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사랑은 선택과 관계를 얽은 돛단배, 세월의 강 물결을 타고 영원으로 흘러가는 유랑예술이다. 이 강 물결을 타고 큰 바다를 풍유하던 노래배(歌船) 하나가 인기 역주행 기폭을 달고, 고동을 울리면서 풍성(風聲)거린다. 2023년 여름 깃발을 흩날리면서, 돛을 올리고 삿대를 젖는다. 이 노래배는 바로, 안언자가 노랫말을 얽고, 김현우가 멜로딩 하여 허윤정의 목청을 타고 세상에 나온 <관계>다. 아무런 말도 없이 만나서, 마음으로 맺어진 너와 나, 세월 간다해도 떠날 수 없는 너와 나~. 너와 나는 영원한 사이~.

아무런 말도 없이 우린 만났죠 / 만남도 헤어짐도 약속도 없이 / 바람이 불어오면 손을 잡아주고 / 찬비가 내리면 옷깃을 세워주던 / 너와 나 둘이는 사랑한 사람 / 마음과 마음으로 맺어진 관계 / 긴 세월 간다해도 떠날 수 없는 / 너는 나 나는 너 / 영원한 사이.

노랫말이 천연스럽다. 도랑물이 졸졸 흐르는 듯하다. 약속도 없이, 우연히 스치듯 만난 인연이, 필연(必然)으로 이어져가는 연줄이 노랫말에 대롱거린다. 누가 함부로 바람이 불어올 때 내 손을 잡는가, 찬 빗방울이 내 목 뒷덜미에 떨어질 때 나의 옷깃을 세워줄까. 그렇게 노래 속의 화자는 사랑을 매달아 익혀간다. 영원으로 통하는 유랑예술의 강물을 따라~.

불교에서는 모든 것이 1찰나 마다 생겼다가 멸하고, 멸했다가 생기면서 윤회한다고 친다. 찰나생멸(刹那生滅)·찰나무상(刹那無常)이라고 하는 불교 철학이다. 찰나(刹那) 또는 차나(叉拏)라고도 표기하며, 일념(一念)이라는 뜻으로 번역한다. 이 순간을 발의경 혹은 생장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반하는 시간은 3~5초 정도라고 한다. 순간의 영감은 찰나에 비하면 너무 긴 시간이다. 금반탁옥성(金盤濁玉聲), 금 쟁반 위에 흠결이 있는 오리지널 진주가 굴러가는 듯한 허스키 보이스, 이것이 가수의 진성(眞聲)이다. 허윤정의 이런 목소리에 매달린, 노래 속 주인공은 이런 필연의 사랑배를 타고 있으리라.

이런 사랑배를 타고 유랑예술의 삶을 공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날마다 꽃길은 거닌다. 이런 말을 뇌까리면서 두 손을 놓지 않는다. ‘그대와의 만남 더할 나위 없습니다/ 어울려 살아가는 따사로운 나날들/ 환하게 맞이할 해맑은 내일/ 매화나무 옛 등걸에/ 새 꽃이 피고 지는 길/ 그대와 같이 걷는 길/ 더할 나위 없습니다.’ 시인 활초가 그의 동갑내기 벗 혜인에게 지어서 건넨 《꽃길》이라는 시다. 애정이 영원 하려면 농진(濃眞)한 우정이 바탕이 되어야 함이다.

어찌 남남이던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반하여 두 손을 잡고 살아간다고 한들, 꽃길만 있으랴. 절반은 꽃길, 나머지는 가시길(가싯길)이 아니라고 그 누가 어깃장을 놓으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관념과 불행이라고 여기는 감성이 같은 줄에 놓여 있고, 이 줄 위에서 스스로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행복지수가 다르듯이, 꽃길과 가시길도 같은 노정이리라. <관계> 노랫말 후렴구도 같은 맥락(脈絡)이다.

너와 나 둘이는 사랑한 사이 / 마음과 마음으로 맺어진 관계 / 긴 세월 간다 해도 떠날 수 없는 / 너는 나 나는 너 / 영원한 사이 / 너는 나 나는 너 / 영원한 사이.

