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마이클 델이 말했다. “이 자리에 내가 있고 여러분에게 칼 아이칸을 소개하지 않아도 돼 참 좋습니다.” 파티에 참석한 직원들의 웃음이 터졌다. 2013년 9월 12일 델컴퓨터 특별주주총회에서 25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기업 인수안이 통과되고 일주일 후에 열린 축하 파티였다. 텍사스주 라운드록에 있는 본사 대강당에는 600명이 모였다. 인도의 벵갈루루와 아일랜드 체리우드를 비롯해 세계 30곳 11만 명의 직원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는 글로벌 타운홀 미팅이었다. 축하할 일은 델컴퓨터가 유망한 스타트업이나 버거운 경쟁사를 사들인 것이 아니었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마이클 델이 주식시장에 상장된 자신의 회사를 도로 사들인 바이아웃이 성사된 것이었다. 록 밴드 음악이 신나게 쿵쾅거리는 가운데 델의 뒤에 있는 멀티스크린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굿바이 월스트리트.’

델은 마이클 저커버그 이전 세대의 대표적인 테크 신동이었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와 어깨를 견줄 만했다. 1965년에 태어난 그는 텍사스대 1학년이던 1983년 가을에 창업했다. 이듬해 1월 등록된 회사(PC’s Limited)는 초고속 성장을 이어가던 1988년 공개기업(Dell Computer Corporation)이 된다. 페이스북의 IPO 당시 저커버그의 나이(28세)보다 다섯 살 어린 23세에 자신의 회사를 상장시킨 것이다. 사반세기 동안 시장에서 거래되던 델(Dell Inc.) 주식은 창업자가 사모펀드와 손잡고 유통 주식을 사들이면서 상장 폐지된다. 당시 48세의 마이클 델이 가진 이 회사 지분 16%는 30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델은 이 지분과 현금 7억5000만 달러, 프라이빗에쿼티(PE) 회사인 실버레이크 파트너스와 은행 컨소시엄, 마이크로소프트가 지원하는 194억 달러를 동원해 바이아웃에 성공함으로써 75%의 지분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PC의 주문 제작과 직접 판매라는 혁신으로 글로벌 컴퓨터 산업의 거인이 된 델은 왜 자신이 창업한 기업을 자본시장에 내놓았다가 다시 거둬들였을까? 한마디로 어떤 감시자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기업을 이끌어가기 위해서였다. 바이아웃 성공 축하 파티장의 스크린에 나온 글귀들이 델의 속내를 드러낸다. ‘그들은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 대한 비난을 멈출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조종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누구일까? 기껏해야 90일 앞을 내다보는 월가의 감시자들이다.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긴 안목으로 현재의 델을 미래의 델로 바꾸려는 게 창업자의 생각이었다.

이제 마이클 델이 설득해야 할 투자자는 사실상 자신뿐이었다. 델의 솔루션 전략을 가속화하고 혁신과 장기 투자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됐다. 델이 비공개기업이 된다는 것은 그가 다시 PC 분야에서 자유롭게 큰 그림을 그리고 실행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주력 제품인 PC를 로스 리더(loss leader)로 싸게 팔아 시장점유율을 높이면서 수지맞는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분야 고객을 확보할 수도 있었다. 당시 시장 흐름은 태블릿과 스마트폰 쪽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었다. 주식시장은 그 흐름을 타는 데 굼뜬 델을 사정없이 깎아내렸다. 하지만 델은 PC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 분야에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시장은 자신의 전략과 기업의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하며 주가는 그만큼 저평가돼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비공개기업이 된 마당에 분기 실적 악화에 대한 가혹한 평가를 걱정하지 않고 맘껏 구조개혁을 밀어붙이더라도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그로부터 5년 후인 2018년 12월 델은 상장된 계열사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재상장됐다. 바이아웃 당시 포브스지가 추정한 마이클 델의 자산가치는 153억 달러로 세계 49위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501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해 지구촌 23위의 부호로 꼽힌다. 돌이켜보면 그는 가장 적절한 시점에 자기 회사를 되사들였다. 회의론자들은 큰 그림을 놓쳤다. 델은 값싼 자본으로 기업의 구조조정을 할 수 있었으므로 바이아웃은 그다지 위험한 거래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델은 자신이 창업한 기업을 잃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는 기업사냥꾼으로 악명 높던 칼 아이칸의 공격을 물리치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델은 아이칸을 행동주의 투자자가 아니라 기업 사냥꾼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했다. “문제를 일으키는 기회주의자”라는 표현이 사실에 훨씬 가까운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그가 보기에 아이칸이 하는 일은 기업을 인수하겠다고 협박해 자신의 지분을 비싼 값에 사들이게 만드는 것(그린 메일)이 전부였다. 어쨌든 포커 게임에서 딴 돈으로 프린스턴대의 등록금을 낸 전설적인 인물 아이칸이 델의 바이아웃에 딴지를 걸고 나선 것은 위협적이었다. 아이칸은 델과 실버레이크가 제시한 주식 매입가가 기업가치를 지나치게 낮게 평가해 불공정한 것이며 구조조정에 실패한 델을 해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