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100세 시대라는 말이 풍성거린다. 이런 시기에 임영웅의 목청을 타고 다시 넘어온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대중들의 가슴팍을 녹록하게 쓰다듬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래 속 화자는 60대이고, 이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은 스스로가 60대이거나, 혹은 30~40대로서 노래 주인공들의 효성스러운 자손들일 테다.

  인생은 60부터라고 누가 말했나. 남의 말을 들으면 쉽게 이해한다는,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은 60세 인생 고개를 말한다. 이 노래는 1990년대,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여성은 75세 남성은 67세 때의 부부가 서로를 위로하는 유언(遺言) 같은 곡이다. 그 시절에는 100세라는 말도 통용되지 않을 때였다. 여보~ 큰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을 기억하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 / 어렴풋이 생각나오 /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 막내아들 대학 시험 / 뜬 눈으로 지내던 밤들 / 어렴풋이 생각나오 /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 세월은 그렇게 흘러 / 여기까지 왔는데 / 인생은 그렇게 흘러 / 황혼에 기우는데 / 큰 딸아이 결혼식 날 / 흘리던 눈물방울이 / 이제는 모두 말라 /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이 노래의 원곡 작품자와 가수는 김목경이다. 그의 1집 《Old Fashioned Man》에 수록한 노래, 원곡 제목은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였다. 이 노래를 1995년 김광석이 리메이크하면서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로 제목을 붙였단다. 제목에서 ‘의’자를 뺀 버전이다. 김목경은 이 곡을 영국에 유학 갔을 때, 우연이 창문 밖으로 보인 노부부의 모습을 보고 지었다고 한다. 이후 김광석이 이 곡을 리메이크하기 위해 김목경을 찾아갔을 때, 이 곡은 자신의 부모님을 회상하게 해 준다고 하였단다.

노랫말이 필자의 옛일을 반추(反芻)하게 한다. 1982년 어느 봄날, 직업군인을 걷고 있던 활초는 논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있었다. 병영(兵營)에서 아무 말 없이 사라진 전우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그날 곁에 앉아서 서울까지 3시간여를 동행한 여인이 오늘 활초의 반려 소피아다. 운전사 뒷자리에 같이 앉아, 5분 만(믿을지, 안 믿을지 모르지만, 사실인)에 청혼(請婚), 2년여 만에 결혼하여 오늘까지 42년여의 세월을 동반하여, 이제 고희를 향해 가는 60대 중반의 부부가 되어 있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주인공이다.

2010년대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여성은 84세 남성은 77세로 상향되었고, 2023년 기준으로 평균 수명은 83세란다. 개인의 수명도 100세를 능가하는 분들이 많다. 그러니 오늘 가수 김광석이 되살아 온다면, 노래 제목을 <어느 80대 노부부 이야기>로 바꾸기를 권하고 싶다. 원곡 작품자 김목경 선생도 공감하시리라. 60대는 팔팔한 청춘이라고들 하니까.

이 노래를 2020년 내일은 미스터트롯 준결승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트로트 에이드 미션에서 1991년생 임영웅이 절창하여 팬덤들의 가슴팍을 뜨끈뜨끈하게 데워주었다. 잔잔한 멜로디에 맞춰 짙은 감성을 녹여낸 임영웅의 가창력에 관객과 MC 김성주, 참가자 황윤성·류지광 등이 눈물을 흘렸다. 장민호는, 짐 싸러 간다며 패배를 예견해 웃음을 자아냈다. 노사연은 감정을 표현하는 걸 보고 눈물이 나고 마음이 흔들렸다고 했었다. 2절 노랫말은 더욱 절절하다.

세월이 흘러가네 / 흰 머리가 늘어가네 / 모두 다 떠난다고 /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 / 세월은 그렇게 흘러 / 여기까지 왔는데 / 인생은 그렇게 흘러 / 황혼에 기우는데 /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 어찌 혼자 가려하오 / 여기 날 홀로 두고 /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부부지간의 이별, 두 손을 꼭 잡고 한쪽이 이승을 등지는 순간이다. 안녕~ 영원의 나라로~. 장송시(葬送詩)이다. 당나라 시인 원진(779~831)이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간 조강지처 위총(시장, 위하경의 딸)을 애도한 시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노랫말에 엇대인다.

‘한가하게 별다른 일 없이 앉아/ 그대로 인하여 슬프고 감탄하오/ 인생이 짧으니/ 백 년이라 한들 얼마나 길겠소~.’ 이 부부의 오래전 이별 말도,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였으리라.

