한 주인공은 현정화와 양영자였다. 당시 금메달을 딴 후, 대한민국은 열광의 도가니로 펄펄 끓었다. 그 경기를 보고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분도 있었단다. 현정화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직접 조문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he Morning Calm)에 대한, 2023년 대한민국의 묵시(默視)와 태세(態勢)는 어떠해야 할까. 프로복싱 선수, 4전 5기 신화의 주인공 홍수환(1950~. 서울 출생), 프로 통산 전적 41승(14KO) 5패 4무, 그는 1977년 11월 27일(현지 시각 11월 26일 밤) 파나마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슈퍼밴텀급) 초대 타이틀 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3회 KO로 누르고 챔피언이 되었다. 홍수환은 당시 2회에 4번의 다운을 당한 뒤 3회 KO로 승리를 했었다. 그는 목청을 돋우어 역설한다. 이제는 아침이 활기찬 나라로 거듭나야 한다고. 그래서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태세를 갖추어서, 다른 나라가 감히(함부로) 넘볼 수 없는 강력한 나라로 거듭나야 한다고~.

흘러온 유행가 <아침의 나라에서>를 음유하는 2023년 정월, 대한민국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듯하다. 대한민국 파이팅~. 고요한 아침이 활기찬 새벽으로, 새벽형 사람들의 운기(運氣)로 넘쳐나길 앙망한다. 찬란히 떠오른 햇빛 아래, 언제나 이 땅은 아름답게, 지구의 미래는 밝아온다. 오 서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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