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덩치 큰 못된 늑대 누가 겁낼까? 덩치 큰 못된 늑대. 덩치 큰 못된 늑대. 덩치 큰 못된 늑대 누가 겁낼까?

당신은 그 노래를 안 들으려 해도 안 들을 재간이 없다. 한 영화 평론가가 투덜거렸다. 어느 영화관엘 가도 그 노래가 터져 나온다. 라디오도 끈질기게 틀어준다. 노래를 피해 밀주를 파는 가게로 자리를 옮겨보라. 그러면 어떤 불행한 알콜 중독자가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것이다.

8분짜리 애니메이션 ‘아기 돼지 3형제’에 나오는 노래는 사회 현상이 된다. 노래는 1933년 5월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전국을 휩쓴다. 미키 마우스로 할리우드에서 영웅이 된 월트 디즈니는 이제 작가 클럽에서도 환대를 받기에 이른다. 작품을 내놓을 때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던 월트도 “마침내 우리는 작품 속에서 진정한 퍼스낼리티를 구현해냈다”고 감격했다. 애니메이션은 이제 “생쥐 한 마리가 통통 튀어 다니는 것 이상의 뭔가”가 될 수 있었다. (닐 개블러, 월트 디즈니 평전)

대공황으로 모두가 잔뜩 움츠러들어 있던 때였다. 불안한 대중은 이 만화영화를 고통과 승리의 우화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아기 돼지들을 잡아먹으려는 늑대는 대공황의 경제적 고통을 상징했다. 첫째와 둘째 돼지는 늑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셋째의 경고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첫째는 짚으로 집을 지었다. 늑대가 한 번 훅 불자 날아가 버렸다. 둘째는 나뭇가지로 지었다. 역시 늑대가 단숨에 날려버릴 수 있었다. 셋째는 벽돌집을 지었다. 지혜롭게 대비한 덕분에 늑대의 위협을 물리칠 수 있었다. 월트는 무슨 메시지를 주려고 그 영화를 만든 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풀 죽어 있던 국민은 ‘덩치 큰 못된 늑대’를 혼내주는 아기 돼지를 사랑하며 힘든 시기를 견뎌냈다.

월트 디즈니는 일찍이 미국 문화의 아이콘이 됐다. 미국 중서부 미주리주의 아일랜드계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생계를 꾸리고 성공하기까지 피나는 노력을 해야 했다. 그는 스무 살 전에 이미 회사를 차렸다 파산한 경험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관찰하고 그리기를 좋아했으며 동물에 인간의 다채로운 감정을 적용하며 인격을 부여했다. 형 로이와 함께 스튜디오를 차린 1923년 할리우드는 혁신의 중심지였다. 끼니조차 때우기 힘든 나날이었지만 만화영화로 성공하려는 야망은 꺾이지 않았다.

훗날 월트는 “모든 것은 생쥐 한 마리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할리우드로 오기 전 그의 책상 주위를 돌아다니던 생쥐는 아이들이 좋아할 미키 마우스로 거듭났다. 그는 놀라운 혁신을 이어갔다. 1928년에 개봉한 첫 미키 마우스 영화(증기선 윌리)는 영상과 음향이 동시화된 최초의 유성 애니메이션이었다. 대성공이었다. 1932년에는 최초의 컬러 애니매이션(꽃과 나무)을 선뵀다. 월트가 보기에 자연은 인간의 상상력보다 더 풍부한 자원이며 색깔은 소리만큼이나 중요한 신의 선물이었다. 1937년에는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백설 공주의 일곱 난쟁이)을 내놓아 영화사를 다시 썼다. 러닝 타임은 단편의 10배인 83분이었다. 1939년까지 49개국에서 상영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2차 세계대전 중 월트는 영화 속의 환상을 현실로 옮겨놓을 궁리를 했다. 1955년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 문을 연 디즈니랜드는 관객들이 영화 속 스토리를 실재하는 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개막식에서 월트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나이든 이는 지난날의 좋은 기억을 되살립니다. 그리고 젊은이는 미래의 도전과 약속을 맛볼 것입니다.”

월트 디즈니는 꿈을 파는 상인이었다. 그가 사람들을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환상으로 이끌었으며 다양한 미디어로 미국식 보수주의 가치관을 주입했다는 평가도 있다.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인종주의적 편견을 드러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과 열정은 디즈니라는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제국의 초석이 됐다. 이제 100년 기업이 된 디즈니는 그의 값진 유산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창조의 동력을 찾아야 한다. 모든 성공한 기업이 그렇듯이 그것은 엄청난 딜레마를 안겨주는 일이다. 모든 유산을 고스란히 지키려 하면 창조적 파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966년 월트 디즈니가 사망한 직후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더니 곧 전설이 됐다. 그가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언젠가 깨어나기 위해 극저온 상태로 안치돼 있다는 것이었다. 타블로이드 신문과 잡지들이 소문을 퍼 날랐다. 사실 그의 시신은 극저온 상태로 보관된 게 아니라 화장됐다. 그렇다면 이 기이한 소문은 왜 그토록 끈질기게 나돌았을까? 그를 잃고 싶지 않은 대중의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을까? 디즈니 제국은 두 번째 세기에도 그의 부재를 아쉬워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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