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신앙(信仰)을 모멘텀으로 한 유행가는 얼마나 될까. <나무아미타불, 수덕사의 여승, 미사의 노래, 성종의 비가, 해인사 나그네, 언덕 위의 교회당, 광화문 연가> 등등 많다. 이는 유행가는 세상과 통한다는 말의 증표다. 유행가가 머금는 시대 이념과 감성의 주인공은 바로 사람이고, 이 사람들이 공신(共信)하는 대상이 신(神)이다. 이런 노래 중의 대표 격인 하나가 1985년 김승덕의 목청을 통하여 세상에 나온 <아베 마리아>다. 아베 마리아(Ave Maria), 안녕하십니까, 마리아여~.

우리들의 사랑 기약할 수 없어 / 명동성당 근처에서 / 쓸쓸히 헤어졌네 / 떠나가는 뒷모습 / 인파 속으로 사라질 때 / 나는 눈물 흘리며 / 슬픈 종소리 들었네 / 아베 마리아 아베 마리아 / 이렇게 방황하는 나에게 / 용기를 주세요.

<아베 마리아> 노래의 모티브는 성당, 장소는 서울 명동성당 근처이다. 이 노래가 세상에 나온 1985년 대한민국은 안녕하셨는가. 권위와 낭만이 충돌·마찰하던 시기, 우리네 젊은이들의 사랑은 달콤하였는가. 노래 속 주인공은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했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위로와 용기 주기를 의탁한다.

아베 마리아(Ave Maria). 이는 성경 구절에서 유래한 말이다. 잉태한 마리아를 방문한 천사들과 마리아의 방문을 받은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한 인사말에서 유래된 표현이다. 천주교에서는 <성모송>이라는 찬미가로도 불렀다.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심정(心井)에 빠진다. 우리네 인생사는 절반은 꽃길, 나머지는 가시 길인데, 남녀 간의 사랑은 전부(全部)가 아니면 전무(全無)다. 사랑에는 절반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대중성·통속성·상업성이 전제되는 유행가의 모티브를 사랑·이별·눈물로 서정 서사하면서, 이별 장소를 항구·기차역·공항으로 하는 것이 주류다. 하지만 <아베 마리아> 노래는 이러한 통속의 틀을 벗어나 신앙적 묵시, 성당을 호출했다. 이렇게 방황하는 나에게 용기를 주소서~.

밤은 깊어가고 비는 내리는데 / 명동성당 근처를 / 배회하는 내 모습 / 나는 눈물 흘리며 / 추억 찾아 헤매일 때 / 나를 지켜주는 성당의 종소리 / 아베 마리아 아베 마리아 / 이렇게 방황하는 나에게 / 용기를 주세요 / 아베마리아 아베마리아 / 이렇게 방황하는 나에게 / 용기를 주세요 / 아베 마리아 아베 마리아 / 이렇게 방황하는 나에게 / 용기를 주세요.

노래 주인공의 방황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1985년 어느 날이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정치 사회적으로 ‘서울의 봄’을 맞이하고 보내던 시절이다. 1960년대 후반에 체코 프라하에서 펼쳐진 민주화 운동, ‘프라하의 봄’에 엇댄 표현이었다.

그런 사회 환경적 계절의 어느 날, 서울 청계천 남촌의 심장 같은 명동에서 한 연인이 이별을 통첩(通牒)하고, 등을 보이면서 총총총 걸어서 혼잡한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뒷자락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남겨진 연인의 귓가에 명동성당에서 종소리가 들려온다. 댕~ 댕~. 그 순간 기원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감성의 낭떠러지에 올라서면 신(神)을 찾는다. 마리아여~ 이렇게 방황하는 나에게 용기를 주소서. 아베 마리아~.

서울 중구 명동길 74. 1892년 기공(起工)하여 1898년 축성식을 한 명동성당은 김지하(1942~2022. 목포출생, 본명 김영일)가 1973년 김수환 추기경 집전으로 소설가 박경리(1926~2008, 통영출생 본명 박금이)의 외동딸 김영주와 결혼식을 한 곳이다. 이후 김지하가 당국의 감시를 받던 시절, 임신한 아내 출산을 걱정하며, 잠시 은신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조선시대 명례방(明禮坊)이었고, 천주교 유입(1784) 이후 신도들의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곳이며, 이승훈(1756~1801)이 세례를 주었던 곳이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가톨릭교회 사제·순교자인 안드레아 김대건(1821~1846) 신부가 활동하던 곳이기도 하다. 공식 명칭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명동교회, 사적 제258호이다.

