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부모님 은혜를 생각하는 5월이다. 효자가 더 많이 가슴 아파해야 하는 가정의 달, 효자통회(孝子痛悔)를 각성하며 하늘을 우러러본다. 잠잠한 창공을 찬찬히 헤아려 봐도 차가운 이슬을 가리어줄 지붕이 없다. 흩날리는 빗발을 막아줄 우산이 없다. 천붕(天崩), 무너진 하늘 사이로 난 허공중으로 나의 지붕과 우산이 하늘 여행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꼭 여덟 달 차이로, 먼 길을 앞서고 뒤따르신 70년의 해로였다. 1952년 12월 14일(부모님 결혼기념일)부터 2022년 6월 16일(어머님 소천일, 87세)까지, 2023년 2월 15일(아버님 소천일, 93세)까지의 해로(偕老) 후, 같은 무덤에 영원히 영면하는 동혈(同穴)의 세상으로 드신 것이다.

이제, 필연적으로, 내가 내 아이들의 지붕이고 우산이라는 생각을 가다듬으며, 비운의 가객으로 존경받는 오기택의 절창, 국민애창곡 <아빠의 청춘>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 노래 속의 아빠는 우리들의 영원한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다. 그렇다. 이 세상에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이다. 아들딸이 잘되라고 행복 하라고 빌어주시는 마음~.

이 세상에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 / 아들딸이 잘되라고 행복하라고 / 마음으로 빌어주는 박 영감인데 / 노랭이라 비웃으며 욕하지 마라 / 나에게도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 /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 부라보 부라보 아빠의 인생.

<아빠의 청춘>은 1964년 반야월 선생이 노랫말을 짓고, 손목인 선생이 멜로디를 얽어서, 해남 출신 오기택 선생의 목청을 타고 세상에 나왔다. 세 분 예술가는 이미 하늘 여행을 가셨고, 예술만 남았다. 이 예술가들은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토끼 같은 자식들의 어버이였다. 이들의 지붕이고 우산이었지만 이승의 길은 유한하다.

그래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면, 부모와 자식 간의 혈육 지정이 알싸한 맛으로 가슴팍을 쑤신다.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노래에 엇대이기는 한데, 인생 짧음의 여운에 대하여는 마음에 대롱거리는 생각이 많다. 행위가 끝났다고 여운이 사라진 것이 아니듯이, 하늘 여행은 나서신 부모님에 생각은 한량없다. 부모님은 자식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계시는 나무다.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어버이 달이고, 스승의 달이다. <아빠의 청춘> 노래는 이 중에서 어버이 은혜를 향하여 난 감성의 고속도로와 같은 절창이다. 이 노래가 발표된 그 시절의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GNP 100달러 고개를 갓 넘어선, 경제 수준으로 치면 비포장도로 위를 덜컹거리던 때였다. 이후 6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21세기 대한민국은 GNP 3만5천불 시대를 오르내리는, 경제적으로는 고속도로이거나 KTX 고속열차 레일 위를 달리고 있다. <아빠의 청춘> 노래 속 아빠(어버이)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범벅된 노고의 덕택이다. 어찌 말로 감사만 할 일인가, 그래서 가정의 달 5월만이라도 <아빠의 청춘>을 목청을 돋우어 예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56년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하여 매년 17회까지 행한 뒤, 1973년 ‘어버이날’로 이름을 통합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날을 전후하여 1주일 동안을 ‘경로주간(敬老週間)’으로 정해 양로원과 경로당 등을 방문·위로하는 등 어른 공경에 관한 사상을 고취하기도 하였으나, 1997년부터 경로주간을 폐지하고 10월 2일을 ‘노인의 날’로, 10월을 ‘경로의 달’로 정해 별도로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태는 이러한 취지를 무색(無色)하게 한다. 누군가의 어버이면서 할버이(할아버지·할머니)인 연령층은 층층고층고고층(層層高層高高層)인데, 이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와 예우에 대한 통념과 행실은 층층하층하하층(層層下層下下層)라는 말로도 모자라는 실태, 길 거리나 버스 기차 안에서 경로(敬老)라는 말이 사라지고 침몰한 지 오래이니 어찌하면 좋으랴.

그래서 이 노래 <아빠의 청춘>이 더 간절하게 감흥(感興) 되는 것이다. 2020년 12월 미스트롯2에서 허찬미가 열창한 이 노래는, 발표 56년 만에 트로트 경연 무대에서 환생했었다. 1992년생 혼성그룹 남녀공학 출신 허찬미는 노래보다 28년이나 이 세상에 늦게 태어난 가수다. 그녀는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출연하려다가 연령 초과로 참가하지 못한 아버지의 꿈을 걸고 무대에 섰었다. 2절 노랫말은 자식들을 위하여 돈을 아끼고 아끼는 아버지와 자녀들 간의 마음을 풍자했다. 이 대목에서 허찬미의 목청에는 더 진한 감흥이 묻어 흘렀다.

