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1977년 1월 17일 서른여섯 살의 게리 길모어는 아침으로 달걀과 햄버거, 감자, 커피를 들었다. 마지막 식사였다. 유타주에서 두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강도살인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교수형 대신 총살형을 택했다.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후 거의 10년이 지났을 때였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길모어는 짧게 대답했다. “합시다(Let’s do it).”

10여 년 후 그 말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1988년 길모어의 고향(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광고회사를 경영하던 댄 위든은 바로 그 ‘하라(do it)’는 말에 꽂혔다. 나이키의 슬로건을 고민하던 그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누군가에게 아마도 그 자신이 질 것 같은 최후의 도전을 해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사형수의 말을 그대로 옮기기는 싫었다. 그래서 이렇게 바꾸었다. ‘그냥 해(Just do it).’

당시 나이키는 피트니스 열풍에 집중한 리복에 밀려 고전하고 있었다. 위든이 던진 슬로건에 필 나이트는 “그따위는 필요 없다”고 했다. 위든은 “이번에는 나를 믿어보라”고 설득했다. 결국 그해 시작된 ‘저스트 두 잇’은 나이키의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 캠페인으로 꼽힌다. 그 뒤 10년 동안 나이키 매출은 1000% 넘게 늘어난다. 틈새시장에 머물던 브랜드는 세계적인 아이콘이자 소울 브랜드로 거듭나게 된다.

메시지는 보편적이면서도 개인적인 맥락에서 풍부한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나이나 성, 신체적, 사회적 조건과 무관하게 누구든 그냥 해볼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1988년 첫 ‘저스트 두 잇’ 광고에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달리는 80세의 마라토너 월트 스택이 나온다. 원기 왕성한 모습으로 날마다 17마일을 달린다는 그는 여유 있게 조크까지 한다.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겨울철에 이빨이 딱딱 부딪치지 않게 하느냐고 물어요. 난 그걸 로커에 놔두거든요.”

필 나이트가 제품보다 정신을 이야기하는 광고에 그다지 적극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1977년에 나온 ‘결승선은 없다’ 슬로건은 광고업계의 젊은 CEO 존 브라운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소나무 숲길을 외롭게 달리는 육상 선수 사진과 함께 이런 문구가 나온다. ‘경쟁에서 이기기는 비교적 쉽습니다. 하지만 당신 자신을 이기려면 끝없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1970년대에는 보기 드문 대담하고 신선한 광고였다. 그러나 나이트는 여전히 광고의 힘을 믿지 않았다. 제품은 스스로 말하며 중요한 것은 품질이라고 생각했다.

런던 올림픽이 열린 2012년의 ‘당신의 위대함을 발견하라’도 목적의식이 뚜렷한 캠페인이었다. 지구촌에는 런던이라는 지명을 쓰는 도시가 적어도 29곳이 있었다. 위대한 운동선수들이 영국 런던에서 뛰고 있을 때 다른 런던의 평범한 사람들도 저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위대함을 찾을 수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우리는 위대함이 선택된 소수와 슈퍼스타만을 위한 것이라고 믿게 됐습니다. 사실 위대함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저스트 두 잇’ 캠페인을 시작한 지 30년째 되는 2018년에 나이키는 미국프로풋볼(NFL) 개막일에 맞춰 ‘미친 듯이 꿈꿔라’ 캠페인을 공개했다. ‘뭔가를 믿으세요. 그것이 모든 걸 희생한다는 걸 뜻할지라도. ··· 당신의 꿈이 미친 것인지 묻지 말고, 그것이 충분히 미친 것인지 물으세요.’ 내레이터는 콜린 캐퍼닉이었다. 그는 2년 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으로 뛰면서 미국 국가 연주 때 인종 차별과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에 항의하는 뜻으로 무릎을 꿇는 시위를 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비난하는 연설로 지지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고 캐퍼닉은 NFL에서 퇴출당했다.

보수 진영은 거세게 반발했다. 애국심이 의심스러운 배은망덕한 미국인을 나이키의 얼굴로 쓴 것에 분노했다. 소셜미디어에는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는 영상들이 올라왔다. 그러나 반대 진영에서는 그가 양심에 따라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행동한다고 보았다. 자신보다 훨씬 힘센 상대에 맞서 외로운 싸움을 벌인다는 서사에 따랐다. 거대한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은 힘으로는 이길 수 없어도 설득력 있는 스토리로 싸울 수 있다. 나이키는 그것을 믿고 기꺼이 도박한 것이다.

철저히 양극화된 정치 지형에서 캐퍼닉처럼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과 메시지를 내세우는 것은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이키는 일부 소비자들이 반발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 캠페인을 벌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밀레니얼, Z세대를 비롯해 메시지에 공감하는 충성고객을 충분히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정밀하게 목표 고객에 이를 수 있는 디지털 환경에서는 예전처럼 모든 인구집단을 향해 어정쩡한 중도를 고수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대놓고 보수 후보를 지지하는 창업자의 정치성향도 큰 변수가 아니었을 것이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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