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예술인가, 오락인가. 환락적인 무대 위에 리메이크 노래로 가창력과 연기력을 발산하는 가수들의 열기가 뜨겁다. 노래는 귀에 익었는데, 가객은 생경하다. 지난 세월 원곡 가수들이 전해 주던 노래 메시지를 회억(回憶)할 여유도 없다. 화려한 무대 연출·음향·조명과 가객들이 발산하는 끼가 그렇다. 남녘으로부터 들려오는 봄꽃 소식의 화사함과 함께 안방 시청자들의 가슴팍을 울렁거리게 하는 유행가 경연이 이러한 감흥 불꽃에 휘발유를 뿌린다. 그 불길 속, 불꽃 한 자락이 국악트롯맨 조주한이 열창한 <한량가>이다. 원곡 가수는 영탁, 노래를 지은 작사·작곡가는 류선우다. 이 밤 놀아보자 내 각시야~. 지덩기당징 울려라~.

지덩기당징 울려라 / 거문고 소리 / 이 한밤을 멋으로 채워라 / 달빛이 좋구나 예서 놀아보자 / 오늘은 네가 내 각시로구나 / 더덩지덩 / 거문고 가락에 취하고 / 어스름 달빛에 취한다 / 대장부 인생 무엇이 더 필요하랴 / 그 누가 세월을 붙잡아 / 천년을 살까 / 어찌 이 밤 놀지 않으랴 / 한량아.

노랫말이 풍류다. 1절 노랫말의 맥락은 대장부와 한량이다. 이를 달빛과 거문고가 휘감고 농락한다. 그 사이에 각시 하나가 마주 앉았으니, 사내는 심경(心境)의 갈피를 놓아버렸다. 거나한 술기운에 스스로 대장부라고 치켜세운 저 사내는 한양으로 가는 과거길 과객(科客)인듯하다. 문과(文科)일까, 무과(武科)일까. 어디쯤일까. 영남의 사내라면 문경새재에 걸터앉은 주막이리라. 혹시 박 도령과 금봉낭자의 사연을 머금고 있는 울고 넘는 박달재는 아닐까. 초당두부를 말려서 짊어진 강릉 땅 사내라면 대관령 언저리에 기대었을 테다. 추풍령 황금소 주막이면 어떠하랴, 호남 땅 선비가 걸터앉은 차령고개이면 어떠리. 어스름 달빛 아래, 거문고 소리와 주막집 아낙네의 치마폭에 휩싸였으니~. 2절 노랫말은 점입가포(漸入佳泡)다. 점점 더 스스로 도취 되어 허물어진다. 지향하던 부귀도 영화도 초점을 잃었다. 그냥 한바탕 놀음에 천년을 건 한량이 된다.

부귀와 영화가 덧없고 / 흐르는 강물이 덧없다 / 대장부 인생 무엇이 더 아쉬우랴 / 그 누가 세월을 붙잡아 / 천년을 살까 / 어찌 이 밤 놀지 않으랴 / 거문고 가락에 취하고 / 어스름 달빛에 취한다 / 대장부 인생 무엇이 더 필요하랴 / 그 누가 세월을 붙잡아 / 천년을 살까 / 어찌 이 밤 놀지 않으랴 / 한량아.

옛말에 ‘돈 없으면 건달, 돈 있으면 한량’이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을 붙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노래를 음유해야 한다. 여기서 건달(乾達)은 거들먹거리면서도 돈이 없어 처량한 신세의 사람, 한량(閑良)은 속없어 보여도 흥청망청 쓸 돈은 있어, 허풍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다. 여기서 건달이건 한량이건 하는 일 없이 세월만 허송하는 사람들임에 주목해야 한다. 노래 속의 주인공이니 망정이지, 현실 속에서 이런 삶을 지향한다면 난처하다.

