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늙음과 익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2018년 최백호는 늙은 노래 <1950 대평동>을 눈물 나도록 읊조렸다. 노래 탄생으로부터 68년 전 부산의 자갈치 밤바다를 회상했으니, 늙었다는 서정이 어울린다. 잘 익은 노래 이야기라고 해도 좋으리라. 낭만가객 백호는 부산~ 남포동, 자갈치에 불빛이 지면 늙은 노래가 별빛을 따라 피어난다고 했다. 노래 속에는 총소리도 없다. 양철지붕·천막촌·40계단을 오르내리는 피란민의 아비규환도 없다. 이 노래는 필시 1950년 6.25 전쟁 발발 이전 그 바닷가의 서정이리라.

"떠나는 것은 떠나는 대로 / 남는 것은 남는 대로 / 이유가 있지 사연이 있지 / 물결 너머 자갈치에 불빛이 지면 / 별빛 따라 피어나는 / 늙은 노래여 / 지친 파도는 / 자정 지난 바다로 잠기어 들고 / 늦은 갈매기 하나 / 소리도 없이 울며 돌아가는데 / 한때 고래 따라 떠나간 / 남자의 창가엔 / 흰 달빛만이 춤을 추누나 / 아린 가슴으로 아린 가슴으로 / 항구는 잠들지 못하네"

1950년 4월, 털빛이 흰 호랑이 한 마리가 이 세상에 나왔다. 백호(白虎),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최백호가 이 세상에 나온 날이다. 그는 이 서정들을 어찌 가슴팍에 새겼을까. 초등학교 교사였던 백호 엄마의 얼굴이 아롱진다. 그녀는 1976년 백호가 데뷔곡으로 세상에 내놓은 사모곡, ‘내(백호) 마음 갈 곳을 잃어버리게 한’<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절창의 주인공이다. 그해 하늘 별이 되신 엄니~. 그렇다. 떠나는 것은 떠나는 대로, 남는 것은 남는 대로 이유가 있다. 사연이 있다. 늦은 갈매기 하나, 소리도 없이 울며 돌아가는, 망망의 정처는 어디였을까. 1950년 자갈치 바닷가로 눅눅한 마음의 발길을 떼어보자.

노랫말이 밤이슬을 머금었다. 차갑지는 않고, 무서리가 없으니, 깊어 가는 봄날이다. 노래 속의 화자는 바닷가를 거닐다가 저물어 가는 밤, 어둠의 한 가운데 서 있다. 화자가 거니는 곳은 영도구 대평동, 그곳에서 물 건너 남포동 자갈치를 바라보면서 밤 서정에 젖는다. 이 물길이 초량(草梁)이다. 초량목으로 불리었던 곳이다. 갯가에 들풀이 촘촘하게 늘어선 좁은 물길이다. 량(梁)은 좁은 물길(바다·강)을 의미하는데, 명량(鳴梁)·노량(鷺梁)·견내량(見乃梁)이 다 같은 의미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 좁은 물길을 이용한 전술적 승리를 달성하여 23전승의 해군 전투사를 빛낸 장본인, 조선을 왜적으로부터 지켜낸 충무공이다.

그 바닷가를 거니는 화자는 필시 털빛이 흰 호랑이, 본인이었으리라. 자정이 지나 파도마저 푸른 물 아래로 잠기어버렸다. 잔잔한 바닷물 위에 흰 달빛이 간들간들 춤을 춘다. 한때 고래를 따라 떠나간 남자의 창가는 허전하다. 부산 남포동~, 자갈치의 밤 한가운데다. 자갈치는 부산 자갈치해안로 52길 일대를 말한다. 이곳에는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자갈치역과 남포역이 있다. 오늘의 자갈치시장이다.

잠들지 못하는 항구, 그곳에 두고 온 여인네의 얼굴이 아롱진다. 그 아낙은 오늘 어느 하늘 아래 모롱이에서 <1950 대평동> 노래를 아물거리고 있을까. 이곳은 1945년 광복 후 형성되었고, 당시는 남포동 시장이라고 불렸다. 자갈치시장 이름은 6.25 전쟁 후 바닷가 자갈밭에 있던 시장이기에 자갈밭과 장소를 나타내는 처(處)를 합쳐, 경상도 사투리 ‘자갈처로 불리다가 자갈치로’ 변화되었단다.

이곳은 1592년 4월 13일 임진왜란 첫날 왜군(倭軍)들이 처음으로 상륙한 근처이기도 하다. 고니시 유키나가·가토 기요마사·구로다 나가마사가 대장이었다. 저들의 육군은 조선 선조 임금이 기거하던 한양성 경복궁을 향하여 돌진, 돌진~ 파죽지세의 진격을 해간다. 하지만 왜군 해군은 발이 묶이고, 남서해안으로 나아갈 물길이 막힌다.

그해 9월 1일(양력 10월 5일), 부산항에 집결해 있던 왜군 5백여 척은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조선함대에 박살이 났다. 그래서 바닷길을 이용하여 전쟁물자 지원을 하면서, 동시에 조선을 복속(항복시키고)하고, 명나라로 진출하려고 했던 정명가도(征明假道)의 ‘수륙병진공격전략’이 파쇄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부산 시민의 날이 10월 5일이다. 그 부산이 <1950 대평동> 최백호 노래의 진원지다. 2절 노랫말을 풀어헤친다.

