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시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한몫 잡을 기회가 됐을 것이다. 지금 무기와 돈줄을 쥔 이들은 어느 때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터이다. 전쟁 통에 부를 거머쥔 사람들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의 역사에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나폴레옹 전쟁의 가장 큰 승자로 우뚝 서게 됐다는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재기를 꾀하던 프랑스 황제가 워털루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 그 정보를 가장 먼저 전해 들은 런던의 금융가가 증권시장에서 일확천금을 얻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은 부풀려지고 비틀어진 신화다.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고통을 겪고 있던 1998년 30대 중반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전설의 금융 가문 로스차일드’라는 방대한 연구서를 내놓았다. 그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서고에 잠들어 있던 135상자의 비밀스러운 자료들을 이용할 수 있었다. 퍼거슨은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라는 랑케의 원칙을 충실히 따르려 했다. 그의 결론은 현실은 신화와는 반대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웰링턴 공작의 워털루 승전은 로스차일드 형제들에게 엄청난 수익을 안겨주기는커녕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

나폴레옹과 웰링턴은 1815년 6월 18일(일) 벨기에 남동부 워털루에서 격돌했다. 나폴레옹은 최후의 결전에서 패퇴했다. 웰링턴의 공식 승전보는 21일(수) 밤 11시에야 런던에 전달됐다. 네이선(나탄) 로스차일드는 그보다 훨씬 빨리 정보를 입수했고 런던 증시가 폭등하기 전에 물량을 대거 매집해 어마어마한 차익을 남겼다는 것이 신화의 핵심이다. 그가 웰링턴이 패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려 투매를 유도한 후 헐값에 매물을 거둬들여 이중으로 이익을 챙겼다는 설도 있다. 네이선 본인이 직접 전투 현장을 목격한 후 해안으로 달려가 어부를 어르고 달래서 끔찍한 폭풍을 뚫고 런던에 도착했다는 상세한 묘사부터 길들인 비둘기로 맨 먼저 승전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는 판타지까지 온갖 신화가 만들어졌다.

퍼거슨은 런던의 네이선이 전투 결과를 맨 먼저 들었다고 봤다. ‘로스차일드의 특사가 6월 18일 자정에 브뤼셀에서 발행돼 됭케르크와 딜을 거쳐 19일(월) 밤 런던의 뉴코트에 도달하게 될 결정적인 신문 호외판을 누구보다 먼저 전달한 덕분에 나폴레옹의 패전 뉴스를 제일 먼저 받게 된 것’이라고 썼다. 이는 웰링턴이 승전 회의를 가진 후 겨우 24시간이 지난 때였고 공식 승전보가 전해진 것보다는 48시간을 앞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가문의 자료들을 모아놓은 ‘로스차일드 아카이브’를 보면 사뭇 다른 설명이 나온다. (퍼거슨의 책은 25년 전에 나왔다. 아카이브의 글은 그 책을 모두 검토한 후 쓴 것이다.)

웰링턴 공작은 1820년대와 1830년대에 몇 차례 사석에서 어떤 소문을 전했다. 당시 벨기에 겐트에 머무르고 있던 루이 18세가 워털루의 승전 소식을 전해 들을 때 그곳에 있던 로스차일드의 정보원이 런던의 네이선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신문들은 19일 겐트에 있었던 한 신사(Mr. C)가 서둘러 런던으로 와 (20일 밤이나 21일에) 승전 소식을 전했다고 썼다. 하지만 그를 네이선과 연결지을 근거는 없다. 더욱이 이 신사는 21일 오전에 런던 금융가에 그 소식을 공개했다. 그날 낮에 이미 그 기사가 보도됐다. 네이선이 그 정보를 독점하며 증시를 들었다 놨다 했다는 이야기와는 맞지 않는다.

로스차일드 아카이브는 네이선이 다른 소식통으로 그 정보를 들었다고 설명한다. 에든버러의 신문 ‘칼레도니안 머큐리’의 런던 주재 기자는 21일 저녁에 승전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이렇게 썼다. ‘나는 이 소식을 겐트에서 온, 로스차일드가 받은 서신을 봤다는 믿을 만한 소식통에게서 들었다.’ 이날 런던 증시에서 대규모 조작의 증거는 보이지 않았다. 전황에 가장 민감하게 움직이는 증권은 몇 가지 국채의 바스켓인 ‘옴니엄’이라는 증권이었다. 21일 옴니엄의 개장과 폐장 때 프리미엄은 4.75%로 같았다. 중간에 6%로 오르기도 했지만 되밀렸다. 네이선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폭락을 유도했다) 폭리를 취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기록을 따져보면 워털루 신화의 핵심적인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실 네이선은 웰링턴의 승전 소식을 듣고 적잖이 당황했다.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돌아와 워털루에서 패할 때까지 겨우 석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영국과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가 나폴레옹을 상대로 다시 한번 긴 전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하고 그 틈을 타 한몫 잡으려고 준비하고 있던 그였다. 로스차일드 가의 형제들은 평가절하된 대량의 금괴뿐만 아니라 암스테르담에서 팔려던 100만 파운드 넘는 단기 국채 때문에 골머리를 앓게 됐다. 영국에서 동맹국들에 전해 주려던 보조금도 필요 없게 될 것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전쟁이 끝나면 로스차일드가는 전설로 남을 거대한 이익이 아니라 엄청난 손실을 볼 판이었다. 형제들은 결국 큰돈을 벌었으나 그것은 워털루 신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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