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중년 인생 굽이를 돌아가는 CEO들 엄마는 안녕하실까? 그 엄니가 지어주신, 더운 김 모락거리는 밥사발을 마주한 지는 얼마나 되었을까. 그 엄마가 다독다독 담아준 밥, 그 이름이 母糷(모란)이다. 이런 사연을 머금은 노래가 바로 국악인 출신 대중가수 유지나가 절창한 <모란>이다. ‘밥을 짓는다’는 의미를 머금은 란(糷) 자를, 어찌 유행가 제목으로 삼았을까. 시인이자 대중가요 작사가인 이경의 기치가 번쩍거리는 번갯불을 붙든 듯하다. 얼핏 귓가에 스치는 느낌으로는 모란(牡丹)꽃을 연상하기 쉬운데, 이 노래 제목 <모란>의 의미는 꽃과는 상관이 없다. 우리가 통속적으로 세상이라고 하는 지구별에, 지혜로운 사람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로 살다가 간 인구는 1,070억 명으로 추산한다. 오늘날 지구에 살아가는 80억여 명의 13배 정도인데, 이는 영국 BBC가 미국 인구조회국(PRB)의 추정치를 근거로 설명하는 통계이다. 더러는 300억 명이라는 설도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가슴속에 품고 있는 공통된 두 단어는 ‘엄마와 고향’이란다. 그래서인가, <모란> 노래는 인생 중년 고개를 넘어선 이들의 사모곡(思母曲) 대명사처럼 인기가 높다. ‘엄마가 그랬었지, 나처럼 살지 말라고. 남 하는 것 다 해 봐라’고~.

엄마를 닮았구나 / 거울 속 나의 모습이 / 엄마를 닮았구나 / 눈가에 내린 주름도 / 모든 걸 닮았구나 / 세상을 사는 모습도 / 눈물도 웃음도 입맛까지도 / 엄마가 그랬었지 / 나처럼 살지 말아라 / 엄마가 그랬었지 / 남 하는 것 다 해봐라 / 여자라 참지 마라 어떠한 순간에도 / 언제나 엄마는 너의 편이라고 / 엄마 엄마 엄마 엄마 / 부를수록 먹먹한 그 이름 엄마 / 엄마 엄마 엄마 엄마 / 제발 아프지 마세요 /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 아기처럼 점점 작아지는 울 엄마 / 다음 세상엔 그때는 엄마가 / 나의 딸로 태어나주세요.

노랫말이 절절하다. 엄마의 말(당부)에 한숨과 눈물이 어른거린다. 생체적인 DNA의 닮음이야 말하여 무엇하리. 하지만 현실 속 사회 관계적 환경은 엄마의 유훈(遺訓)을 생각하는 딸의 가슴팍을 더 후벼판다. 남 하는 것, 다해 볼 수가 있으랴. 여자라서 참아야만 하는가, 아니면 들이대야 하는가.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이 대목에서 한세일의 <모정의 세월> 노랫말이 흥얼거려진다. ‘동지섯달 긴긴밤이 짧기만 한 것은/ 근심으로 지세우는 어머님 마음~.’

얼마 전 서울 마포에 있는 일성여자중고등학교 독후감 발표 시상식에 가서 ‘엄마는 하늘바다’라는 주제로, 한국대중가요 100년 세월 따라 노래 따라 스토리텔링 재능기부 강연(講演)을 했었다. 그때 마포구청 대강당 1·2층을 가득 메운, 중고등학생(여성) 500여 명, 그분들 평균 연세는 6학년9반, 69세였다. 이 학교는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차 만국평화공동회의에 대한제국 대표로 파견되었던, 이준 열사(1859~1907. 북청 출생)의 호, 일성(一醒)을 학교 이름으로 사용했다. 한 번의 깨우침(큰 깨우침)을 기치로 일생을 살아내신 이준 열사는 살아생전에, ‘무식(無識)과 불학(不學)을 사람들 삶의 가장 위험한 요인’으로 삼았었는데, 이를 학교 설립 취지로 택한 것이었다.

이에 부응하여 이 강연에서 필자는, 이 학교 재학생 모든 분(여성)을 ‘하늘바다’로 존칭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이름 어머니에 대한 예칭(譽稱), 그분들의 삶을 기리는 의미였다. 그렇다. 그 엄마는 누군가의 딸로 출생했었다. 자라면서 효녀였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아들딸의 엄마가 되었다. 어느 가정의 며느리였다. 아들딸을 키워서 짝을 맺어주었다. 장모가 되었다. 시어머니가 되었다. 이를 다 합치면 ‘하늘바다(女性)’이다. 그날 내 눈앞에서 ‘일성과 하늘바다’를 큰소리로 외치던 분들 모두는 유지나의 노래 <모란>의 주인공들이었다. 부를수록 먹먹한 그 이름 엄마~ 엄마이다.

내엄마를 닮았구나 / 나이가 들어갈수록 / 엄마를 닮았구나 / 아파도 참는 모습이 / 별걸 다 닮았구나 / 용서에 넉넉해지고 / 예쁜 것 앞에선 미소를 짓고 / 엄마가 그랬었지 / 내 나이 되면 안다고 / 엄마가 그랬었지 철들면 이별이라고 / 가진 것 그보다 더 / 몇천 배 더 준 사랑 / 엄마가 지어준 밥이 먹고 싶다 / 엄마 엄마 엄마 엄마 / 부를수록 먹먹한 그 이름 엄마 / 엄마 엄마 엄마 엄마 / 제발 아프지 마세요 /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 아기처럼 점점 작아지는 울 엄마 / 다음 세상엔 그땐 엄마가 / 나의 딸로 태어나주세요.

