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노래와 가수도 연분이 있다. 이런 노래가 장윤정을 스타반열에 올려 준 <어머나>다. 이 곡은 당시 일본에서 활동 중이던 계은숙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이어서 주현미와 협의했으나, 노래 제목을 바꿔주면 부르겠다는 조건에 합의를 이루지 못하여 취입이 성사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 노래는 계은숙·주현미와는 인연불연(因緣不緣) 장윤정과는 우연필연(偶然必然)을 거쳐 해로동혈(偕老同穴)하는 노래배(歌船)가 되었다. 소설 속에, 영화 속에 주인공은 아니지만~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의 모든 것을 일순간에 다 주겠다는 필연 인연~.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 여자의 마음은 갈대랍니다 / 안돼요 왜 이래요 묻지 말아요 / 더 이상 내게 원하시면 안돼요 / 오늘 처음 만난 당신이지만 / 내 사랑인걸요 / 헤어지면 남이 되어 모른 척하겠지만 / 좋아해요 사랑해요 / 거짓말처럼 당신을 사랑해요 / 소설 속에 영화 속에 / 멋진 주인공은 아니지만 / 괜찮아요 말해봐요 / 당신 위해서라면 다 줄게요.

노랫말이 혼란스럽다. 이러지 마시지~ 마시라는 의미다. 그리하시라고 하면 너무 밍밍한가, 싼 티가 나는가. 이 곡은 2010년 조사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1번에 선정되었으며, 그 당시 2위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였단다. <어머나>의 인기 온도계는 어찌 달궈졌을까. 노래 첫 소절이 시작되고 40여 초 만에 노래 속의 화자는 모든 것을 다 주기로 일방적으로 선언한다. 한편으로는 통속가절(通俗歌節)로도 여겨진다. 유행가 속성의 상징 같다.

주현미 측에서 <어머나>를 거절한 이유는, 주현미가 부르기에는 제목과 가사 내용이 너무 어리다는 것이었단다. 송대관, 엄정화, 김혜연, 강성연 등 가수들도 이 노래의 향기와 결을 저울질하거나 자신의 창법에 얽어 보았지만, 연이 닿지 않았단다. 이런 과정에서 <어머나>를 부를 가수를 찾는다는 얘기를 들은 장윤정 소속사 홍익선이 접촉하여 건네받았단다.

이 순간이 절창과 인기스타 가수가 연을 맺고, 해로동반의 배(예술품)가 탄생 되는 순간이 되었다. 2절 노랫말도 통속적이다. 여자의 마음을 바람(風)으로 희화했다. 바람은 갈대를 흔들지만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 어디로 불어오고 불어가는지 알 길이 막막하다. 그러니 흔들리는 갈대의 방향을 눈여겨 살필 일이다. 당신의 연인이 바람이라면, 당신은 갈대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 여자의 마음은 바람입니다 / 안돼요 왜 이래요 잡지 말아요 / 더 이상 내게 바라시면 안 돼요 / 오늘 처음 만난 당신이지만 / 내 사랑인걸요 / 헤어지면 남이 되어 모른 척하겠지만 / 좋아해요 사랑해요 / 거짓말처럼 당신을 사랑해요 / 소설 속에 영화 속에 / 멋진 주인공은 아니지만 / 괜찮아요 말해봐요 / 당신 위해서라면 다 줄게요.

한 번 준 마음은 돌이키기가 어렵다. 그러니 첫사랑을 고이 간직하시라. <어머나>의 주인공 화자도 언뜻 감성적으로 순간 반응을 한 듯하지만, 속내의 다짐은 깊었으리라. 사람이 사람에게 반하는 시간은 3~5초라고 하지 않는가.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라는 말이 있다. 한 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는 물동이로 되돌아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중국 주나라 재상 강여상(BC 1211~1072)의 일화에서 유래 된 말이다.

어느 날 강여상이 가마를 타고 행차하는데, 웬 거지 노파가 앞을 가로막았다. 그 노파는 바로 강여상이 어려웠을 때,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아내 마(馬)씨였다. 그 여인이 옛 남편 여상이 재상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천 리 길을 걸어서 찾아온 것이다. 마씨는 땅에 엎드려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이에 여상은 하인을 시켜 물 한 동이를 떠오게 한 후, 마씨 앞에 물동이를 뒤엎었다. 그런 후 마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동이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으시오. 그렇게만 한다면 당신을 용서하고 집에 데려가겠소. 마씨는 쏟아진 물을 동이에 담지 못했다. 남녀(男女) 간 연(然)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옛이야기이다.

