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2006년 어느 봄날 늦은 오후였다. 스탠퍼드대 창작 세미나 강의실 뒤쪽에 앉은 남자는 다른 학생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다. 검은 블레이저에 흰 나이키를 신은 그는 자기 이름을 필이라고 했다. 몇 주가 지나자 소문이 돌았다. 소설가인 토비어스 울프 교수를 찾아와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고 했던 늙은 학생은 사실 세계 최대 스포츠웨어 기업을 가진 억만장자 필립 H. 나이트라고.

2007년 12월 초 월스트리트저널 기자가 이 ‘스탠퍼드의 미스터리’ 기사를 썼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암운이 짙던 그때 이 이야기에 주목한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초보적인 창작 수업을 듣자고 저 멀리 오리건주에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온 이 늙은 학생(그는 1938년생이다)은 한때 위대한 소설가나 위대한 저널리스트, 혹은 위대한 정치가가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어떤 ‘미친 생각’이 이끌려 신발을 팔게 됐다. 2016년 봄에 낸 회고록 ‘슈독(Shoe Dog)’은 그가 반세기 넘게 나이키와 함께 달린 여정을 담고 있다. 그는 그해 여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책을 낸 직후 나이트는 포틀랜드의 모교 클리블랜드 고등학교를 찾았다.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그는 자신의 글쓰기에 관한 생각을 밝혔다. 나이트는 누구에게도 연설문을 대신 써달라고 맡기지 않았다. “누구도 나처럼 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회고록은 초고를 여덟 차례 고쳐 썼고 3년이 걸려 완성했다. “나는 이제 일흔다섯 살입니다. 내가 죽은 후 많은 이들이 나에 관해 쓰고 싶어 할 텐데 난 손주들이 나의 눈을 통해 그것을 보면 좋겠습니다.” 훗날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그는 묘비명에 이렇게 쓰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이 일에 모든 것을 바쳤다(He gave it his all).”

대학원을 졸업하던 1962년 어느 새벽에 나이트는 자신에게 말한다. ‘다른 모든 사람이 너의 생각이 미친 것이라고 말해도 좋다. ··· 그냥 계속 가라. 멈추지 마라. 그곳에 이르기까지 멈추는 건 생각조차 하지 말고, 그곳에 어디인지도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 반세기 후 돌이켜보면 그것이 최선의 조언이었다. 나이트는 소설가처럼 그날의 새벽을 묘사한다. 그는 ‘새보다 먼저, 태양보다 먼저’ 일어나 안개 낀 새벽을 달린다. 처음에는 몸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시작하는 건 왜 늘 이토록 힘들까?’

그는 달리면서 생각한다. ‘싫든 좋든 삶은 하나의 게임이다. 누구든 그 진실을 부인하면, 경기에서 뛰기를 거부하면 옆으로 밀려날 뿐이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는 다시 자신의 ‘미친 생각(Crazy Idea)’을 떠올린다(‘C’와 ‘I’는 대문자다). 사실 세상은 미친 생각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좋아하는 책과 스포츠, 민주주의, 자유기업 같은 것은 모두 미친 생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달리기가 그랬다. 달리기는 힘들다. 고통스럽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보상은 적고 불확실하다. 어떤 즐거움이나 이득이라도 얻으려면 그것은 내면에서 나와야 한다. ‘사람들은 달리고 또 달린다. 왜 달리는지는 잘 모른다. ··· 그 대안은 멈추는 것이고 그건 죽을 만큼 두려운 것이기 때문에 달린다.’

스물네 살의 나이트가 떠올린 미친 생각은 일본의 운동화였다. 경영대학원을 마칠 무렵 기업가정신에 관한 세미나 수업에서였다. 자신이 육상선수였던 나이트는 운동화에 관해 뭔가를 알았다. 독일제가 지배하던 카메라 시장에 일제 카메라가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본 그는 일제 운동화도 그럴 것이라고 봤다. 그는 달리기에 편하고 가벼운 운동화의 엄청난 잠재력을 직감했다. 그는 세미나에서 열정적으로 발표했다. 질문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의 미친 생각이 그를 슈독(신발에 미친 사람)으로 만들었다. 1964년 초 그는 대학 시절 육상 코치였던 빌 바우어만과 500달러씩 투자해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리본스포츠를 설립했다. 나이트는 중거리 달리기 선수였다. 그의 궁극적인 꿈은 위대한 육상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좋은 선수가 되게 해주었지만 위대한 선수로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바우어만은 신발을 가볍게 만드는 것에 미친 사람이었다. 캥거루 가죽이든 대구 껍질이든 신발을 가볍게 할 수 있는 거라면 어떤 동물, 식물, 광물이라도 재료로 써보았다. 최고의 선수가 아니었던 나이트는 그에게 실험용 모르모트가 돼주었다.

나이키는 결국 절대 강자로 보였던 독일의 아디다스를 제쳤다. 8월 8일 현재 나이키의 주식시가총액(1685억 달러)은 아디다스(345억 달러)의 다섯 배 가까운 수준이다. 필 나이트와 가족들의 재산은 올해 3월 기준으로 451억 달러(약 60조 원)에 이른다. 나이키 주식 25%를 가진 그는 지난해 4억 달러의 배당을 받았다. 그의 여정은 자신의 말대로 ‘총성 없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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