드디어 작사가 이경이 속내를 드러냈다. 엄마가 지어준 밥이 먹고 싶단다. 노래 속 주인공이 내 나이 되면 안다고 하셨던, 그 엄마의 나이가 된 것이다. 철이 들면 이별이라는 말의 속내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그런 내가 나이가 들면서 커갈수록 엄마는 자꾸 작아만 진다.

<모란> 노래 이름패에 매달린, 주인공이 그토록 갈망하는 엄마의 밥은 언제부터 우리의 주식(主食·韓食)이 되었을까. 밥은 신석기시대부터 곡식을 기르면서 시작되었단다. 그 시기 유적에서 발견된 곡물이나 토기의 흔적으로 미루어 보아, 쌀보다는 주로 조·피·기장 같은 곡식으로 밥을 해 먹었고, 볶아서 조리했음을 알 수 있단다. 그 뒤 토기 만드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곡식에 물을 부어 끓여 먹는 죽(粥) 형태로 발전했고, 삼국시대에 이르러 벼농사가 발달하면서 쌀로 밥을 짓는 조리법을 사용했단다. 특히 고구려 시대에는 시루에 쌀을 쪄서 먹었고, 그 후 철기 발달로 철제 솥이 등장하여 오늘에 이른단다. 이는 김부식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서 『삼국사기』에도 정(鼎, 솥)과 취(炊, 밥지음) 등으로 기록되어 있음이다.

<모란>(母糷), 이 절묘한 단어를 대중가요 노래 제목으로 내세운 작사가 이경은 시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항상 가수들 뒤에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스스로 가수들의 그림자라고 말하는’ 언어조탁(言語彫琢) 예술가다. 이승철의 <떠나지 마>, 김송이의 <사랑이 고프다>, 홍채린의 <눈화장>, 김도향의 <남은 시간> 등이 그의 손끝에서 지어진 노랫말들이다. 시집 『그대는 말이 없어 침묵이라 하고』, 『널 그리며 나의 사랑은 아직도 ING』를 발간했고, 소설 『금낭화』도 펴냈다.

<모란> 작곡가 신재동은 1959년생, KBS 전국노래자랑 악단장으로 돼지아빠(별명)로도 불린다. 그는 김인협 악단장 시절부터 전국노래자랑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였고, 2012년 김인협단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하면서 악단장 뒤를 이었다. 그는 2022년 작고하신 송해(1927년 황해 재령 출생) 선생과 전국노래자랑에서 명콤비였다. 송 선생께서 사회를 진행하다가 ‘재동아, 재동아~’라고 부르면, 천진스러운 어린이 출연자에게 1만 원 지폐를 바로 건네주던 주인공이다. 그가 송 선생의 양아들이라는 말을 들었던 까닭이다. 신재동 악단장은 말한다. 송 선생은 우리나라 근현대 100년에 걸친 대중문화예술의 박물관 같은 분이었다고.

<모란>을 열창한 유지나(본명, 유순동)는 판소리 가수다. 예명도 많다. 유진아, 유진화, 류진화 등. 1968년 충남 부여 출생, 국악고와 추계예술대를 거쳐 1983년 KBS 전국 국악콩쿨에서 <심청가>를 불러 최우수상을 받았고, 1987년 MBC 노들가요제에서 <소문났네>로 대상·최우수 가창상을 수상하였다. 그녀는 7살부터 판소리를 접했고, 국악고 시절 판소리 부분 전국 1등을 하였으며, 대학에서도 국악 판소리를 전공하였다. 그런 그녀가 1998년 <저 하늘의 별을 찾아>를 부르며 대중가수로 전향한다. 특히 2005년 국악과 트로트를 접목하여 발표한 곡 <쓰리랑>은 2009년 독일 플라잉문 제작사에서 만든 ‘나의 살던 고향’ 삽입곡으로 들어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 영화는 1960년대 독일로 파견되었던 우리나라 간호사가 귀국하여, 고향 남해의 한 마을에 정착하면서 겪는 문화적 충격과, 모국에 적응하는 과정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다룬 영화다. 유지나는 지난날, 보증금 500만 원 전세를 살던 시절, 10억 원의 누드모델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거절했단다. 아침마당에 출연했던 그녀의 고백이다.

21세기는 가요우민(歌謠愚民)과 재창문란(再唱紊亂)을 염려해야 할 만큼, 흘러온 국민애창곡 리메이크 경연 바람이 쿵쾅거린다. 1970년대 후반에 일어난 창작가요 경연대회가 오히려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이 바람결에 매달리는 응모자들의 전공이나 출신 이력도 다양하다. 국악·뮤지컬·성악·연기·MC·축구·격투기·발레 등을 하던 이들이 미스& 미스터트롯과 불타는 트롯맨 같은 스핀오프(spin off) 경연장으로 몰려든다. 타고난 재능 불길에 휘발유를 뿌리는 듯한 대중문화예술인들 삶의 에너지원은 무엇인가? 엄마가 지어준 밥, 더운 김 모락거리는 모란(母糷) 한 사발이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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