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진달래꽃은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리움이 남실거리는 꽃이다. 꽃이 아름다워서일까, 꽃 이름이 그리워서일까. 봄소식을 처음으로 알려주려고 바람처럼 날아온 전령(傳令)이라서 일까. 마른 수풀 속 저 멀리에 다소곳이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아낙네처럼 뵈어서일까. 이 꽃을 얽은 김소월의 감성 시(詩)가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유행가로 멜로딩 되어 대중들 가슴속 그리움에 풍구(風甌)질을 한다. 2003년 다이나믹 보컬 가수 마야의 목청을 타고 넘어온 <진달래꽃>이 그 노래다.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가거나, 혹여 이승을 등져도 아니 눈물 흘리려고 다짐을 하면서도, 정녕 마음속에 떠나보내지 못하는 당신이라는 이름의 그대를 떠올리게 하는 곡조~.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날 떠나 행복한지 / 이제 그대 아닌지 / 그댈 바라보며 살아온 내가 / 그녀 뒤에 가렸는지 / 사랑 그 아픔이 너무 커 / 숨을 쉴 수가 없어 / 그대 행복하길 빌어 줄게요 / 내 영혼으로 빌어 줄게요.

해마다 남녘으로 오시는 봄은, 여인네들의 마알간 얼굴에 소리 없는 살랑바람으로 먼저 오신다. 그리고 몇 날이 더 지나면, 남녘에 매화·개나리꽃이 피었다는 전갈(傳喝)이 온다. 이쯤 되면, 방방곡곡의 양지바른 언덕바지에는 연분홍 물결이 은근하게 든다. 지금이 그런 절기, 꽃 피는 춘삼월이다. 그대 가슴팍에는 진달래꽃이 피었는가. 그대 사시는 오두막 건너편 언덕에는 붉은 물감을 흩뿌린 듯 눈이 부시는가.

이 노래의 모티브 시, <진달래꽃>을 지은 소월(素月) 김정식은 평안북도 구성에서 출생하여 정주와 곽산에서 성장하였는데, 지금쯤 북한에서도 북쪽인 그곳에도 연분홍 두견화가 피어났을까. 2023년 대한민국은 지구온난화와 아열대 기후화로 인하여, 꽃들이 피어나는 절기를 모르고 떨기를 벙글린다. 이처럼 13월에 피어난 꽃 소식도 있으니, 영변 약산 너울의 진달래가 궁금한 것이다. 이 시를 발표할 당시 소월은 20세였다. 철(哲·喆)이 든 나이다. 결혼도 했었다. 자녀도 있었다. 이런 그가 휘갈겨 적은 저 절절한 시의 행간(行間)에는 무슨 사연이 도사리고 있을까.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 가시는 걸음 놓인 그 꽃을 /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진달래꽃> 시는 1925년 김소월 시집에 실렸으며, 1922년 7월 개벽 25호에 발표되었다. 스무 살이던 소월은 도대체 어떤 님과 이별하였을까.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릴 그를 남겨 두고, 떠나가신 그 님에 대한 탐구는 그 누가 대답할 이성(理性)인가, 감성(感性)인가. 그의 아버지는 소월이 2세이던 1904년, 정주와 곽산을 잇는 철도를 부설하던 공사장에서 노역(勞役)하던 중, 일본인 목도(木道)꾼들에게 폭행당하여 정신이상자가 되었다. 그래서 할아버지 보살핌 아래서 성장했다. 소월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 작은어머니 계희영을 만난 것도 이 무렵이다.

이처럼 혼곤한 외로움에 젖어 자라던 소월은 곽산 남산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2학년 때이던 1916년 14세에, 고향 구성군 평지면 홍시옥의 딸, 홍명희의 조카 홍단실과 결혼했다. 할아버지의 지인 연줄을 이어서 혼인한 것이었다.

이때 김정식은 오순이라는 3세 연상 누이와 연정을 나누고 지내던 터였단다. 그 뒤 오순은 19세에 다른 이에게 시집을 갔다가, 3년 뒤에 남편에게 가혹행위를 당하여 생을 마감했단다. 21세의 요절(夭折)이었다. 이 오순이라는 여인을 두고 홍단실과 혼인을 해가는 그의 비통한 심정을 역설적으로 얽은 시가 <진달래꽃>이려니~.

내가 떠나 바람 되어 그대를 맴돌아도 / 그댄 그녈 사랑하겠지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 가시는 걸음 놓인 그 꽃을 /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내가 떠나 바람 되어 그대를 맴돌아도, 그댄 그녈 사랑하겠지~. 이 소절은 <진달래꽃> 시에 노랫말을 새롭게 얽은 루시아와 우지민의 기치로 여겨진다. 소월과 오순의 심상(心傷)한 연(戀)을 묵시한 이 절묘함이 유행가의 매력(魅力)이고 마력(魔力)이다. 노래 소절의 행간에 가라앉혀 놓은 앙금(해금)과 같은 감성의 도톰함이다. 대중가요 유행가를 재미와 흥미에 더하여 의미(意味)를 살피어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연출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래가 된 시, 진달래꽃 사연에 소월과 오순의 사랑, 1910년대 연상 여인과 연하남의 비련이 매달려 있음을 알고 감흥하면, 우리네 가슴팍은 얼마나 더 오그라들고 펴지기를 반복할까.