절창 <어머나>를 조탁(彫琢)한 윤명선은 행정학을 전공한 베테랑 작사 작곡 매니아다. 그는 현재 아시아태평양음악창작자연맹 의장직을 맡고 있다. 전문가는 머리에 논리를 품지만, 매니아는 가슴에 열정을 품는다. 전문가는 최고를 지향하지만, 매내아는 최초를 지향한다. 최초를 지향하는 절실·간절함은 머리로 꿈을 꾸게 하고, 가슴팍에 열정을 품고, 이 열정을 행동으로 옮기게 한다. 이런 사람은 밤을 새우고 코피를 쏟으면서 행복의 시간 탑(塔)을 쌓는다. 이것이 3ion(Vision, Passion, Action)의 법칙이다. 성공을 지향하는 인생살이의 신념과 원칙이다.

윤명선은 1987년 <잊지 못하는 그대>로 작곡가로 데뷔했다. 장윤정의 <어머나>, 송가인의 <엄마 아리랑>, 유지나의 <쓰리랑>, 이루의 <하얀 눈물> 등을 작곡하였고,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박진영의 매니저 출신, 조용필의 <빛>과 박진영의 <졸업장>도 작사했다. 우리 대중가요계에 이런 매니아는 여럿 있다. 작곡가 이호섭은 법대 졸업생, 조영수는 식품생명공학과 출신, 이건우는 일본어 전공, 김이나는 미술사 전공자다. 세계적으로 음악저작권협회는 240여 개에 이른다는데, 이 작품자들 상당수가 음악 비전공 매니아들이란다. 1988년 결혼한 윤명선의 부인 정혜선은 1989년 제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나의 하늘>로 은상을 받은 가수다. 윤명선의 노래 인생 출발도 1987년 MBC 신인가요제 출전 가수였다.

장윤정은 1980년 충주에서 출생하여 영신여고를 거쳐 서울예대를 졸업하였다. 그녀는 8세 때인 1988년 KBS 전국노래자랑 평택 편에 출전하였지만 예선에서 탈락했다. 이때 심사위원 딩동댕 아저씨가 나훈아의 <고향역>(원곡, 차창에 어린 모습)을 작사 작곡한 임종수다. 이 연연으로 훗날 장윤정의 절창 <애가타>를 임종수가 선사한다. 장윤정은 1999년 <내 안에 너>로 강변가요제에 출전하여 대상을 받는다. 하지만 7여 년이라는 긴 세월 무명의 길을 달렸다. 이 시기 그녀는 수많은 지방 행사를 다녔으며, 차를 타고 달린 거리는 지구 다섯 바퀴나 된단다.

이러던 장윤정은 2004년 『신비한TV서프라이즈』의 재연배우로 활약하다가 인우프로덕션과 인연이 닿아서, 이 노래 <어머나>로 톱스타로 거듭났다. 장윤정은 행사의 여왕, 연예계 짠순이, 통장 미녀 등 수식어가 많다. 장윤정 외에도 전국노래자랑 출신 연예인은 많다. 박상철(삼척), 김혜연(인천서구), 개그맨 홍석천, KBS 전국노래자랑 MC 김신영, 김재욱, 이찬원, 김희재, 임영웅, 영탁, 정동원 등이 그들이다.

21세기 유행가 트로트 열풍은 몇 갈래의 신유행(新流行)을 이행하고 있다. 흘러오거나 흘러간 노래를 다시 불러 세우는 복고 리메이크, 새 가수가 옛노래를 부른 경연 다음 날 본인의 새 음원으로 출시를 한다. 그 음원이 대중들에게 리뷰되고, 그 수효를 등수로 매긴다. 음원 시장이 소유(음반 구매)의 시대에서 접속·다운로드의 시대로 바뀌었다. 이들은 이것을 인기 역주행으로 부추기지만, 사실 방송사는 시청율과 상업적인 광고를 헤아린다. 가수들은 창작 작품비를 부담하지 않거나 최소로 하여 출연·광고와 관련한 수입을 계정(計定)할 수가 있다. 음반·음악·가창 비즈니스는 이윤을 창출하는 문화예술 사업의 하나다.

21세기 유행가 열풍시대 대중들은 ‘나의 가수 혹은 내 가수’의 팬덤으로 이심전심하여 바람을 일으킨다. 경쟁적으로 인기 풍구(風甌)질을 하기도 한다. 이 시대에 맞는 유행가 창작의 퇴조(退潮) 현상이 일어난 듯도 하다. 흥의 열기는 풍성한데, 먼 훗날까지 둥둥거릴 신곡이 아쉽다. 머리로 느끼는 재미와 가슴으로 공명하는 흥미에 더해, 내로남불과 아전인수의 사회를 해학풍자(諧謔諷刺)하는 메시지와 역사를 품는 의미(意味)에 대한 작품자와 대중들의 각성(覺性)이 절실하다. 연우·하영이 엄마 장윤정의 <어머나>에 매달아보는 유행가스토리텔러 활초의 풍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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