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2022년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스위스 회사는 14개다. 글렌코어, 네슬레, 로슈, 취리히보험, 노바티스, 스위스리, 처브, UBS,

쿠엔+나겔, 쿠프, 미그로스, 홀심, 크레디스위스, ABB다. 이름이 익숙하지 않다면 숨은 강자들이다. 이들 기업의 외형을 합치면 8100억 달러로 8000억 달러 남짓한 이 나라 GDP보다 많다. (물론 GDP는 부가가치만을 합산한 것이므로 기업 매출과는 다르다.) 지구촌에 이런 나라는 또 없다. 인구(874만 명)가 세계 100위 안팎을 오가는 이 나라의 GDP는 22위다. 글로벌 500대 기업 수는 세계 8위다. 중국,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한국(16개) 다음이다.

스위스는 오랫동안 가난한 산골이었다. 용병을 수출하며 살았다. 바다와 접하지 않아 대항해 시대의 모험은 꿈꿀 수 없었다. 지금은 1인당 GDP(9만2000달러)가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4위인 부자나라다. 글로벌 위기 때는 잘 버티는 편이다. 21세기 들어 지금까지 유로스톡스 50 지수가 12% 하락하는 동안 스위스 주가지수는 43% 상승했다. 이웃 나라들보다 외부 충격에 훨씬 강했다는 뜻이다. 비결은 무엇일까.

어떤 이는 기업에 우호적인 제도적 환경을 첫손으로 꼽는다. 이를테면 낮은 세율이 글로벌 기업을 끌어들이고 또 더 많이 투자하게 한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세전과 세후 현금흐름의 순현재가치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실효평균세율(EATR)을 추정한다. 스위스의 실효세율은 18.6%다. 세금 면에서 미국(22.3%)이나 중국(23%), 일본(28.4%), 네덜란드(23.7%), 한국(25.9%)에 투자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어떤 이는 지정학의 폭풍에 휩쓸리지 않는 영세 중립국의 지위나 각 지방의 자율성과 경쟁의 효과에 주목하고, 또 어떤 이는 부러운 과학기술 교육체제를 강조한다.

그러나 산업 강국 스위스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사람에 있다. 혁신적인 기업가를 끌어들이는 개방성이 없었다면 스위스는 지금처럼 많은 글로벌 기업의 둥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스위스 연방통계국에 따르면 2021년 15세 이상 인구 732만 명 중 집안 배경이 이민자(1, 2세대)인 이들은 39.5%(289만 명)에 이른다. 오래전부터 유럽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종교적 박해를 받은 이들은 스위스 산골로 스며들었다. 17세기 프랑스의 위그노들이나 20세기 초 독일의 유대인들이 그랬다.

스위스 시계산업은 일찍이 루이 14세의 박해를 받던 프랑스 위그노들이 일군 것이다. 폴란드 기병 장교였던 안토니 노르베르트 파텍(앙투안 노베르 드 파텍)은 1830년 러시아 지배에 항거하는 봉기가 실패한 후 스위스로 도망쳐 프랑스 태생의 시계 장인 장 아드리앙 필립을 만나 파텍필립을 만들었다. 쿼츠 시계의 등장으로 스위스 시계산업이 추락할 때 플라스틱 소재의 패션 시계 스와치로 새 바람을 일으킨 니콜라스 하이에크는 레바논 태생이다.

런던 인근 억스브리지 출신인 찰스 브라운은 독일인 발터 보베리와 힘을 합쳐 엔지니어링업체인 브라운 보베리(훗날의 ABB)를 세웠다.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하인리히 네슬레는 스위스에서 세계 최대 식품 제국의 원조인 앙리 네슬레로 거듭났다. 나치의 광기를 피해 도망쳐온 폴란드 유대인 레오 스테른바흐는 로슈의 블록버스터가 된 신경안정제 발륨을 개발했다. 고급 시가 브랜드를 만든 지노 다비도프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태어난 유태인이다. 오늘날 스위스 거대기업 CEO 가운데 절반은 외국인이다. 로슈의 세베린 슈완은 오스트리아, 글렌코어의 게리 네이글은 남아프리카에서 왔고, 노바티스의 바산트 나라시만은 인도계 미국인이다.

이민자들은 공장을 세우고 사람들을 고용하고 글로벌 교역과 투자에 나서 큰 부를 일구었다. 그들은 한마디로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익숙한 것들은 모두 버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낯선 곳에서 어울려 살며 인정과 존중을 받으려면 경제적으로 성공해야 했다. 기존의 생각과 관행을 뒤집어야 했고 온갖 시행착오와 실패는 새로운 도전의 발판으로 삼아야 했다. 발목을 잡는 과거를 뿌리치고 미래를 봐야 했다.

물론 스위스의 개방성은 선택적이었다. 여느 나라처럼 이 나라 사람들도 외부인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전까지는 의심스러운 눈길을 거두지 않았을 것이다. 혁신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었던 기업가들의 에너지는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그것은 어떤 걸출한 지도자나 정부가 기획한 것이 아니었다. 스위스가 산업 강국으로 일어서는 데는 어떤 마스터 플랜도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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