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작아도 큰 것이 있다. 마음속의 울림이다. 행위가 끝난 뒤에도 여운이 남아 있음과 같은 감흥이다. 노래로 공명(共鳴)되는 감흥의 바다는, 물바다와 하늘바다를 합친 우주바다보다 더 크고 넓고 높다. 트로트 열풍에 쿵쾅거리는 21세기 대한민국에 작은 거인, 리틀 이선희가 등장했다. 국민가수 오디션 무대 위에 피어난 꽃, 당시 7세 김유하다. 폭발적인 4단 고음에 솔로 댄스, 망치 춤, 손·발 망치리듬타기는 시청자들의 어깨를 들썩거리게 한다. 심장도 쿵쾅거리게 한다. 심쿵이다. 이 작은 거인의 목청을 넘어 온 절창이 원곡 가수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이다.

이젠 내 곁을 떠나간 / 아쉬운 그대기에 / 마음속의 그대를 / 못 잊어 그려본다 / 달빛 물든 속삭임 / 별빛 속에 그 밀어 / 안개처럼 밀려와 / 파도처럼 꺼져간다 / 아 옛날이여 / 지난 시절 /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2015년생 ‘유하탱 유튜브’를 운영하는 어린이, 초등생이라고 해야 더 감동이 남실거린다. 9세의 옛날은 언제일까. ‘어린이집에 다니던 날들, 키즈카페에 다니던 날들, 코로나19가 이 세상을 덮치기 전 마스크를 안 쓰고 다니던 날들’이 아기 가수의 옛날이란다.

그녀의 목청에 걸린 이선희의 솔로 데뷔곡 <아 옛날이여>는, 김유하보다 이 세상에 30년 먼저 나온 절창이다.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이젠 내 곁을 떠나간, 아쉬운 그대의 달빛 아래 속삭임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아니야 이제는 잊어야지.

달빛 같던 속삭임도, 별빛 닮은 노래도, 이제는 흘러가는 구름에 실어 보내야 하나. 중장년의 인생 모롱이를 돌아 황혼으로 가는 이들의 지난날은 모두 다 꿈이었나, 아니다. 모두 다 지난날의 현실이었다. 달과 별은 내 인생의 이력과 궤적과 발자국을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1985년 22세이던 이선희의 절창에 감흥으로 감전(感電)되었었고, 21세기 7세 김유하의 간들거리는 손 망치 춤에, 옛날로 되돌아가는 회억(回憶)의 마음 물레방아를 돌리는 것이다.

아니야 이제는 잊어야지 / 아름다운 사연들 / 구름 속에 묻으리 / 모두 다 꿈이라고 / 아 옛날이여 /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 아 옛날이여 /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 오~ 아 옛날이여 /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 그날이여.

이 노래는 1983년 화교 출신 가수 진필이 먼저 부른 곡인데, 당시 제목은 <그때와 지금>(박건호 작사, 송주호 작곡)이었단다. ‘지금 그대는 꽃다운/ 흔들리는 가로등/ 거리마다 남아선 낱말~/ 내가 잊으려 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이 거리에 남아서 그때처럼 속삭이네/ 아~ 옛날이여~’. 이런 노랫말이다. SNS 동영상을 여러 번 청음(聽音) 해보았지만, 가사가 명료하진 않아 아쉽다. 이선희는 이 곡에 다른 노랫말을 걸쳐서 불렀다. 송수욱의 작사 기치로 여겨진다.

이선희를 반짝거리는 별로 만든 강변가요제는 1979년에 시작하여 2001년까지 개최된 창작가요제의 꽃 같은 프로젝트였다. 21세기 불어온 트로트 열풍 각종 경연대회, 조련된 앵무새들처럼 옛 노래를 리메이크로 부르고, 다음 날 음원을 발매하여 상업적인 인기몰이를 하는 기획연출 프로그램과는 무늬의 결과 향기가 달랐다. 매년 7월과 8월 사이에 문화방송(MBC) 주체로 청평유원지·남이섬·춘천시 등에서 개최된 대학생 중심의 가요경연대회는 22년간이나 지속되었다.

1980년대까지 신인가수들의 중요한 등용문으로, 1999년부터는 학력 제한을 폐지하고, 17세 이상이면 누구든지 참가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강변축제였다가 강변가요제로 바뀌었다. 홍삼트리오의 <기도>, 사랑의하모니의 <별이여 사랑이여>, 천국의이방인의 <태양의 예언>, 4막5장의 <J에게>, 마음과마음의 <그대 먼 곳에>, 유미리의 <젊음의 노트>, 이상은의 <담다디>, 장윤정의 <내 안에 넌> 등이 이 경연에서 대상을 받은 곡들이다.

강변가요제의 역대 MC는 박원웅, 이택림·임예진, 차인태·홍광은, 이문세·길은정, 이수만·이수정, 손창민·왕수현, 손석희·노사연, 주병진·박소현, 신동호·김국진·김현주, 이휘재, 류시원·황인영 등이었다.

이선희는 가수 이승기의 사녀(師女)이다. 그녀는 1964년 보령에서 출생하여 상명여고와 인천전문대를 졸업하였으며, 제5회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로 대상을 받았다. 그해 12월 최고인기가요상·신인상·10대 가수상을 동시에 받았다. 당시 18세였던 이선희는 인천전문대 환경관리과 1학년이었고, 듀엣 파트너 22세 임성균은 기계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이선희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뮤지컬을 하였으며, 어릴 적부터 하루에 홍당무 2개를 먹었단다.

이선희의 별명은 중학교 때 체육선생이 붙여준 써니·왈희(왈가닥 선희) 등이다. 그녀는 소년 같은 헤어스타일과 바지만 입는 여자가수로 화제를 모았으며, 1985년 <아 옛날이여>, 1988년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 리메이크, 1992년 <조각배>를 통하여 국악과 가요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끌기도 했다.

인생은 장밋빛 훗날을 막연하게 기다리다가 맞이한 현실을, 과거로 흘려보내는 물레방아 같은 도돌이표인가. 그리고 흘러간 날을 우두커니 돌아보다가 영원으로 가는 유랑객인가. 인생은, ‘아~ 옛날이여’의 연속이다. 환희 속의 오늘도, 한숨 속의 이 순간도 내일이 오면 옛날이란 돛단배에 실려 간 지난 날이다. 60세의 이선희도, 9세의 김유하도 언젠가는 회억의 물레방아를 돌리는 황혼이 되려니.

오늘은 누군가가 그렇게 갈망하던 장밋빛 내일이고, 그 오늘은 내일이 되면 과거로 매듭지어지는 시간의 마디이다. 하늘이 모든 사람에게 준 선물은 시간과 죽음이다. 하루 24시간, 신은 시간을 허락하였되, 사용 권한은 각자(불특정 개인)에게 위임하였다. 천시활인(天時活人)이다. 이 시간을 분시(分時)로 나누고 얽어서 천착(穿鑿)하듯이 집중하고 몰입한 사람의 그림자는 아쉬움이 없는 옛날이 된다. 이처럼 본체가 산뜻해야 그림자도 비틀거리지 않는다.

이선희는 여성 가수로서는 최초로 언니부대(누나부대)를 몰고 온, 바람을 일으킨 가수이다. 그녀의 노래를 절창하는 김유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 팬덤들의 가슴팍을 움켜쥐게 하고, 귀 문을 덜컹거리게 하는 귀요미 가객이다. 오늘 김유하의 아장거리는 발걸음이, 훗날 뒤돌아보는 비단길로 이어지기를 앙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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