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글로벌 금융위기가 고조되던 2008년 9월 서른 살이던 에마뉘엘 마크롱은 투자은행 로스차일드에 들어간다. 명문 국립행정학교(ENA)를 나와 경제부 금융조사관으로 일한 지 4년 만이었다. 친구는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 로스차일드가 어디 보통 은행인가. 훗날 너의 정치 경력을 망칠지도 모른다. 마크롱은 경고를 무시하고 부채 구조조정과 기업 인수·합병 일을 열심히 배웠다. 2012년 네슬레가 화이자의 유아식 부문을 인수하는 120억 달러짜리 거래에 자문도 했다. 290만 유로를 번 그는 ‘금융의 모차르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크롱과 일했던 동료와 고객들은 그가 일을 빨리 배우고 상대의 처지를 잘 이해하는 재능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EBITDA(이자, 세금, 감가상각 전 이익)가 뭔지도 몰랐다. 그걸 숨기지도 않았다. 책을 찾아보는 대신 붙임성 있게 주위에 묻고 다녔다. 기술적인 지식은 부족했으나 동문과 공직 인맥을 잘 활용했다. 네슬레 회장에게는 진작 좋은 인상을 남겼다. 그가 프랑스 경제 개혁 자문 보고서를 낼 때 초안 작성을 도와준 인연이 있었다. 마크롱은 이 유서 깊은 은행에서 일하면서 프랑스 엘리트층 내부의 촘촘한 네트워크에서 혜택을 보았다.

마크롱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경제보좌관과 경제산업부 장관을 거쳐 2017년 대권을 잡는다. 대선에서 경쟁자들은 그를 금융 엘리트의 대변자로 몰아세웠다. 그는 “나는 자유롭다”라며 일축했다. 정치권 실세들이 로스차일드사를 거쳐 간 것은 한두 번도 아니었다. 1962년부터 샤를 드골 정부의 두 번째 총리를 지내고 엘리제궁에 입성한 조르주 퐁피두도 그 전에 8년 동안 로스차일드사에서 일했다. (하지만 퐁피두 집권 당시 로스차일드 은행은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러나 로스차일드가는 외부의 인적, 물적 자본을 활용해 성장을 극대화하지 않았다. 지나친 위험을 피하며 신중하게 유기적 성장을 이루려 했다. 이 금융 왕국은 철저히 가족 기업으로 남아 있었다. 가업은 엄격한 비밀이 유지되는 파트너십으로 운영됐다. 1960년 런던의 로스차일드사에 외부인이 처음으로 파트너가 되기까지는 150년이 걸렸다. 재능 있는 외부인에 대한 신뢰와 보상은 부족했다. 월가에 파견한 대리인은 믿을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세계 최대 자본시장에 기반을 구축할 기회도 놓쳤다. 1차 세계대전 직전 784만 파운드였던 런던 쪽 회사 자본은 5년 후 361만 파운드로 줄었다.

2003년 런던과 파리의 회사를 합친 그룹 로스차일드가 출범했다. 파리의 다비드 드 로스차일드가 수장이 됐다. 2022년 런던 쪽의 에블린이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무게 중심은 파리로 더 옮겨왔다. 지금은 다비드의 아들로 로스차일드가의 일곱 번째 세대인 알렉상드르가 회장을 맡고 있다. 기업금융 자문과 개인 자산 관리, 자산운용, 머천트 뱅킹을 하는 로스차일드 앤드 컴퍼니의 2022년 매출은 29억 유로, 순익은 6억 유로였다. 자기자본 수익률은 20%에 이른다. 글로벌 거대 금융그룹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올해 2월 로스차일드가는 이 회사의 상장 폐지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넉 달간 주가평균에 34%의 프리미엄을 얹은 값으로 유통주식을 모두 사들여 비공개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이 평가를 적용하면 기업가치는 총 37억 유로에 이른다. 로스차일드가가 소유한 지주회사 콩코디아는 현재 로스차일드 앤드 컴퍼니의 지분 39%(의결권 47%)를 갖고 있다. 상장 폐지를 위한 주식 매수에는 전투기를 만드는 다소, 자동차그룹 푸조, ‘샤넬 넘버 5’ 향수로 유명한 베르트하이머 가문이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비공개 기업이 되는 은행의 지분은 콩코디아가 55%, 장기투자자들이 35%, 파트너들이 10%를 갖게 된다.

상장 폐지 결정에 대해 로스차일드가는 더는 주식시장의 자본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라고 했다. 게다가 로스차일드 은행의 여러 사업은 단기 이익보다는 장기 성과로 평가받는 것이 더 낫고, 따라서 공개시장보다는 사적 소유가 더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하루하루 주가 변동에 너무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면 장기 목표를 추구하는 데 해로울 수 있다는 말이다.

기업가들은 종종 스스로 상장 폐지를 택한다. 공개기업으로서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규제와 외부 주주들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기적인 시야에서 사업을 재편해야 할 때 단기 실적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1997년 애플이 파산의 벼랑에 몰렸을 때였다. 한 콘퍼런스에서 PC 업계의 거인인 마이클 델은 애플의 구원투수로 돌아온 스티브 잡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라면 뭘 하겠느냐고요? 회사 문을 닫고 주주들에게 돈을 돌려줄 겁니다.” 화가 난 잡스는 델에게 이런 메일을 보냈다. “최고경영자들은 품격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겠군요.”

그로부터 16년이 지났을 때였다. 2013년 델은 주주들에게 240억 달러를 돌려주고 자신의 회사를 상장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무슨 속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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