<관계> 노랫말 후렴구는 철학이다. 마음과 마음으로 맺은, 너는 나 나는 너, 영원한 사이. 눈꺼풀에 콩깍지가 끼었다. 사랑의 콩깍지 주인공은 춘추전국시대의 미인 서시(西施)가 원조다. 양귀비와 더불어 동양에서 미인의 대명사로 일컫는 여자다. 경국지색(傾國之色), 임금이 반하여 나라가 흔들려도 모를 지경의 미인이었단다.

이런 사랑의 주인공들 가슴팍은 서로를 바라볼 때, 늘 콩닥거린다. 이런 마음이다. ‘무리 지은 눈망울 속/ 스을쩍 흘기는 눈길/ 고이 받아 가두는 동그란 눈동자/ 바람결에 흩날리듯/ 머언 산 비켜 겨누는 눈총/ 눈 화살 거두어/ 씨눈 틔우는 가슴 방/ 콩콩거리는 심장 모롱이/ 방 하나 지어준/ 눈여겨 지그시 비키우는/ 콩닥거리는 두근거림.’ 활초 시인의 《꽃 중의 꽃》(콩닥거리는 두근거림) 시다. 노래 <관계>와 통한다.

허윤정의 목청을 타고 흐르는 <관계> 노래 속의 ‘나’는 누구일까. ‘너’는 누구일까. 그 속살을 풀어 헤쳐보자. <관계> 노래를 작사 작곡한 안언자·김현우는 백년해로(百年偕老)하는 원앙부부다. 노래 속의 ‘너’는 김현우가 아닐까, 그러면 ‘나’는 안언자가 아닌가. 오호라~ 서로의 인생(부부애)을 얽는 노래, 이런 노래가 세상을 환하게 할 참 노래다. 그래서 대중들의 가슴팍을 후벼 파고, 그들이 목청을 돋우어 절창하게 하는 것이다.

작곡가 김현우는 신설동에 있는 성좌엔터테인먼트 대표이다. 신인가수를 발굴하여 데뷔시키고, 세상 사람들의 기념음반을 프로듀싱하는 한국대중가요계의 베테랑이다. 여기 성좌(星座)는 별자리, 별처럼 반짝거리는 대형 가수를 품은 자리라는 의미다.

안언자·김현우 부부의 합작품은 명불허전의 히트곡 <노래하며 춤추며>, <다정한 눈빛으로>, <연정>, <기다리는 여심>, <필요합니다>, <떠난 뒤에 남은 것은>, <어떤 만남>, <밀밭 길의 추억>, <철부지 사랑>, <내 마음은 사철나무>, <버스 정류장>, <꽂을 닮은 너> 등등이다. 이 중에서 <밀밭 길 추억>은 2021년 12월 20일 가요무대에서 허인순이 열창하여 대중들의 가슴팍을 적셨던 곡조다.

<관계> 노래배를 대중들을 향하여 저어가는 허윤정은 6세 때부터 연예활동을 시작하여 9세 때 독집 음반을 낸 알짜배기로 꽉 찬 가수다. 그녀는 안양예고 3학년 때 <그 사나이>로 데뷔했다. 이후 히트곡이 <그 사나이>, <관계>, <넌 벌써 잊었니> 등이다.

요즈음 허윤정은 ‘전국 노래자랑, 가요무대, 100분 쇼, 토요일 밤에’ 등에 출연하는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2023년 새롭게 발매한 그녀의 음반에는 <관계>, <꿈이라면>, <그 사나이>, <소중한 선물>, <나비야 청산가자>, <이별 파티> 등이 수록되어 있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대중가요 작사 작곡 부부는 많다. 안언자·김현우, 양인자·김희갑, 정은이·남국인, 이경미·이현섭, 이수진·설운도 등. 부사부곡(婦辭夫曲)이다. 내자(부인)는 노랫말을 얽고, 외자(남편)는 곡을 엮는다. 이들 부부는 허윤정의 목청에 차랑거리는 <관계> 노래를 늘 암송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나는 너, 너는 나라고~. 영원한 사이라고~. 세상 모든 사랑하는 이들이 이런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우리 대중가요 100년사, 음악저작권협회 등록 곡은 116만여 곡에 이른다. 음반을 내거나 음원 저작권을 설정한 가수는 40만여 명(추론)에 이른단다. 이 많은 곡 중에서 허윤정의 <관계>가 반짝거리는 큰 별로 거듭 빛나기를 기원한다. 너는 나, 나는 너~ 영원한 우리 사이처럼. 영원한 인기를 누릴 큰 날개를 펼쳐라, <관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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