김목경(1957~.)은 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1990년 1집 앨범 《Old Fashioned Man》으로 데뷔했다. 그는 1984년 영국으로 가서 현지 블루스 밴드와 클럽 연주 활동을 하다가 1집을 현지에서 녹음하여, 이듬해 귀국하여 신촌·대학로 등의 소극장에서 공연하기도 했었다. 그는 2003년 세계3대음악축제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멤피스 《빌 스트리트 뮤직 페스티벌》에 동양인 최초로 초대돼, 3일간 공연을 했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리메이크한 김광석은 1964년 대구 출생(대봉동 방천시장)으로 1996년 33세로 요절(夭折)한 불운의 가객(歌客), 타계한 이후에 대중음악계에 더 회자 되는 가수다. 살아생전 그는 포크계의 싱어송라이터, 통기타와 하모니카 연주를 융합한 공연으로 대중과 소통했다.

그는 노래하는 철학자로도 불린 음유시인이었으며, 2014년 제5회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이 추서(追敍)되었다. 2010년 11월 그가 태어난 신천 뚝방길(둑길, 防川)에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을 조성했다. 350여 미터에 그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한 벽화와 작품들이 들어서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그가 남기고 간 노래는 <너에게>, <내 꿈>, <그대 웃음소리>, <바람이 불어오는 곳>,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서른 즈음에> 등이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리메이크한 임영웅은, 트로트 열풍 바람을 타고, 포천의 아들에서 대한민국의 아들로 거듭났다. 그는 감동을 설교하듯, 말하듯이 노래한다. 1991년 출생, 2020년 미스터트롯 진(1등), 포천 송우초·갈월중·동남고를 거쳐 경복대 실용음악과에서 공부했다. <미워요>, <소나기>, <뭣이 중헌디>,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 <이젠 나만 믿어요>, <모래 알갱이> 등을 열창한다. 그의 노래는 길고 기~인 피리 관대(管帶)를 은근하게 통과해 나온 후, 비로소 그대의 가슴팍으로 후벼파고 드는, 기~인 감흥과 연결된다. 장관통성(長管筒聲)이다. 임히어로 팬카페는 <영웅시대>이다.

이제 한국유행가의 유행화(流行化)·세계화의 꿈을 펼쳐야 한다. 우리나라 대중노래는 1880년대부터 불린 창가, <새야 새야 파랑새야> 이후, 유행창가·유행속요·유행소곡·신민요·유행가·대중가요 등으로 불려오고 있다. 또한 1894년 일본의 『유유빈호우치신문』에서 우리 노래 <아리랑>을, 「조선의 유행요(流行謠)」로 소개했었단다. 장유정 교수의 지목이다.

일본에서 전통·대중노래는, 온도(音頭)·유행가·가요곡·연가(演歌, 엔카)로 불렸다. 특히 1930년대 통용하던 유행가를, 1940년대 전쟁시대상황을 고려하여 가요곡으로, 그들 스스로 통칭했음을 주목할 여지가 있다. 유행가라는 이름을 스스로 멀리했었음이다. 이런 노래가 문화의 혼류와 융복합의 세류(世流)를 거쳐, 한국유행가로 통명(通名) 되었음을 유의해야 한다.

토색(土色)·왜색(倭色)·양색(洋色)·신토색(新土色)·세색(世色) 과정과 혼융의 현재진행형 강화·진화·승화의 주인공 콘텐츠가, 한국유행가임을 각성할 때의 감흥은 얼마나 황홀한가. 이제 한국유행가 활황(活況)에 즈음하여 대중문화예술의 사대·친일·친중·친미 같은 퇴행과 몰각을 뒤로 하고, 세계의 대중가요계를 한국화하기에 열중하기를 주창한다.

노래는, 유행가이건 클래식이건 팝송이건 샹송이건 칸초네이건 대중들 개인의 취향과 정서에 따라 호불호로 지향된다. 취향은 높낮이나 층층이 아니라, 각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개인의 선호 노래는 개성의 증표이고, 이 노래를 5천 명이 통창하면 유행이 되고, 5만 명이 열창하면 문화가 된다. 임영웅의 팬카페 회원은 18만여 명이나 된다. 임영웅과 그들의 팬덤들은 이미 대한민국 유행가의 문화가 되었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간다. 영웅문화(英雄文化)의 창달에 갈채를 보낸다. 더하여 오늘날 유행가 열풍에 들썩이는 5천만 대한민국 국민과 7백5십만 동포에 갈채를 보낸다. 한국유행가의 유행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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