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꿈과 바램은 어찌 다르고 같은가. 우리네 인생에서 가는 길과 가지 못하는 길은 꿈과 바램의 어느 편일까. 꿈은 지향하여 걸어가는 길이고, 바램은 걸어가지 못하여 곁눈질하는 길이다.

21세기에 다시 불어온 트로트 복고열풍 속에 20여 년 넘게 걸어온 MC(Master of Ceremonies) 길을 접고, 마음속에 품고 있던 가수의 길로 돌아선 주인공이 바로 김용필이다.

48세의 나이에, 새로운 전설(인생길)을 향하여 그의 목청을 타고 넘어온 노래 중 하나가 원곡 가수 태진아가 부른 절창, <옥경이>다. 희미한 불빛 아래 마주 앉은 여인,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한 여인~.

희미한 불빛 아래 마주 앉은 당신은 /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인데 / 고향을 물어보고 이름을 물어봐도 / 잃어버린 이야긴가 / 대답하지 않네요 / 바라보는 눈길이 젖어 있구나 / 너도나도 모르게 흘러간 세월아 / 어디서 무엇을 하며 / 어떻게 살았는지 / 물어도 대답 없이 고개 숙인 옥경이.

<옥경이> 노래 제목 주인공은 태진아의 아내 이옥형이다. 옥형이란 이름을 집에서 부를 때, ‘옥경아~’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제목이다. 이 노래 원래 제목은 <고향여자>였다. 하지만 녹음을 하기 직전에 태진아가 작사 작곡가 조운파와 임종수 선생에게 제안하여 바꾸었단다.

이 <옥경이>가 미스터트롯1에서는 폴 댄스(Pole Dance, 기둥춤)에 매달렸었고, 미스터트롯2에서 김용필은 ‘무대 위에서 뿌리를 뽑겠다’는 결기로 정중동(靜中動)의 열창을 하였다. 눈앞에 마주 앉은 여인네의 모습에서 옛 기억을 되살려내려는, 김용필의 눈빛이 노랫말보다 더 불타올랐다.

너도나도 모르게 흘러간 세월아 / 어디서 무엇을 하며 / 어떻게 살았는지 / 물어도 대답 없이 / 고개 숙인 옥경이 / 바라보는 눈길이 젖어 있구나 / 너도나도 모르게 흘러간 세월아 / 어디서 무엇을 하며 / 어떻게 살았는지 / 물어도 대답 없이 고개 숙인 옥경이.

이 곡은 1981년 예술철학가수 나훈아가 불러만 보고, 음반은 내지 않았던 <고향여자>가 원곡이다. 당시 히트반열에 오르지 못할 것으로 예단하여, 8년 동안 임종수 작곡가의 작품 노트 속에 잠들어 있다가, 1989년에 깨어나, 이름을 바꾸어 태진아의 <옥경이>로 세상에 나온다.

이 멜로디는 작곡가 임종수 선생이 아내 한은오 여사의 암 투병을 지켜보면서, ‘이대로 죽지 않고 영원히 머물러 달라’는 의미로 지은 <이대로 영원히>라는 곡조이다. 결국 <옥경이> 노래는 <고향여자 + 이대로 영원히>의 합성곡(合性曲)이라고 스토리를 얽어야 하는 유행가다.

원곡 가수 태진아(1953~. 충북 보은 출생. 본명 조방헌)의 아내 이옥형은 이미자의 조카뻘이며, 집에서는 ‘옥경아~’라고 부른다. <옥경이>를 발표할 당시 태진아는 36세였다.

태진아는 20세이던 1972년 <내 마음 급행열차>로 데뷔한 후, <추억의 푸른 언덕, 나를 울렸다, 못 잊을 건 정, 잊지는 못할 거야, 보내는 마음> 등으로 대중들과 소통했다. 이후 1980년 미국으로 갔다가 1984년 귀국하여 <경아의 사랑>으로 재기를 노렸으나, 실패한다. 태진아와 이옥형은 미국에서 생활할 당시, 가수 남진의 소개로 이어진 인연이란다.

이후 1988년 12월 KBS 전국노래자랑 결선 뒤풀이 모임에서, 태진아는 작곡가 임종수 앞에 다가가 잔을 권하며, 노래 한 곡을 줄 것을 청하였고, 이 인연으로 받은 노래가 <옥경이>다. 이후 태진아는 전통가요 부활정책 바람을 타고 트로트 삼국시대의 주인공이 된다.

