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저 아시죠"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제일 곤란한 경우가 이 말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재명 대표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자신의 공직선거법 위반혐의 사건 공판정에서 한 말이다. 사람을 너무 많이 접촉하니까 상대는 나를 기억해도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행사에서 보거나 밥을 같이 먹었다고 하더라도 기억이 안나 안면인식장애라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일단 맞는 말이다. 나는 올해가 강의를 해온지 40년째다. 한달에 열번이상 수십명에서 수백명이 참석하는 장소에서 강의를 했으니 줄잡아도 최소 수십만명은 될 것이다. 방송도 라디오 일일생방송 프로그램을 10년이상 진행했고 여러 TV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청취자와 시청자들은 수백만명이 넘는다. 평생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직업이라서 '인맥부자' 소리를 듣기도 한다. 

얼굴과 이름이 알려졌으니 가끔씩 곤란한 일이 생긴다. 누군가가 다가와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기억이 안나는 경우다. 앞쪽에서 말을 걸 것처럼 웃으며 다가오는데 누군지 잘 기억이 안 나면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이때 신기한 현상이 있다. 상대방의 인사말에 따라 인식정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저 누군지 아시지요?" 
"저 누군지 모르시지요?"
신기하게도 아시지요라고 묻는 사람은 기억이 잘 나지만 모르시지요라고 묻는 사람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인간의 두뇌는 언어에 즉각 반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긍정적으로 물으면 기억이 잘 나지만 부정적으로 물으면 기억이 닫히게 된다. 많은 사람과 교류하고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가장 고마운 인사말이 있다. "반갑습니다. 저 어디에서 만났던 00입니다" 이러면 실수할 일도 없고 머리가 맑아진다.

안면인식장애(prosopagnosia)는 글자그대로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는 장애'다. 두뇌 측두엽의 방추이랑에 얼굴 정보만을 받아들여 처리하는 영역이 있는데 이 영역이 파괴되면 100퍼센트 안면인식장애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굴정보가 이 영역에서만 모두 인식되는 것은 아니가 때문에 다른 뇌영역이 손상되어도 안면인식장애에 걸릴 수 있고 심리적 쇼크에 의해 일시적으로 장애를 겪기도 한다. 안면인식장애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불편을 주는 증상이다. 특히 사람을 많이 만나고 소통하고 지지를 얻어내야하는 정치인에게는 심각한 병이다. 누군가를 알아본다는 것은 '당신은 내게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리는 일종의 사회적 신호'인데 이 기능이 떨어지면 정치활동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표는 과연 안면인식장애일까? 지금까지 시장 도지사 국회의원 당대표까지 달려온걸 보면 안면인식장애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수많은 선거조직원, 참모, 직원들과 함께하는 직업인데 사람을 잘 챙기고 관리하는게 제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도울 사람인지 누가 반대할 사람인지를 모르고는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가 없다. 오히려 이 대표는 탁월한 안면인식지능을 지녔다고 보는게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표의 증상은 무엇일까?

아마도 '안면몰수증후군' 이 아닐까? 안면몰수란 '전에 알던 친분을 전혀 없던 것으로 하고 모른 체함'이다. 유세현장에서 만난 사람이나 여러 행사장에서 만난 사람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부하직원이고 10여명이 보름씩 해외여행을 같이하고 골프를 함께했는데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면 이게 안면인식장애일까 안면몰수일까? 만약 진짜 누군지를 모를 정도의 안면인식장애라면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대표는 김문기 처장뿐만아니라 뻔히 알만한 사람들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게 한두번이 아니다. 내게 유리하면 기억나고 불리하면 기억이 나지않는다는 선택적 안면인식장애가 안면몰수다.

정치인은 대부분 카멜레온 속성을 지니고 있다. 자기과시와 자기보호를 위해 변색하고 변모한다. 오죽하면 벼락맞고 죽을 때 웃는 사람은 정치인뿐이라는 농담이 나왔겠는가. 하늘에서 번쩍하니까 사진찍는줄 알고 본능적으로 웃는다는 것이다. 과거 어떤 거물급 정치인은 유세현장을 빠져나오면서 보좌관이 급하게 차문을 닫는 바람에 큰 사고를 당했는데도 자동차 창문을 열고 태연히 손을 흔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손가락 뼈 몇개가 으스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는데 태연히 행사장을 빠져나와 군중이 보이지않는 곳까지 오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구르더라는 것이다. 당시 보좌관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역시 정치는 극한직업이다. 

지금 정치권은 내가 잘하기 보다 상대진영 잘못을 파헤치는게 본업이 되었다. 거짖뉴스와 막말이 쏟아지는 막장드라마가 일상이 되었다. 드디어 안면인식장애라는 병명까지 나왔다. 올해 하바드대학 의대 연구진은 전세계적으로 2~2.5% 인구가 안면인식장애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지각능력을 높히는 인지훈련등 조기치료를 서둘러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안면인식장애는 병이고 안면몰수는 인격파탄이다. 기업들은 안면인식기술 경쟁을 하고 있는데 정치권에서는 안면인식장애 소리가 나오니 한심할 뿐이다. 대한민국 정치도 이제 진정한 혁신이 필요한 싯점이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전중앙공무원교육원장 
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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