한량은 할냥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무과(武科)에 급제하지 못한 무반(武班)을 가리켰다. 일정한 직책과 수행하는 일이 없이 놀고먹는 양반 계층이라는 의미로도 쓰였다. 당시 지방 토호(土豪)의 자식 중 벼슬을 하지 않으나, 무(武)에 뜻이 있는 사람들에게 품계를 주어, 왜적들을 토벌하게 한, 한량과(閑良科)가 모태이다. 그래서 한량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또래들의 선망이 되기도 하였던 것일까. <한량가> 노랫말에 조선시대 사회상을 걸어본다.

<한량가> 속 거문고는 현학금·현금으로 불리는, 낮고 중후한 소리부터 높은 소리까지 넓은 옥타브 소리를 내는 전통 현악기다. 통나무 통에 명주실 여섯 가락을 걸어 매어 술대로 퉁기며, 줄풍류를 비롯하여 가곡 반주·산조에 쓰인다. 4현 17괘였으나, 오늘날은 6현 16괘로 바뀌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 재상이던 왕산악이 중국 악기 칠현금(七絃琴)을 개조하여 만들었단다. 이에 여러 곡을 왕 앞에서 연주하니, 하늘에서 검은 학이 날아들었단다. 이를 현학금(玄鶴琴)이라고 부르다가, 거문고로 부른다. 밤나무(뒷판)에 대추나무(괘)를 붙여서 만든 울림통 위에 명주실을 소나무에 감아서 만든 6줄이다. 이는 연주자를 기준으로 제일 안쪽(몸쪽) 줄부터, 문현, 유현, 대현, 괘상청, 괘하청, 무현으로 부른다.

흔히 거문고를 기업의 인력구조에 대비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660만 중소기업인과 500대 기업의 창업주와 경영주는 거문고의 몸통이다. 이들의 경영지향점과 철학을 지탱하는 임원들이 거문고의 줄이다. 여기에 술대를 붙들고 연주하는 주역들이 현장 사우들이다. 이렇게 세분화(細分化)된 사우들은 기획·관리·HRD·연구·개발·영업·마케팅·홍보·대관·고객관리·EGS 등의 일을 한다. 이들이 삼위일체로 총화(總和)될 때, 그 기업은 100년 지속 성장을 할 수 있으리라.

이러한 거문고를 얽은 대표적인 시가 소동파의 금시(琴詩)이다. ‘거문고 소리가 거문고 위에서 나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그냥 두면 그 속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가/ 거문고 소리가 손끝에서 나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그대는 손끝에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소동파(蘇東坡. 1037~1101. 쓰촨성 출생, 당송팔대가)는 거문고 소리는, 손가락이나 거문고 어느 한쪽의 산물이 아니라, 서로의 융화를 통해 얻어지는 조화임을 메시지로 전한다. 세상사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은 더하다.

<한량가>를 얽은 류선우는 1970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였으며, 강진의 <막걸리 한잔>, 황진희의 <가락지>를 작사 작곡하였으며, 홍예주의 <하룻밤 거문고>, 유지나의 <김치> 등을 작곡했다. 그는 미스터트롯 김희재와 같은 해군홍보단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2005년 박달가요제에 출전하여 금상을 수상한 가수 출신이지만, 오랜 세월 무명의 길을 걷다가 작품자로 변신하여 유명세를 탄다. 남한산성 전국가요제·마들가요제·박달가요제 등 여러 가요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을 하였고, 통일가요제·전국청소년트로트가요제·향토가요제 등에도 여러 곡을 출품하였다.