<아베 마리아> 유행가는 조영남·태원·송창식이 부른 다른 곡도 있다. ‘아베 마리아 성모여/ 방황하는 이내 마음/ 손 모아 기도하나이다.’ 조영남이 부른 노래는 주인공이 소녀다. ‘아베 마리아/ 흐르는 뜨거운 눈물 아십니까/ 슬픈 내 영혼의 흐느낌 들어 주소서.’ 태원(본명 박태원)이 부른 곡은 그의 매형이던 리나박(본명 박정숙)의 남편 김희갑이 곡을 얽은 노래였다. 송창식이 부른 곡은 번안 노래다. ‘아베 마리아 구원의 어머니여/ 쉴 곳 없는 나의 영혼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당신의 불쌍한 사랑으로/ 깨끗이 씻어주소서/ 아베 마리아.’

우리 가요사에 성당(聖堂)이 모티브가 된 첫 유행가는 1952년 6.25 전쟁 중에 이인권(본명 임영일)이 싱어송라이팅 한 <미사의 노래>다. ‘당신이 주신 선물 가슴에 안고서/ 달도 없고 별도 없는 어둠을 걸어가네/ 저 멀리 니콜라이 종소리 처량한데/ 부엉새 우지마라 가슴 아프다.’ 이 노래는 임영일이 본인의 아내를 저세상으로 먼저 보낸 상처(喪妻) 사연을 엮은 노래다. 이런 노래를 상배곡(喪配曲)이라고 한다.

임영일의 아내는 6.25 전쟁 중, 군부대 위문공연을 하다가 공연장으로 날아든 공산군의 포탄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했고, 본인은 군 야전병원을 거쳐서 귀환했단다. 이 사건 이후 먼저 간 아내를 생각하면서 스스로 작사 작곡하여 부른 노래가 <미사의 노래>다. 이 노래 속의 성당은 대구 계산성당(대구 중구 서성로 10. 1886년 설립)이다.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안에 있는 대구, 계산성당 근처에서 임영일이 셋방살이를 할 당시 만들어진 노래의 징표이다. 이인권은 1919년 청진에서 출생하여, ‘청진의남인수’라는 애칭을 받으며 가수 활동을 하다가 1973년 타계했다.

<아베 마리아> 노래 작사가 박건호는 원래 시인이다. 그는 1949년 원주에서 태어나 20세에 시인 미당 서정주(1915~2000)가 발문(跋文)을 써 준 시집 『영원의 디딤돌』을 발간하였으며, 1972년 이해인(본명, 이명숙) 수녀와 풍문여중 동창인 박인희(본명, 박춘호)의 <모닥불> 가사를 쓰면서 작사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2007년 12월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3천여 곡의 대중가요 작품(작사)을 남겼다.

1958년 부산에서 출생한 가수 김승덕은 고교 졸업 후 1980년대 초반 DJ 이종환에게 발탁되어 음악감상실 쉘부르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같이 활동한 가수들이 강은철·신정숙·하덕규·신형원 등이다. 그는 1978년 서울 양정고를 졸업하고, <편지를 써요>를 통해 가요계에 발을 내디딘다. 그는 해군홍보단 출신, 미스터트롯 출신 가수, ‘울산의이미자’로 불리는 김희재의 군대 선배이기도 하다.

김승덕은 1982년 남궁옥분의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 1983년 MBC 강변가요제 그랑프리 곡 손현희의 <이름 없는 새> 작곡가로 이름을 먼저 알린다. 1984년 발표한 <봉선화>는 KBS 2TV의 주말연속극 <봉선화> OST로 인기를 더한다. 이후 발표한 노래가 <아베 마리아>다.

우리네 인생은, 손금에 새긴 글씨를 스스로 풀 수 있는가, 없는가. 김승덕이 노래로 절규한 아베 마리아는 그의 인생길을 내다보고 계셨을까. 아~ 우리네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23년 사랑하는 나라 자유 대한민국은 안녕한가, 아베 마리아여~ 대답해 주소서. 해맑은 빛을 주소서. 아베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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