세상 구경 서울 구경 참 좋다마는 / 돈 있어야 제일이지 없으면 산통 / 마음 착한 며느리를 내 몰라보고 / 황소고집 부리다가 큰 코 다쳤네 / 나에게도 아직까지 꿈이야 있다 /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 부라보 부라보 아빠의 인생.

<아빠의 청춘>에 묘사된 아빠의 마음은 이 세상에 단 한 분밖에 없는 유일한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러면서 모든 이(부모)의 마음이기도 하다. 세상에 혈육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둘인 호모사피엔스는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이 노래에는 오늘날 다문화이거나, 융복합 가정의 가족관계 부모님의 마음까지를 아울러야 한다. 이런 전제를 가슴에 품고, 이 노래를 불러야 참 맛이 돈다.

아빠라는 단어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이 노래는 1964년 발표 후 1966년 정승문 감독의 영화 <아빠의 청춘> 주제곡이 된다. 배우 김승호(1918~1968)가 아버지로, 태현실(1942~)과 신성일(1937~2018)이 아들과 딸로 출연했다. 그 당시 빛나던 이 땅의 예술별들도 이미 하늘의 별로 되돌아갔다.

영화 주인공 박 영감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자식밖에 없었다. 그는 일찍 아내를 여의고 순두부집 평창옥을 운영하면서 3남매를 키웠다. 그런데 아들 역시 홀아비가 된다. 이에 아버지는 비밀스럽게 아들의 재혼 자리를 알아본다. 하지만 자식들은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들이려한다고 오해하여, 아버지를 냉대하고 노랭이라고 비웃으며 욕을 한다.

이 노래는 당시는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1980~1990년대 부권상실(父權喪失)의 사회현상과 맞물려 흔들리는 아빠의 위로 곡으로 떠 올랐고, 21세기 트로트 복고 리메이크 열풍에 펄럭거린다. 이런 사조와 경향의 세월 터널을 지나면서, 우리 대중가요 100년사에서 남자와 아버지의 삶을 풍자한 노래들이 줄을 잇는다. 나훈아의 <남자의 인생>, 고영준의 <남자의 길>, 인순이의 <아버지>, 최백호의 <남자>, 현숙의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 이미자의 <기러기 아빠> 등으로 세상의 아빠와 엄마들 위무했다.

<아빠의 청춘>을 작곡한 손목인은 당시 51세였다. 본명 손득렬. 1913년 진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손안드레와 양상포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민요처럼 불리는 유행가 <노들강변> 작곡가 문호월과 외4촌(6촌?)이며, 한의사 집안에서 유년 시절을 유복하게 자랐다. 서울 재동보통학교와 중동중학교를 졸업하였고, 일본 도쿄고등음악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하였다. 1934년 처음으로 작곡한 <타향살이>(원제목:타향)를 고복수가 불러 히트하면서 OK레코드 전속 작곡가가 되었다. 이듬해 발표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연이어 히트했는데, 이 곡의 원래 노랫말 이름은 <목포의 사랑>, 곡조는 <갈매기 우는 항구>였다. 고복수가 녹음하려다가 이난영의 목청으로 세상에 나왔다.

<아빠의 청춘>을 발표할 당시 오기택은 21세였다. 1943년 해남 출생, 서울성동공고 졸업 후, 고복수 선생의 동화예술학원에서 노래 강습을 받던 중, 1961년 제1회 KBS주최 직장인콩쿠르대회에 1등으로 입상하였다. 오기택은 <천 리 먼 길>, <연모> 등을 부른 가수 박우철(해남 출생, 본명 오영록)의 친 3촌이다. 한평생을 노래와 함께하며 홀로 살아낸 오기택 선생은 2022년 3월 향년 82세로 영원의 길로 드셨다.

<아빠의 청춘>에 나훈아 선생의 <남자의 인생>을 걸쳐본다. 어둑어둑 해 질 무렵 집으로 가는 길에, 지친 하루 눈은 감고 귀는 반만 뜨고 가는, 아버지란 그 이름의 남자 모습. 이미자 선생의 <여자의 일생>은 또 왜 걸쳐지는가.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 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니고 먼 길 향하신 어머니~.

미국에서는 1914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날’로 정했다. 이후 매년 그날, 어머니가 생존해 있는 이는 빨간 카네이션, 저승에 계신 이들은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다. 불초 소생 활초는 올해부터 어버님 묘소에 흰 카네이션을 놓아드려야 한다. 찬 서리와 빗발을 막아주실 지붕과 우산이 무너진 천붕(天崩)의 나그네가 된 처지이기 때문이다. 불효통회(不孝痛悔)다, 5월은 효자가 더 많이 가슴 아파하는 달이다. 이 세상의 부모 마음, 아빠들의 부라보~를 외쳐야 하는 달이기도 하다. 이 세상 모든 아부지~ 어무이들이시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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