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해리 콘은 1958년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24년 컬럼비아 픽처스가 문을 연 후 34년 동안 군림했다. 장례에는 약 1300명이 모였다. 누군가는 비아냥거렸다. 조문객들은 사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는 그가 정말로 죽었는지 확인하러 온 것이라고. 제작 책임자와 사장을 겸한 그의 이미지는 폭군이었다. 자기 말을 강조할 때면 옆에 둔 말채찍으로 책상을 치곤 했다. 오후 내내 사무실에서 배우와 감독들에게 고함을 지르다 저녁 파티에서는 다정하게 인사하는 지킬과 하이드 같은 사람이었다. ‘킹 콘’은 철권을 휘두르며 컬럼비아를 할리우드의 메이저로 키웠다. 그러나 이듬해 공동 창업자인 형 잭의 아들(랄프 콘)마저 죽자 40년 가까운 가족 경영은 끝이 났다. 할리우드의 황금시대에 가장 성공적인 스튜디오로 꼽히던 컬럼비아는 비틀거리다 1982년 코카콜라에 인수됐다. 7년 후에는 다시 소니 제국의 우산 아래로 들어갔다. 한 해 전에 출범한 월트 디즈니사와 달리 컬럼비아가 독립적인 기업으로 남아있었던 것은 반세기 남짓한 기간에 그쳤다.

성공한 기업들의 특징을 분석한 짐 콜린스는 디즈니와 컬럼비아를 대조한다. 두 회사의 차이는 최고경영자가 ‘시간을 알려주는 사람’이냐 ‘시계를 만들어주는 사람’이냐에 있다고 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카리스마와 비전을 겸비한 리더는 시간을 말해주는 사람이다. 어느 한 지도자가 물러나거나 죽은 뒤에도 그 기업이 오랫동안 번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시계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월트 디즈니의 가장 중요한 창작품은 미키 마우스도 백설 공주도 디즈니랜드도 아니다. 월트 디즈니라는 기업 자체다. 해리 콘이라는 절대자가 사라진 컬럼비아 왕국은 홀로 설 수 없었다. 월트 디즈니는 시간도 알려주고 시계도 만들어준 경영자였다. 창업 초기부터 뛰어난 직원에게 자신보다 많은 보수를 주고 미술 강좌를 개설하고 제작 기술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사후에도 잘 돌아갈 수 있는 문화 공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제국은 지금 아찔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에서 격화하는 패권 전쟁과 파괴적인 기술의 소용돌이 속에서 디즈니는 창업자가 만들어준 오래된 시계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1950년대 말 디즈니가 완성한 전략은 창의적인 작품을 가지고 여러 포맷과 배급 채널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었다. 텔레비전과 케이블, 홈 비디오, 인터넷은 영화 제국의 확장을 가속했다. 그 틀은 지금껏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디즈니의 가치사슬 하나하나에 새로운 기술을 가진 새로운 경쟁자들이 나타났다. 미키 마우스로 일어난 디즈니 제국은 이제 컴퓨터 마우스가 불러온 혁명 앞에 당혹해한다.

지금은 누구나 영상을 만들어 수십억 명에게 공짜로 보여줄 수 있는 시대다. 누구든 무엇이든 볼 수 있게 된 마당에는 최고의 창작품에 관객이 몰릴 수 있다. 지난해 11월 디즈니의 최고경영자로 복귀한 로버트 아이거는 재무보다는 창작 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아이거가 밥 차펙에게 CEO 자리를 물려줄 때 디즈니의 기업가치는 2100억 달러가 넘었다. 지금은 1800억 달러 남짓한 수준이다. 시장은 차펙보다는 그에게 더 큰 신뢰를 준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거는 더 젊은 시절의 아이거보다 더 많은 신뢰를 얻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최대 격전지는 스트리밍 분야다. 디즈니 플러스와 훌루, ESPN을 합치면 스트리밍 서비스 가입자는 넷플릭스보다 많은 2억3500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가입자당 수익은 넷플릭스의 절반 수준이다. 애플이나 아마존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이 부문에서 반드시 이익을 내야 하는 건 아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주력 상품을 위한 로스 리더로 활용하면 그만이다. 이들은 콘텐츠 확보에 큰돈을 쏟아부으면서 위험한 실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게임 엔진과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로 무장한 중국의 경쟁자들도 위협적이다. 할리우드 강자들만 낼 수 있던 최고의 특수효과를 더는 독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청소년들이 영화관이나 TV를 멀리하고 비디오 게임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추세는 이 분야에 힘을 쏟지 않았던 디즈니에 불리하다. 아이거는 디즈니의 브랜드를 게임 개발업체에 넘겨주었다. 훗날 실수를 깨닫고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생각했죠. 우리는 지금 핵무기 기술을 제3세계 국가에 팔고 있는 셈이구나, 그리고 이제 그들이 우리를 상대로 그 무기를 쓰고 있구나.”

할리우드의 가장 뛰어난 창작 공장이었던 디즈니가 살아남으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재발명해야 한다. 창작의 지평은 더 넓어져야 한다. 스토리 텔링은 새로운 포맷으로 바뀌어야 한다. 디즈니의 업의 본질이 단순히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과 캐릭터를 창조하는 것임을 새삼 일깨우지 못하면 100년 제국의 미래는 불투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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