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종 이노비즈정책연구원장
김세종 이노비즈정책연구원장

지난 4년 동안 한일관계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의 수출규제가 해소될 전망이다. 한일 양국은 지난 3월 16일 제9차 한일 수출관리 정책 대화에서 그동안 일본이 2019년 7월부터 시행해 온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불화수소・플루오린 폴리이미드・포토 레지스트 등 3개 핵심 소재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4년 만에 해제하기로 합의하였다.

일본의 일방적인 수출규제는 최근의 한일관계를 악화시킬 대로 악화시킨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현재까지 한국은 일본과의 교역에서 약 7,000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적자를 기록하였다. 단일국가와의 무역적자가 그 기간과 규모로 볼 때 일찍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불균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해마다 수백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국가가 그 상대국에 대해 무역규제를 발동한 사례가 있었는지 일본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화이트 리스트 제외는 한일간 무역 불균형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일본의 수출규제가 없었다 해도 한국 산업의 고도화를 위해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의 대일무역 역조를 개선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 시작은 대일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국산화라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일본이 한국과의 교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기록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출규제에 나섰던 이유는 해당 소재의 대일의존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공기술에 의존한 제조업은 후발 국가와의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수출고도화 및 제조업 성장을 위해 소재・부품・장비 국산화는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4년 동안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국산화, 수입선 다변화 등을 통해 일본 의존도를 낮추었다고 자평하고 있으나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자국 우선주의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어 소재・부품・장비를 포함한 핵심기술 자립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대일, 대중 무역구조 변화에 대한 대응 측면에서도 산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분야의 핵심기술에 대한 확보는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 산업의 안전망 확보 측면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소재・부품・장비를 포함한 제조업 기술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고 기술축적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지난 4년 동안 국산화가 가능한 분야, 중장기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 분야, 일본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수입선 다변화 등을 고려해서 주요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핵심기술 확보를 추진해 왔다.

정부는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100대 소재・부품・장비 분야 핵심 전략기술을 선정하였는데 그 기준은 첫째, 대일의존도가 높은 품목 중에서 국내 산업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큰 품목. 둘째, 산업 파급효과와 국내외 대체가능성 여부, 셋째, 산업 안보적 중요도 등을 고려하여 선정하였다. 현 정부 출범과 더불어 기존 소재・부품・장비 분야 100대 기술 중에서 13개를 삭제하고 63개를 추가하여 총 150개 신핵심 전략기술 후보군으로 확대 개편하였다. 기존 소재・부품・장비 기술 중에서 산업중요도 재평가 및 기술확보전략 수정을 통해 10개를 제외하였으며, 유사 품목 통합을 통해 3개 기술 등 총 13개 기술을 삭제하였다. 대신 세계 대응기술 32개, 미래 산업변화 대응 관련 기술 31개 등 총 63개 핵심기술을 추가하였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은 표면적으로 갈등 구조를 봉합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일간 무역 전쟁이 종식되거나 완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일본은 몰라도 한국은 지난 60년간 지속된 대일무역적자를 축소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목표를 포기할 수 없다. 지난 4년간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대일의존도 감소, 관련 기업의 매출 증가 등에 고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대일의존도가 25%에 달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여전히 제조업 강국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 등 후발 국가의 도전과 더불어 미국, 독일, 일본 등 기존 제조 강국과의 경쟁도 피할 수 없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대내외 여건 변화를 고려할 때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핵심기술 자립을 위한 지속적인 정책추진이 요구된다. 다만 소재・부품・장비 분야 관련 정책은 냉정한 분석과 판단에 근거하여 수립하고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실행이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이노비즈정책연구원장 김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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