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21세기 대한민국은 3광1무1유(三狂一無一有)의 나라로 쇠락해 가고 있다. 사유(思惟)가 멍들고, 영혼이 피폐해지고 미치는 듯한 3광은 S(스마트폰·유튜브·SNS)과 M(공짜돈)과 T(트로트)이고, 1무는 생각(思)이 없고, 1유는 말(言)만 있다는 의미다. 가슴팍이 먹먹해지고, 머리가 어질거린다.

대다수의 국민은 활자 책(지면)을 읽지 않고, 스마트폰에 눈을 붙박고 산다. 그나마 조금 긴 영상은 아예 외면해 버리는 인내심 상실 현상까지 만연하고 있다. 머리를 수그린 저두족(低頭族)이, 길거리와 움직이는 버스와 기차 안과 커피숍 등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다. 파란불이 켜진 도로상의 건널목을 건널 때도 상대방은 없고 스마트폰만 있다.

쿵쾅거리는 음향과 눈부신 조명과 현란한 사면팔방의 스크린 속에서 갖은 기교로 대중들의 영혼을 멍들게 하는 얕은 감흥 판들이 넘실거린다. 공짜 돈에 미친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허무맹랑한 말들을 갈기진 걸레처럼 흩뿌리는 꼬락서니들, 영상 화면으로라도 대면하기가 성가신 저들이 모니터 속에서 사라질 날은 언제일까.

이러한 시류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을 거는 것은, 흘러온 유행가 다시 부르기 경연 열풍 속에 매달린 고사가(古史歌)와 오리지널에 가까운 유행가(流行歌)의 절창이고 음유이다. 이런 유(類)는 지난 시절을 되새김하게 하기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희망을 건다는 것이다. 그 경연 무대 끝자락에 매달린 노래가 원곡이 불린 후, 63년 동안 국민애창곡으로 흘러온 <베사메 무초>다.

베사메 베사메무쵸 /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 / 베사메 베사메무쵸 /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 베사메무쵸야 / 리라꽃 같은 귀여운 아가씨 / 베사메무쵸야 / 그대는 외로운 산타마리아 / 베사메 베사메무쵸 /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 / 베사메 베사메무쵸 /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이 노래의 우리나라 원곡 가수는 성악을 전공하고 대중가수의 인생을 살아낸 현인, 이 노래로 불타는 트롯맨에서 우승을 한 신인 가수도 성악을 전공한 손태진이다. 손태진은 이 노래를 열창하면서 농염한 라틴 댄스로 방청객들을 흥분시켰다. 1절은 한국어 번안 버전으로, 2절은 스페인어 원곡 버전으로 부른 연출과 실력도 돋보였다. 미스터트롯 에이드 미션에서 뽕다발(임영웅·황윤성·류지광·강태관)이 뒤흔들었던 노래 깃발도 이 곡이었다.

이 노래는 제2차세계대전 전쟁상황 속에서 인기가 상승한 곡이다. 원곡은 스페인의 엔리크 그라나도스가 화가 고야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서 지은 <Besame mucho>다. 이후 1941년 멕시코 하리스코에서 태어난 여류작가 콘수엘로 바라스케스가 <볼레로>라는 편곡을 만든다. 이를 1943년 서니 스카일러가 영어가사를 붙여 <kiss me much> 발표하면서 미국에 알려졌다.

‘베사메 무초, 언제든 당신에게 입맞춤할 때마다 아주 멋진 음악이 들리지요, 좀 더 입맞춤을 하며, 나를 꼭 안아주세요. 그리고 그대는 영원히 나의 것이라고 말해주세요.’라는 애절한 절창. 그 시절 전쟁터를 향해서 먼 길을 떠나야 했던 병사들과 남겨진 연인들의 애틋한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대중들의 가슴팍 인기 온도계를 끌어 올린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인이 1950년경 한국어로 개사된 번안곡이 발매되었다. 럭키레코드에서 문예부 작사 박시춘 편곡이었다. 베싸메무-쵸(남국의 처녀)가 그 시절의 제목이다. 이후 1960년 현인이 <베사메 무초>로 리메이크하였으며, 노태우 대통령이 아코디온을 직접 연주하며 불렀던 애창곡이다.

노랫말 중 리라꽃은 프랑스어로 라일락이며 우리나라 수수꽃다리와 비슷한 꽃이다. 1945년 해방광복 후, 1947년경 우리나라 미군정청에서 근무하던 직원 엘윈 M. 미더가 북한산에서 털회개나무 씨앗(묘목) 12개를 가지고 가서, 이를 개량하여 육종한 꽃 이름이 ‘미스김라일락’이란다. 꽃나무 품종의 이름으로 환생한 ‘미스김’은 그가 한국에 일할 당시 같은 사무실 타자수 여직원이 김 씨였기 때문이란다. 이 종(種)의 라일락은 오늘날 세계 라일락 시장 30%를 점유하고 있단다.

