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전기불도 안들어 오는 경상도 상주 산골에서 태어난 촌놈이 에디슨이 만든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아시아 총괄사장이 되었으니 운이 좋은거지요"

이채욱 사장은 삼성그룹에 입사했다가 삼성과 GE가 공동사업을 하면서 GE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대단한 성실성과 열정을 지닌 경영자다. 늘 스스로를 행운아(lucky guy)라고 불렀다. 남들이 탁월성을 칭송하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운이 좋아서 일이 잘 되었다고 답변하였다. 명문대출신이 많은 삼성그룹에 입사한 것도 운이 좋았고 삼성과 GE가 손잡은 것도 운이 좋았고 잭 웰치 회장에게 신임을 받은 것도 모두 운이 좋아서였다고 말했다.

운이 좋아서였을까? 그는 2008년 이명박정부에서 인천국제공항 사장으로 임명되었다. 삼고초려 끝에 모셔온 것이다. 연봉은 전 직장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었지만 나라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을 세계 최고공항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부임하였다. 이미 경영에 관한 한 이론과 실제 모두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였다. 야심찬 비전을 세우고 밤낮으로 매진하던 그가 어느날 그만두겠다고 사의를 표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은밀히 이유를 파악해 보았다. 처음에는 일은 많고 연봉이 적어서 그런가 오해도 하였다. 실상은 여야 정치권은 물론 온갖 부처와 기관에서 청탁을 하고 압박을 하기 때문이었다. 

인천국제공항은 '작은 정부'라고 할만큼 온갖 기관이 상주하고 있다. 국가정보기관, 수사기관 , 군 관련기관등 힘있는 기관도 모두 나와있다. 이들은 모두 자기 소속기관 본부 눈치를 보며 자기들 편익을 주로 챙긴다. 이채욱 사장은 초기에 안팍의 부당한 청탁을 모두 거절하였다. GE에서 배운 윤리규정과 윤리강령대로 대응하였다.

"중요한 일을 부탁하신다니 규정에 따라 통화내용을 녹음하겠습니다" 

"......" 

"예, 가급적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내용이 합법적이면 검토해서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각종 청탁을 거절했더니 온갖 곳에서 '두고보자'는 소리가 나오고 비난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공항과 관련된 기업도 수없이 많다. 상주업체도 있고 납품업체도 있다. 이들도 힘있는 기관을 끼고 청탁을 하는데 이 역시 모두 거절하였다. 게다가 여야 국회의원이나 전현직 장관 그리고 힘있는 사람이 공항에 나오면 의전 때문에 난리가 난다. 평일이고 공휴일이고 낮이고 밤이고 공사 사장이 안보인다고 호통을 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래서야 무슨 공항혁신을 하겠는가?

실상을 파악한 청와대에서 엄명이 떨어졌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부당한 청탁이나 압력을 행사하면 엄단하겠다고 강조하였다. 당시 장차관 워크샵에서 대통령이 직접 발언하였다.

이런 소동이 가라앉자 드디어 이채욱 사장의 역량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다. 각 상주기관들이 청탁 대신 협력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각 기관과의 벽이 유연해 지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협업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거대한 조직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드디어 인천국제공항은 세계베스트공항으로 올라섰고 매년 신기록을 세워갔다. 인천국제공항은 대한민국의 얼굴이고 자긍심이다.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외국인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나는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재임시에 이채욱 사장을 강사로 여러번 초청하였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인천국제공항공사의 혁신사례와 리더십을 통해 공기업혁신을 제대로 배우도록 한 것이다. 강의를 들은 공무원들은 강의 소감에서 공직자로서 반성을 많이 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각 부처 국실장급 공무원들은 산하 기관의 장을 지원하는 대신 통제하려는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이채욱 사장은 '올해의 베스트 강사'로 뽑혀 강사대기실에 사진 액자가 걸리기도 하였다. 이 사장은 공사에서 임기를 마친후 CJ그룹 총괄 부회장을 하다가 몇년전 작고하였다. 지금 내 서재에는 이 분이 쓴 '백만불짜리 열정'이라는 책이 꼿혀있다. 열정적인 경영활동으로 나라경제를 발전시키고 특히 인천국제공항을 반석 위에 세운 이 분이야말로 애국자다.

요즘 공기업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나? 공기업혁신은 제대로 하고 있나? 무언가 제대로 해서 혁신 성과를내고 있다는 뉴스가 잘 나오질 않는다. 왜 그런지 짐작이 간다. 공기업혁신을 하려면 인사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그 분야 최고인재를 찾아서 대표로 임명하는게 혁신의 첫단추다. 새로 임명되는 공기업 사장을 보니 정치인이나 캠프출신 인사가 많다. 찾아봐도 인재가 없다고? 기업계를 보면 탁월한 인재가 수두룩하다. 이채욱 사장처럼 이분들 중에 삼고초려해서 모셔오면 된다. 인재는 찾지도 않고 자리 욕심이 많고 정치색이 강한 셀프추천 인물을 앉히면 혁신성과가 나오질 않는다. 이런 사람이 공기업이나 공조직의 대표를 맡으면 혁신대신 임기내내 자기정치만 하고 만다. 부정청탁을 거절하지도 못한다. 지난 정권 공공기관 인사가 '캠코더' 라서 실망하고 분노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정권이 바뀌어도 이 관행은 좀처럼 바뀌질 않는다. 인재의 바다는 기업계라는걸 왜 모르나.

"이채욱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합니다" 이런 감동을 다시 느낄 수는 없는걸까.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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