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인간이 만물의 영장 소리를 듣는 것은 언어를 사용하며 진화한 덕분이다. 언어는 한 인간의 지적 수준과 인격을 나타낸다. 또한 집단의 언어수준은 그 집단의 문화를 나타내는 기준이 된다.

어떤 회사에서 신입사원 면접을 하러온 20대 중반 젊은이에게 면접관인 임원이 먼저 인사말을 건냈다. 

"우리 회사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차가 많이 막히던데 오시느라 힘들진 않으셨어요?" 

"네, 정말 개 힘들었어요" 

"..."

이 지원자가 합격했는지 여부는 들은 바가 없지만 이런 에피소드를 듣는 기분은 씁쓸하기만 하다. 

한 어르신이 친구집에 전화를 했더니 어린 손자가 받는다. "나 할아버지 친구다. 할아버지 바꿔줄래?" "지금 자빠져 자고 있는데요" "좀 깨워줄래" "깨우면 할배가 개지랄할 건데요"

우스개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한동안 떠돌던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주는 진짜 교훈은 어린 손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 손자가 이런 말을 쓰게 만든 어른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어린아이가 쓰는 막말은 가지고 태어난게 아니라 주변 어른들에게 배운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여야가 싸우는걸 보면 막말 경연대회를 보는 것 같다. 누가 더 거칠고 자극적인 말을 쓸 수 있는지 시합을 하는 것 같다. 막말을 넘어 조롱하고 비꼬고 거짓 선동도 서슴치 않는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매일 이런 막말을 듣고 살려니 스트레스도 심하게 받지만 우리사회의 언어문화가 저질로 변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정치인이 막말을 할수록 언론에 더 노출이 되고 홍보가 되는 세상이 되다보니 여의도는 매일 막말 경연장이 되고 있다. 게다가 극단성향 유투버들은 조그만 사안을 부풀려 과장하고 거짓선동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막말 싸움이 일상화되면 이성을 잃기 쉽다. 실업급여를 타서 놀고먹는 사람들이 많으니 바로잡아야겠다는 취지는 이해가 되는데 실업급여가 꿀맛같은 '시럽(syrup)급여'라는 표현을 했다가 역풍을 맞은 정치인도 있다. 일은 안하고 실업급여로 빈둥거리는 사람이 일부 있겠지만 대다수 젊은이들은 직업을 갖고 싶은데 취직을 못한 것이지 처음부터 실업수당 받으려고 매달린 사람들이 아니다. 취직못해 가슴에 못이 박힌 젊은이들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한 막말이다.

막말의 정점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라파엘 사무총장과 관련하여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것이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처리수 배출계획과 시설을 2년동안 종합적으로 검토한 최종보고서를 들고 우리나라를 찾았다가 막말세례를 당한 것이다. 장관이 과학적 검증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하자 '과학이 만능이 아니다' 라고 막말을 하는 정치인도 있고 '차라리 ×(인분)을 먹겠다' 는 정치인까지 나왔으니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 그러나 그로시 사무총장 일행은 자료를 들고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듣기위해 야당 지도부를 찾았다가 막말과 비난만 받고 말았다. 심지어는 공항에 까지 떼로 몰려가 '그로시, 고우 홈' 이라고 고함을 지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게 나라를 위한 일인가? 국제기구의 수장이 전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이런 막말을 듣고 다니지는 않는다. 우리 스스로 국격을 깍아내리는 추태가 아닐 수 없다. 

국회의안 정보시스템을 보면 이번 21대 국회에 접수된 의원징계안은 총47건이다. 그중에 막말이나 망언으로 접수된 것이 모두 13건으로 다수를 점하고 있다. 상대방 의원을 향해 '돌팔이' '개소리' '빈곤포르노 학대' 등으로 매도하다가 시비가 붙은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발언을 하고도 제대로 사과하는 사람이 없고 여론이 들끓고 자기 당에서 조차 논란이 되면 겨우 '유감'이라고 말한다. 유감은 국민이 할 소리지 해당 정치인이 할 말이 아니다.

최근 평생 아나운서로 방송을 해온 분이 책을 냈다. 이 분은 kbs가 공영방송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던 시절 라디오 정오 뉴스를 담당했었다. 발음의 명료함 뿐만 아니라 고저장단과 띄어읽기가 모든 아나운서의 모범이었다. 이게 가능한 것은 끊임없이 한글공부를 해온 덕분이다. 이 아나운서가 낸 책 제목이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이다. 10년 이상 라디오 생방송 진행을 했고 평생 강의를 하며 사는 나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깨닫고 배운다. 망언과 막말의 반대개념이 뭔지는 이 책의 제목에 그대로 나와있다. '정확하고 세련되고 배려하며' 하는 말이 바르게 하는 말이라면 이 반대로 하는게 막말과 망언이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막말 대찬치가 벌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러다간 기업인과 문화예술인들이 어렵게 쌓아 올린 K-파워까지 훼손될까 걱정이다. K-막말이 전세계로 퍼져나간다면 이 무슨 망신인가?  당장 모든 여야 의원들에게 '정확 세련 배려'를 기반으로 말하라는 책부터 읽히고 싶다. 막말과 망언이 사라져야 정치도 바로 선다. 어차피 정치는 말로 하는 직업이 아니던가.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중앙공무원교육원장 
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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