우리나라 수수꽃다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등지에서 자라는 특산 식물로 보통 라일락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모양이 비슷하며, 정향나무·개회나무·꽃개회나무·버들개회나무 등 종류가 있다. 우리나라 자생종이 서양에서 들어온 라일락보다 잎이 크고 꽃 색이 진하며, 곁가지가 덜 나온다. 라일락은 세계적으로 30여 종이 있는데, 북한에서는 수수꽃다리 남한에서는 털회개나무로 통칭하며, 인제 점봉산·설악산 중청대피소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길섶에 군락지, 중부내륙고속도로 여주~충주 구간에 보라 흰색으로 줄지어 핀다.

베사메무쵸야 / 리라꽃 같은 귀여운 아가씨 / 베사메무쵸야 / 그대는 외로운 산타마리아 / 베사메 베사메무쵸 /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 / 베사메 베사메무쵸 / 리라꽃 향기를 나에게 전해다오.

라일락 꽃말은 ‘젊은 날의 초상, 아름다운 언약’이다. 톨스토이의 『부활』에서 청년 귀족 네푸류토푸가 하녀 카추샤를 유혹하려고 라일락을 들고 가며, 미국의 롱차일랜드 농가 출신 시인 휘트먼도 노동자의 삶을 노래하면서 이 꽃을 등장시킨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라일락 꽃술을 만들기도 하고, 심술궂은 연인들은 잎이나 꽃을 씹게 한다. 쓴맛의 선물이란다.

현인(본명 현동주)은 미국 군정 3년이 끝나는 시점에 대중가수로 등록한 해방광복 이후 제1호 직업가수라고 한다. 제2호는 남인수일까, 백년설일까, 고복수일까, 이난영일까, 황금심일까, 백난아일까. 현인은 대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인생 진로를 바꾼다. 아버지의 바램은 당시 육군사관학교를 진학하는 직업군인, 본인의 꿈은 성악교수, 대중들의 기대는 대중가수였다. 성악을 전공하고 대중가수의 길을 지향하는, 경연대회에 참가한 손태진도 현인과 같은 맥락의 길을 걷는다.

현동주는 1919년 부산(영도구 영선동·구포)에서 출생하여 일본 우에노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제국주의 강제징용을 피해 상하이로 건너가 신태양악단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귀국 후 현인악단을 조직하여 연주하였고, 여기서 작곡가 박시춘(본명 박순동)을 만난다. 그는 1947년 <신라의 달밤>을 불러 데뷔한 이후, <비 내리는 고모령> 등을 부르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베사메무초>, <꿈속의 사랑> 등을 불러 번안곡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현인의 창법은 성악을 기반으로 한 특유의 떨림이었다. 또한 번안곡 등은 세계적인 추세와 함께,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한국전쟁 전후에는 <전선야곡>, <굳세어라 금순아> 등을 불러 시대 분위기에 따른 인기를 끌었고, 지병인 당뇨병을 앓다가 2002년 4월 13일 향년 82세로 작고하였다.

손태진은 1988년 서울 출생, 그는 초·중·고를 모두 싱가포르에 다녔단다. 그래서인가 여러 나라말을 구사할 수 있단다. 그는 학창 시절 교양 필수과목으로 음악이나 미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음악에 조금 더 관심이 있어서 음악을 선택했다고 한다. 중간에 호텔리어학과로 지향하기도 했었지만, 결국 음악으로 방향을 정하고 서울대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성악과로 편입했단다.

1978년 대학가요제가 낳은 논타이틀(상을 받지 못한) 여신, 심수봉(본명 심민경)이 손태진의 이모할머니란다. 인척 관계, 손태진 엄마의 엄마(외할머니)가 가수 심수봉의 언니라는 것. 천부적인 재능은 타고난다는 말이 실감으로 연결된다. 최종 우승 확정 후 손태진의 전화를 받은 심수봉은 ‘중요한 건 곡이 있어야 할 것, 내가 곡 하나 만들어주겠다. 너의 곡이 있어야 한다. 남의 곡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 있는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손태진은 6억여 원의 상금을 획득했지만, 황영웅의 도중하차 그림자도 아스라하다.

무대 위에서 펄럭거리던 대중가요 유행가 복고(復古) 바람은 이제부터는 대중들의 삶을 더욱 깊이 있게 풍성거리게 할 것이다. 대중가요의 대중화와 유행가의 유행 바람이 다시 불 것이다. 그 새 바람결은 각각 유행가의 스토리텔링이 되어야 한다. 유행가(流行歌)는 시대를 따라 흐르는 노래다. 그래서 유행가는 시대 이성과 대중들 삶의 마디 마디를 얽어야 오래 간다. 애창곡이 된다. 이 시대 이성과 삶의 마디를 합치면, 뒷날에 매듭으로 엮으면 역사가 된다. ‘잊혀 가는 과거, 그 당시의 현재’로 아롱진다. 그래서 유행가는 명곡보다는 통곡(統曲)이 되어야 한다. 유행가 스토리텔링은 작사·작곡·가수·시대·사연·모티브·사람을 얽어서 풀어야 한다. 1곡 7요소다. 모든 유행가는 대중가요이지만, 모든 대중가요가 유행가일 수는 없다.

3광1무1유(三狂一無一有)의 나라로 쇠락해 감을 염려하는 기우(杞憂)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을 거는 것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유행가 통창이다. 유행가를 유행하게 하는 것이, 기울어져 가는 감흥의 경도를 바로 세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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