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대중가요의 대중화, 유행가의 유행화는 대중들 삶 속에 감흥의 자가 발전소를 돌리는 것과 같다. 티끌 묻은 역사 속 보물에 광(光)을 내는 것과 같다. 오늘날 유행가 복고(復古) 열풍, 리메이크 경연 열풍이 그 현상이다. 노래는 세상과 통한다. 여기서 세상은 노래가 탄생하는 시대 이념을 머금고, 그 시대를 살아내는 대중들의 삶을 묵시한다는 의미다.

이런 면에서 노래를 부른 원곡가수가 훤칠하면 모창가수가 늘어나고, 노래가 절창이면 리메이크 가수가 날갯짓을 많이 한다. 이런 류의 대표적인 곡조가 가요황제 나훈아의 목청을 타고 이 세상에 나온 <고장 난 벽시계>다. 미스터트롯2에서 11세 송도현이 절창한 곡조.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도 보지 않느냐 / 나를 속인 사람보다 / 네가 더욱 야속하더라 / 한두 번 사랑 땜에 울고 났더니 / 저만큼 가버린 세월 /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이 노래 <고장 난 벽시계> 속의 시계는, 노래 속 화자 자신의 인생 시계이고, 노래의 메시지는 흘러간 세월 뒤에는 시들어진 청춘만 무상하다는 인생 반추의 곡절이다. 불혹(不惑)과 지천명(知天命)의 고개를 넘긴 인생, 한두 번 사랑 땜에 울어보지 않은 나그네가 있을까.

나훈아가 자신의 인생곡 같은 이 노래를 세상이라는 감성 시장에 내놓을 당시는 58세였다. 2023년, 그로부터 18년이 흘러가고 고희를 넘기고도 6년의 세월이 더 흘렀다. 77세의 황혼이다. 나훈아는 대중가요 유행가를, 꿈을 머금은 철학 상품으로 제조하여 대중들 감흥의 시장에 내다 파는 가객(歌客)이다.

나훈아는 가수(歌手)의 반열을 초월한 예술철학가의 반열에서도 상좌(上座)에 배열할 걸웅(傑雄)이다. 그는 세칭 행사(출장 공연)를 뛰지 않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노래쟁이다. 그는 티켓(표)을 사서 현장에 온 고객들에게만 그의 노래(가창)를 판다. 라이브 공연장으로 고객들을 초빙하는 것이다. 그는 방문판매를 하지 않는, 한국판 베토벤(1770~1827. 독일)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그래서 모창가수도 많고, 그의 노래를 리메이크 송으로 부르는 가수가 많은 것이다. 미스트롯1 본선 기부금 미션에서 이찬원이 이 노래를 맛깔나게 불렀다. 당시 패밀리가떴다팀(이찬원·정동원·고재근·김호중)의 찬또배기 이찬원의 존재감이 빛났다.

미스터트롯2 경연에서는 11세 초등학생 송도현이 ‘세워어얼아~ 너는 어어찌~’를 내지르면서 심사위원들과 방청객들의 귀를 호사시켰다. 불타는 트롯맨에서는 황영웅·박민수가 소절 이어부르기를 하면서 방청석을 감흥 도가니로 뒤흔들었다. 노래 주인은 한 사람인데, 시장에 이 상품을 들고 나가는 사람(가수 상인)은 많고 많다.

청춘아 너는 어찌 / 모른 척하고 있느냐 / 나를 버린 사람보다 / 네가 더욱 무정하더라 / 흰 구름 따라가다 돌아봤더니 / 어느새 흘러간 청춘 /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가 없다. 고장 난 벽시계도 더 이상 세월을 감고 돌아가지 못한다. 미스터트롯2에서 송도현은 노래를 하는 도중에 고장 난 시계의 멈춘, 정지된 시계바늘 율동을 연출하여 흥을 부추겼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 시계는 병이 들어도 세월을 안고 돌아가고, 생채기 상처가 아파도 세월의 수레바퀴 위에 올라앉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되돌릴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을 은유한 <고장 난 벽시계> 노래가 대중들의 인기 온도계를 상승시키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 시계는 어느 때에 고장이 나고 또 정지할까. 나훈아는 58세에 <고장 난 벽시계>를 발견하였는데, 여든을 바라보는 그의 사랑 시계는 2016년에 멈춰 섰고, 그의 가객 인생 시계는 현재진행형으로 돌아가고 있다.

나훈아, 그는 왜 그토록 오랜 기간 가요황제로 군림할까. 팔색조팔색음(八索鳥八色音) 오디오처럼 변신하는 독특한 그만의 창법을 누가 능가할까. 중후한 중저음, 꺾일 듯 이어가는 음역을 초탈한 고음, 간들거리는 꺾기와 휘몰기, 가슴을 후벼 파는 가사, 그 누가 그의 뒤를 이을까. 나훈아 노래들은 우리나라 근대화 역사 궤도와 일치한다.

그의 명창 <고향역>(원곡 명칭, 차창에 어린 모습)은 익산 황등역이 배경지인데, 1970년대 이농향도(離農向都)의 노스텔지어 대표곡이다. <물레방아 도는데>는 1940년대 초반기 일본제국주의 군대에 징용되어갔다가,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작사가 정두수의 삼촌이 고향 하동 성전리를 떠나가던 모습을 얽은 절창이다. 그의 아버지 묘소에서 받은 영감으로 얽은 절창 <테스형!>은 어떠한가. 하지만 그 가황도 한 사람의 자연임을 어이하랴. 세상의 모든 자연인, 그들의 인생 시계는 고장이 있음이여~.

나훈아 인생, 고장 난 시계는 그의 남다른 결혼생활과 관련지을 수 있다. 그의 첫 부인은 고은아의 4촌 이숙희, 그녀와의 결혼생활은 2~3년, 이후 국민배우 김지미와 7년간 결혼생활 후 이별하였고, 후배 가수 14세 아래 정수경과는 2016년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청의 판결로 갈라섰다. 2008년에는 사생활과 관련한 황당한 소문이 있어서 벨트를 풀어제치려고 했던 기자회견을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훈아의 인생 시계는 멈추었었다. 가요황제의 인생은 이와 같은 가슴 아리는 눈물과 한숨의 여정이다.

2005년 윤중민이 작사하고 박성훈이 멜로디를 붙인 <고장 난 벽시계>는 세월의 강을 역류하듯 되감을 수 없는 인생을 은유한 곡이다. 시계는 멈추어도 역사는 흐른다. 사람은 흘러가는 역사의 강 물결에 나룻배를 탄 주인공이다. 이런 곡조를 얽어야 유행가라는 이름 패를 달 수가 있다.

모든 유행가는 대중가요에 속하지만, 모든 대중가요를 유행가류 반열에 올려두면 안 된다. 유행가(流行歌)는 1곡에 7요소를 아우러야 한다. 작사·작곡·가수·시대·사연·모티브·사람이 그 요소이다. 이런 노래는 100년 애창곡이 되고, 천년 뒤에는 보물이 된다.

유행가는 세월의 강 물결을 따라 흐르는 돛단배다. 11세 초딩이 송도현의 노래 인생 시계여~ 째깍째깍~ 멈추지 말고 돌고 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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