<한량가>는 데뷔 17년 만에 발매된 영탁의 첫 앨범 MMM에 수록된 곡이다. 국악성을 진하게 채색한, 이 노래는 전주(前奏)의 경쾌한 멜로디와 거문고 소리를 의성어(擬聲語)로 얽었다. 지덩기당징 울려라~. 더덩지덩 거문고 가락~. 이 절창을 갓을 쓰고 레드 칼라 슬랙스 바지에 검정 시스루 도포자락을 휘날린 조주한이, 도대체 불가할 만큼의 율동과 내지름의 흥 물결을 일으켰다. 빙글빙글 공중돌기로 무대 위를 쿵쾅거렸다. 마스터들로부터 올인(All in)을 받은 조주한은, ‘조주한량 왔소이다’를 선창하며 무대를 달구었다. 휘황한 조명에 뚜렷한 이목구비의 잘생긴 비주얼과, 강렬하고 인상적인 눈빛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강탈했다. 원곡 가수 영탁의 <한량가>는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 창법, 조주한의 <한량가>는 미성과 가성을 오가는 부드러운 창법으로, 둘 다 국악트롯 감흥을 휘감는다.

<한량가> 원곡 가수 영탁은 1983년 문경 출생 안동에서 성장한 박영탁이다. 그는 뮤직비디오로부터 스타킹,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했었다. JTBC 히든싱어 휘성 편에도 출연했었다. 사촌 동생 집에 붙박아 생활한 때도 있다. 누우면 팔이 붙을 정도였단다. 돈이 한 푼도 없어서 미안했고, 가수를 하지 말고 월급을 받고 살아야 그 공간을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단다. 보컬학원 강사도 했었다. 청소년기에 오디션 예능 악동클럽에도 지원했었는데, 예심에서 탈락하면서 부모님에게 가수를 포기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던 중 언론정보학과에 진학했다가 우연히 출전한 영남가요제에서 운 좋게 대상을 받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단다.

2007년 <사랑한다>, <영탁 디시아>로 데뷔를 한 뒤에도 쉬운 건 없었다. 택배·애니메이션주제가 부르기·노래 가이드 아르바이트도 했단다. 영탁은 밑바닥까지 가본 인생, 노래는 나와의 싸움, 똑똑 부러지는 리듬탁으로 통한다. 2020년 미스터트롯에서 선(善)을 하고, 막걸리탁이란 별명도 얻었다. 안동 영가초, 안동중, 안동고를 거쳐 청주대 언론정보학부와 국민대 종합예술대학원에서 작곡을 공부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했다. <누나가 딱이야,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찐이야, 막걸리 한 잔, 마지막 승부> 등으로 팬들과 소통한다. 영탁 트로트는, 신성정정(身聲正定) 금반옥랑(金盤玉浪)이다. 율동과 소리가 딱깍 딱깍거린다. 귀에 속속, 눈에도 또로록~ 굴러들어오는 금쟁반에 옥구슬이다. 영탁팬덤 카페는 『영탁이딱이야』다.

1960년대에 발흥한 우리의 뽕짝(트로트)은 서서히 꼬랑지를 가물거리다가, 1990년대에는 전통가요 부활로 다시 깃발을 날렸다. 이후 트로트 삼국시대와 신구세대의 양극화를 거치면서 가물거리다가, 2020년을 전후하여 태풍처럼 불어닥쳐, 가히 가요우민(歌謠愚民)을 염려할 정도다. 저마다의 끼가 만수(萬數)인 가객들을 바라보며, 조련된 앵조(鸚鳥)와 같다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제작진에 대하여 재미와 흥미에 의미를 더해야 한다는, 마음의 회초리를 드는 이들도 있다. 매주 펼쳐지는 본방송과 재방송 뒤에는, 실시간 시청률·유튜브 영상 뷰~ 횟수, 누적되는 상금액 등이 대중문화예술 평론의 가벼운 재료와 양념으로 버무려진다. 국민 참여 우승상금 예측 이벤트 등으로 시청자들을 긴장시키기도 한다. 대중들의 가슴팍을 뒤흔드는 노래의 영혼은 무엇일까. 노래는 흥 뒤에 남는 여운이 더 귀하고, 노랫말에 매단 시대이념과 대중들의 감성은 더욱 귀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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