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필 나이트의 ‘슈 독’에는 대필의 혐의가 없다. 글로벌 기업 총수의 회고록은 으레 건조한 문체로 상투적인 교훈을 늘어놓을 것이라는 편견을 깬다. 하지만 이런 책은 아무래도 승자의 기록이다. 의식적인 미화나 과장은 없더라도 치부나 잘못을 고스란히 드러내기는 어렵다.

나이트는 나이키에 대한 오래된 비판에 짧게 항변했다. 그는 나이키의 해외 공장이 노동 착취의 현장이라는 공격에 배신감을 느꼈다. 비판자들은 공장의 노동 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 말할 뿐 “우리가 처음 그곳에 들어갔을 때보다 얼마나 개선됐는지, 우리가 개선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썼다. 해외 공장에서 나이키는 소유주가 아니라 “세입자에 불과”하다고도 했다. 신발 공장에서 갑피와 밑창을 붙이는 러버룸은 유독 가스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나이키는 독가스를 뿜어내지 않는 수성 접착제를 개발해 발암 물질의 97%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저임금은 늘 문제였다. “어떤 나라에서는 임금을 올려주려다가 고위당국자에게

불려가 계획을 철회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 그들은 신발 공장 종업원이 의사보다 많이 벌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세계화의 물결에 올라타고 급성장한 대표적인 기업의 총수는 ‘상품이 국경을 넘지 않으면 군인들이 넘을 것’이라는 격언을 인용한다. 사업을 총탄 없는 전쟁이라고 한 그는 “사실 그것은 전쟁을 막는 훌륭한 보루”라고 본다. “무역은 공존과 협력으로 가는 길”이며 “평화는 번영을 낳는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더 깊은 고민과 반론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업을 전쟁에 비유하면서도 그 전쟁의 참상과 비정함은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회고록에서 ‘미친 생각’ 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말이 ‘전쟁’이다. 그는 “전쟁은 미워해도 전사의 정신은 좋아했다. 검은 미워해도 사무라이는 사랑했다”라고 말한다. 알렉산더부터 조지 패튼까지 모든 위대한 장군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중에서도 맥아더가 역사상 가장 존경할 만한 위대한 전사라고 생각했다. 그는 뛰어난 전술가이자 동기부여의 달인이었다. 물론 결점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걸 알고 있었다. 나이트는 맥아더가 한 이 말을 특히 좋아했다. “당신은 스스로 깬 규칙들로 기억된다.”        

사업이 전쟁이라면 당연히 이겨야 한다. 승리욕이 없는 기업가는 없다. 하지만 “나는 이기고 싶다”라고 되뇌는 그에게서 남다른 집착이 느껴진다. 숙적은 아디다스였다. 나이트는 아디다스에 “병적인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수십 년 동안 세계 신발 시장을 주름잡았다. 나이트는 “날마다 그들을 올려다보고 그들이 멀리 앞서가는 모습을 봐야 하는 것”이 싫었다. 고등학교 때 그는 오리건에서 두 번째로 빠른 육상선수였다. 4년 동안 가장 빠른 선수의 등만 쳐다봤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졸업할 때 다시는 그의 등을 쳐다보지 않게 되기를 빌었다. 아디다스에 대해서도 같은 심정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그가 추앙하는 바우어만 코치에게서 처음 받은 운동화도 아디다스 제품이었다. 그는 “완전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마음으로 아디다스에 도전했다.

1977년 봄 항공우주공학자 출신의 괴짜 프랭크 루디가 찾아와 “러닝화에 공기를 주입하는 방법을 고안했다”라고 말했을 때였다. 압축 에어백을 처음 본 나이트는 신발업계에 있다고 들었던 온갖 멍청이를 직접 만났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대로 사람들은 빙하기 이후부터 신발을 신었고 지난 4만 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장인들이 오른쪽과 왼쪽 신발을 다르게 만들고 고무 회사가 밑창을 만들기 시작한 19세기 후반 이후에도 변한 건 별로 없었다. 나이트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자리에서 일어나던 루디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디다스에 가서도 에어 슈즈를 설명했으나 같은 반응을 보였다고. 바로 그 순간 나이트는 생각을 바꿨다. 직접 신고 달려본 그는 대박을 직감했다.

언더도그였던 나이키는 1983년 전 세계 판매에서 처음으로 아디다스를 추월했다. 26년 동안 리복을 이끈 폴 파이어먼은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나이키는 늘 자기들의 첫 번째 상대는 누구든 전쟁터의 적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미쳤다.” (그는 2005년 리복을 아디다스에 팔았다.) 총성 없는 전쟁에서 총수의 정치색은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 나이트는 2022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자신은 “나이키보다 더 보수적”이라고 말했다. 진보적인 생각을 지지하는 브랜드 전략을 쓰는 회사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말이었다. 2018년 콜린 캐퍼닉이라는 흑인 미식축구 선수가 나이키의 얼굴로 등장한 것은 여러모로 상징적이었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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