소월은 오산학교에서 스승 김억(1985~?. 정주출생, 본명 김희권)을 만났다. 이 스승의 지도를 받아 1920년 동인지 『창조』 5호에 시를 발표했고, 1925년 그 일생에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을 발간했다. 스승은 학생들의 가슴 밭에 꿈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다. 이런 면에서 김억은 소월의 가슴에 문학의 씨를 뿌린 장본인이리라.

소월은 1919년 3.1운동 후 오산학교(평북 정주)가 문을 닫자 배제고등보통학교(경성, 서울)로 편입하여 졸업하였고, 1923년 일본 도쿄상대로 유학 갔으나, 그해 9월 관동대지진(1923.9.1)으로 귀국한다. 일본 간토·시즈오카·야마나시 지방에서 일어난 지진은, 12만 가구의 집이 무너지고 45만 가구가 불탔으며, 사망 행방불명이 40만 명이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일본에 유학 중이던 많은 우리 민족이 귀국했다. 이후 소월은 김동인 등과 영대문학동인 활동을 하지만, 할아버지의 광산사업이 실패하고, 자신이 경영하던 동아일보 지국도 실패하여 곤궁에 빠지자, 삶에 의욕을 잃고 술만 퍼마시다가 1934년 12월 24일, 33세로 요절하였다. 요절 원인은 악성 루마티즘 합병이었단다. 세상을 뜨기 이틀 전, 그는 ‘여보,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라면서 쓴웃음을 지으며 우울해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시작(詩作)의 원석(原石)이 미완의 문학세계를 남기고 승천(昇天)한 것이다.

<진달래꽃> 노래를 부를 당시 28세였던 마야, 본명 김영숙은 1975년 정읍에서 출생하여 남양주 금곡고를 거쳐 서울예술대 연극과를 졸업하였으며, 2003년 이 노래로 데뷔하였다. 이후 그녀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풍부한 감성, 다이나믹한 라이브 무대 매너로 인기를 누리는 여성 락커가 되었으며, 또한 <보디가드, 매직> 등 드라마에 출연하며 다재다능한 엔터테인먼트로 활동 중이다.

사랑이 익으면 가슴속의 별이 된다. 그 별이 글자로 탄생한 것이 시다. 사랑하던 연상의 여인 오순의 장례식에 문상을 다녀온 직후 소월이 남긴 시가 <초혼>(招魂)이란다. 하늘로 승천하는 영혼을 호명(呼名)한 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노래하는 CEO 여러분, 그대가 이승을 등질 때까지 부르다가, 부르다가 죽을 그 이름은 누구 이신가.

유행가 1곡은 7가지 요소를 머금은 보물이다. 유행가(流行歌)가 대중가요의 갈래에 속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모든 대중가요가 유행가인 것은 아니다. 유행가는 노래 발표(창작) 시기의 시대 이념과 그 시대를 살아낸 대중들의 감성(삶)과 역사의 마디가 되는 시대의 순간을 얽어야만, 유행가라는 갈래를 흐르는 강물에 이름패를 단 돛배로 띄울 수가 있다. 작사·작곡·가수·시대·사연·모티브·사람 등의 요소를 머금어야 한다. 이런 노래는 오래 흘러오고, 멀리 흘러간다.

2023년까지 이어지는 트로트 열풍, 그 경연대회에 불리는 노래의 십중팔구(十中八九)는 리메이크 곡조이다. 노래가 세상의 감흥을 풍요롭게 하거나 위무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21세기의 4반이 지나가는, 이 풍진(風塵) 대한민국의 오늘을 머금은 새 노래의 탄생이 희박한 것은 가슴을 매스껍게 한다. 뿐만아니라 오늘날 홍수처럼 넘쳐나는 경연무대, 웅장한 음향·현란한 조명·장엄한 EDM 등에 더하여, 노래하는 가객들이 마치 장기자랑(율동·악기연주·마술·퍼포먼스 등) 경연대회에 출전한 것처럼, 과한 조련을 전제로 하는 기획과 연출에 무거운 마음이 매달린다. 유행가의 절묘함은 가락(歌樂)과 가창(歌唱)에도 있지만, 가사(歌詞·歌辭)에 중심(重心)의 저울추가 매달려 있음이여~. 새봄에 피어날 연분홍 진달래꽃처럼,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면면(綿綿)할 유가(流歌)와 가기(歌記)가 될만한, 새 유행가가 환하게 피어나길 소망한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