"지친 파도는 / 자정 지난 바다로 잠기어 들고 / 늦은 갈매기 하나 / 소리도 없이 울며 돌아가는데 / 한때 고래 따라 떠나간 / 남자의 창가엔 / 흰 달빛만이 춤을 추누나 / 아린 가슴으로 아린 가슴으로 / 항구는 잠들지 못하네 / 항구는 잠들지 못하네 / 떠나는 것은 떠나는 대로 / 남는 것은 남는 대로 이유가 있지"

부산 대평동의 행정동은 남항동이다. 대평 이름은 대풍포(大風浦)로 지형상 풍랑에 대피하기 좋은 포구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것은 해방광복 후 1947년 동(洞) 이름을 바꾸면서 ‘바람이 잔잔해지길 바라는 의미’로 풍(風)을 평(平)으로 고치고 대평동으로 이름을 지었다. 원래 이름의 유래는 ‘바람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풍발포(風發浦)에서 유래되었다니,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밝았음이다.

원래는 영도 가까이 위치한 섬, 이후 바다를 매립하면서 영도 북서부의 평지가 되었다. 매립 당시 파도가 매우 거칠고, 바람이 거세어 풍발포였던 이름을 대풍포(大風浦)로 불렀단다. 오늘날 대동맨션이 있는 자리는 바다였으며, 지상 전차 종점이던 남항로터리와 나무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단다. 1947년 대평동 1·2가가 되었고, 1949년 부산시, 1963년 부산직할시, 1995년 부산광역시에 매달린 보물이다.

그 남쪽 반대편이 태종대(太宗臺)이다. 옛날에 신선이 살던 곳이라 하여, 신선대(神仙臺)라고도 부르며, 신라 29대 태종무열왕(603~661) 사후(射侯, 활을 쏘든 과녁)였다는 설을 근거로, 태종대라고 불리는 부산 명승지 17호다.

<1950 대평동>을 부를 당시 최백호는 69세였다. 그는 1950년 독립운동가 출신 국회의원(자유당 최연소 29세, 최원봉)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이던 어머니 사이에 출생하여 화가의 꿈을 안고 성장했다. 하지만 부친이 그가 태어난 해에 세상을 떠나고(11월, 6.25 전쟁 지원 온, UN군 터키군 작전 차량과 충돌한 사고) 어머니마저 19세 때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부산 가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6년 군대를 폐 질환으로 의병전역(依病轉役)하여, 부산지역 음악 살롱을 전전하다가 하수영과의 인연으로 서울로 상경, 1977년 <내 마음은 갈 곳을 잃어>로 데뷔한다. 이 노래는 3개월 만에 6천 장이 판매돼, 가요계에 최백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병력 필(畢) 사유를 의가사(依家事) 전역으로 표현한 곳(자료)이 여기저기 있는데, 의병전역으로 표기해야 한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이 노래는 어머니가 암으로 투병하면서, 이승의 삶과 저승 문턱 경계 지대를 오고 가던 사연을 읊은 것. 따라서 스스로 노래를 부르는 최백호를 처절한 감성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하였고, 대중들은 그 도가니에 빨려들면서 최백호를 더욱 질펀하게 웅얼거린다.

이후 <그쟈>(봄날이 오면은 뭐하노 그쟈~)·<입영전야>(아쉬운 밤 흐뭇한 밤 뽀얀 담배 연기~) 등으로 인기 가도를 달리다가 김자옥(1951~2014)과 결혼·이혼의 아픔을 겪는다. 이후 지금 아내와 재혼하고, 1989년 처가(10년 연하, 손소인의 집)가 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었다.

하지만 고국 팬들의 열망을 저버릴 수가 있었으랴. 그곳에서 LA 한인방송국 라디오코리아 DJ를 하다가, 1995년 귀국하면서 <낭만에 대하여>를 불러 활화산처럼 다시 타올랐다. 이 곡의 인기 불길에 휘발유를 뿌린 것은, 김수현 작 <목욕탕집 남자들>에서 주인공 장용이 흥얼거리는 대사로 인용되면서 대박이 난다. 이때부터 최백호는 ‘낭만가객’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950 대평동>, 이 노래를 음유하면 쌍팔년도라는 말이 떠오른다. 대중들이 말하는 통속의 쌍팔(88)년은 언제일까. 단기 4288년, 1955년이다. 때는 6.25 전쟁의 총포성이 멎고, 짙은 잿빛 화염이 아직 덜 걷힌 시절이다. 그 시절을 얽은 대중가요 유행가는 <굳세어라 금순아>·<이별의 부산정거장>·<전우야 잘 자라>·<전선야곡>·<방랑시인 김삿갓>·<물방아 도는 내력> 등등 이별과 망향과 먼지 자욱한 전투복이 아른거리는 노래가 많다. <슈샤인 보이>·<에레나가 된 순이>는 어찌해야 하나. 북한 공산군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3년 1개월, 1,129일 간의 동족상잔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현재진행형 휴전 상태이다.

6.25 전쟁이 발발하기 몇 달 전, 부산 영도 대평동에서 바라다본 자갈치의 밤 노래, <1950 대평동>을 얽으면서, 그 늙은 시절을 회상해보았다. 늦은 갈매기, 소리 없이 울면서 날아가는 초량 바다는 안녕하신가~.

최백호는 2022년 마포에 스스로 마련한, 한국음악발전소·서울음악창작소 뮤지스땅스 대장으로 허스키 탁성으로 노래를 하며, 붓으로 세상을 그리는 가수 화가의 빛을 발산하며 살아간다. 1남 2녀 중 막내이던 백호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스승이자 동양철학자였던 예비역 육군중령 김정설 선생이 지어준 이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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