태진아의 예명은 인기 여배우 태현실(1941~. 함북 성진 출생)의 ‘태’, 가수 남진(1946~. 목포 출생, 김남진)의 ‘진’, 나훈아(1947~. 부산 출생, 최홍기)의 ‘아’ 세글자를 합친 것이다.

<옥경이>(고향여자)이 노랫말에는 실제 사연이 매달려 있다. 그 사연은 희미한 싸이키 조명이 스멀거리며 빙글거리는 서대문 어느 살롱이다. 그 속에 마주 앉은 여인은 작사가 조운파 선생의 지인, 그의 고향 소꿉친구 가시내다.

1976년경 어느 날 지인은 별빛살롱이란 간판을 붙인 허름한 술집에 혼자 들어섰단다. 그는 의례적으로 옆자리에 앉은 여성에게 이것저것(고향·나이 등등)을 묻는다. 하지만 상대편 여성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어릴 적 고향 동네에서 신랑 각시놀이를 같이 하던 소꿉친구였단다.

여자가 짙은 화장을 하고 있으니 몰라본 것이다. 둘은 나중에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단다. 이 노래는 1970년대 우리의 사회상이고, 산업화 과정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면서, 완료된 슬픔을 남기고 간, 구슬픈 역사의 산물, 그 당시의 현재이다.

작사가 조운파는 본명이 조대원이다. 1943년생, 그의 고향은 부여 은산면 삼월리다. 고향 집에서 바라보면 청양 칠갑산이 눈앞에 있다. 그래서 그가 처음으로 만든 노래가 <칠갑산>이다. 윤일상과 주병선이 불렀던 노래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하여 7년여를 복무하고 전역했다. 이후 서울로 와 시인으로 활동을 하다가 박건호(1949~2007, 원주 출생) 작사가를 만나 대중가요 가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칠갑산>은 조운파의 처녀작이다.

태진아가 대중가수가 된 것은 운명일까 숙명일까.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충청북도 보은군 마로면 관기송현로 109, 관기초등학교가 그의 최종 모교다.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태진아가 스스로 회고한 인생역정이다. 그는 이후 검정고시를 거쳐, 방통대에서 공부를 마쳤다. 그는 악보도 볼 줄 모르고 악기도 연기할 줄 모르지만, 수많은 히트곡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구슬로 곡을 짓는단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14살에 서울에 올라와 가수가 되기 전까지 경험한 직업이 37개란다.

미스터트롯2 준결승 문턱에서 경악스럽게 탈락(14위)한, 1975년생 김용필은 국민대에서 자동차공학을 전공하고 아나운서를 하다가, 그 길을 접고 가수로 인생길을 전향했다.

그는 로버트 리 프로스트(1874~1963. 미국 시인)의 『가지 않은 길』시를 얼마나 뇌까렸을까. ‘노랗게 물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어/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고/ 한 길만 걸어야 하는 것이 아쉬워/ 멀리 굽어져 덤불 속으로 사라지는 길 하나를/ 한참 동안 서서 바라보았지...’

김용필이 되돌아 선택한 가수 길은 운명(運命)일까, 숙명(宿命)일까. 그는 준결승전 진출 탁락 후, 빅컬쳐엔터테인먼트로 가수 활동 소속을 정했다. 배우면서 채워가겠다는, 눈물 머금은 각오도 피력했다. 본인의 순위와 상관이 없는 결승전무대에 특별출연하여 낭만가객 최백호와 듀엣으로 <낭만에 대하여>를 열창하여, 우승보다 더 값진 갈채를 받았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운명과 숙명이 다르지만, 신의 입장에서 보면 같다. 이것이 신명(神命·神令)이다. 김용필이 새로이 들어선 가수의 길이 꽃길로 이어지기를 응원한다. 또 수 많은 사람들이 맘속에 품고 있는 가지 않는 길을 향하여, 탈망향망(脫網向茫) 하는 푯대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 길이 블루오션 속의 블로로드이다.

블루로드는 나만의 길이고, 성공이라는 대문을 열고 들어설 수 있는 열쇠를 만들어 가는 길이다. 김용필을 응원하는 『용feel하모니·ffan』들이시여~ 파이팅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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