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종 이노비즈정책연구원장
김세종 이노비즈정책연구원장

이탈리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메디치 가문을 기억할 것이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문화예술가, 철학자, 과학자, 상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에 대한 후원과 교류를 통해 이른바 르네상스를 꽃피우게 만든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란 다양한 영역, 분야, 문화 등이 하나로 만나는 교차점에서 기존의 생각을 새롭게 재결합해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분출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메디치 효과라는 용어는 2004년 기업가이자 작가인 프란스 요한슨(Frans Johanson)에 의해 작명되었으며 15세기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를 널리 확산시킨 것에서 유래하였다. 메디치가는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피렌체에서 강력한 영향력이 있었던 가문이다. 메디치가는 네 명의 교황(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비오 4세, 레오 11세)과 피렌체의 통치자를 배출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로렌초 데 메디치는 르네상스 예술의 후원자로 가장 유명하다.

메디치 가문을 포함하여 문화예술가들을 후원하는 몇몇 가문들 덕분으로 당대의 유명한 조각가, 과학자, 시인, 철학자, 금융가, 화가 등이 피렌체로 몰려들었다. 피렌체에서 만나게 된 전문가들은 서로의 전공 분야와 문화를 교류하면서 점차 자신들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상호협력 관계가 형성된 문화예술가, 철학자 등은 새로운 사상에 바탕을 둔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으며, 그 결과 피렌체는 역사상 가장 혁신적이며 창조적인 도시, 즉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처럼 메디치 효과는 오늘날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의 획기적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기술변화와 산업간 융복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과 연결되면서 다양한 전공자 간 교류와 기업 간 협업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또한 최고의 전문가들을 선택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5세기 산타마리아델피오레 대성당의 돔 건설을 위해 이탈리아 장인을 대상으로 설계 공모를 거쳐 문제를 해결했던 점을 주목하게 된다.

한국경제가 추격형 성장전략에서 벗어나 선도형 경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의 혁신역량도 중요하지만, 산업 전반의 혁신역량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1/3 수준에 머물러 있는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세계 최고 대비 70%대에 머물러 있는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높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지식과 아이디어가 중요한 생산요소로 대두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외부자원(전문가)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개방형 혁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이러한 개방형 혁신 활동에 관한 지원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정부 지원보다는 민간 주도의 자발적인 혁신 활동을 견인할 유인체계가 부족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대·중소기업 간 거래관계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수직적 거래관계에서는 납품단가 등 거래조건을 중시하기 때문에 협력보다는 경쟁이 우선시 되곤 하였다. 이러한 거래 관행은 대기업과 협력을 어렵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간에도 협업문화를 형성하는데 제약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지난 20년 넘도록 동반성장 혹은 상생협력이 강조되었으나, 새로운 거래 관행을 확립하고 기업문화로 확산하는 데는 여전히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대기업과 거래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우리 대기업은 글로벌 공급망의 주체이자 산업의 리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산업 생태계를 선도하고 기업 간 혁신 활동을 촉진하는 데 있어 대기업의 리더십 부재가 아쉽게만 느껴진다.

제조업을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과 더불어 디지털 전환이 시급한 상황에서 우리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기업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다양한 업종의 혁신형 중소기업들이 외부기관 및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한국판 메디치 가문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대기업의 주도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중소기업의 개방형 혁신에서 메디치 효과가 나타나려면 대기업의 혁신생태계 리더십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노비즈정책연구원장 김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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