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스물일곱 살이던 1945년 아칸소주의 소도시 뉴포트에서 잡화점 하나를 인수한 샘 월튼(1918~1992)은 여성용 팬티를 싸게 살 방도를 알아냈다. 제조업체와 소매상을 연결하는 한 중개상이 12장 한 묶음을 2달러에 팔고 있었다. 프랜차이즈 업체로부터 묶음당 2달러 50센트에 공급받던 월튼은 새 중개상과 거래를 터서 더 싸게 팔 수 있었다. 월튼네 가게가 1달러에 3장을 주다가 4장을 주자 팬티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는 단순한 교훈을 얻었다. 그가 어떤 물건을 80센트에 공급받았다고 하자. 그것을 1달러에 팔면 1달러 20센트에 팔 때보다 세 배의 물량을 팔 수 있었다. 개당 이익은 절반이어도 총이익은 50% 많았다. 너무나 단순한 이 셈법이 바로 할인 판매의 요체였다. 오늘날 지구촌에서 가장 많은 물건을 파는 월마트는 이 단순한 생각을 바탕으로 자란 기업이다.

월튼은 어릴 때부터 1달러를 손에 쥐려면 얼마나 힘들게 일해야 하는지 체득했다. 오클라호마주 킹피셔에서 태어난 그는 대공황 시절 10대를 보냈다. 메트로폴리탄 생명보험의 대리점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대출금을 갚지 못한 수백 개의 농장을 압류해야 했다. 그 비극적인 일은 어린 월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일고여덟 살 때부터 잡지 구독자를 모았고 대학에 다닐 때까지 줄곧 신문 배달을 했다. 샘의 동생 버드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길에 1센트짜리 동전 하나가 떨어져 있으면 그걸 주울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난 주울 것 같습니다. 샘도 그럴 걸 알아요.” 월튼은 월마트가 1달러를 헛되이 쓸 때마다 그 돈은 고객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며 1달러를 절약할 때마다 경쟁에서 한 걸음 더 앞서게 된다고 했다.

오랫동안 할인 판매를 연구하고 실험하던 월튼은 1962년 마침내 아칸소주 로저스에 월마트 1호점을 열었다. 이 가게는 경쟁자보다 20% 넘게 싸게 팔았다. 월튼은 인구 6000명의 소도시 고객들이 싼 가격 때문에 정말로 헛간 같은 상점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값을 내리면 훨씬 더 많은 팬티를 팔 수 있다는 뉴포트 시절의 아이디어를 할인점 형태로 실행하기까지는 17년이 걸렸다. 월마트의 성공은 어느 날 문득 엄청난 아이디어를 떠올린 40대 중반의 상인이 하룻밤 새 이뤄낸 것이 아니었다. 경영 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월마트를 몇십 년 동안 부화한 달걀에 비유했다. 월마트는 플라이휠을 한 바퀴 한 바퀴 돌리듯이 축적과 돌파의 과정을 거쳤다.

1970년까지 축적의 과정에서 월마트 점포는 38개로 늘었다. 월마트 같은 대형 할인점이 성장하던 초기에 울워스나 벤 프랭클린 같은 잡화점 체인과 저가 백화점들이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됐다. 월마트 점포는 1990년 1528개, 2000년 3151개로 증가했다. 2023년 1월 말 미국 내 월마트와 샘스클럽은 모두 5317개에 이른다. 해외 점포 숫자(5306개)도 그와 맞먹는다. 올해 1월 끝난 2023 회계연도 월마트 매출은 6112억 달러에 이른다. 국영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전 세계에 이 회사보다 많은 물건을 파는 회사는 없다. 주가는 사상 최고 수준을 오르내리고 주식시가총액은 4300억 달러를 웃돈다.

월튼은 소매업 성공의 열쇠는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샘 월튼·존 휴이, ‘샘 월튼, 메이드 인 아메리카’) 고객들은 무엇보다 싼 가격을 원했다. 그러나 그가 기존 소매업체들이 무시했던 소도시 주민들을 겨냥한 할인점으로 소매업에 혁명을 일으킨 후 60여 년 동안 월마트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빛과 그늘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비판자들은 공급업체와 노동자들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는’ 월마트를 성토했다. ‘월마트의 스마일 캐릭터가 쌩쌩 날아다니면서 가격을 깎을 때 어디선가는 공장 직원이 배를 걷어차일 것’이라는 비판이었다.(찰스 피시먼 ‘월마트 이팩트’)  

고객을 위해서든 자신을 위해서든 샘 월튼은 진심으로 1달러의 가치를 믿었다. 월튼의 자서전을 쓰려고 한동안 그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다녔던 저널리스트 존 휴이의 후일담. 어느 날 그는 사진가와 함께 공항 활주로에서 월튼을 기다리고 있었다. 월튼이 비행 계획서를 제출하러 간 사이 사진가는 한 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5센트짜리 동전을 꺼내 활주로에 떨어트려 놓았다. 월마트의 총수이자 최고의 부호(포브스는 1982년부터 1988년까지 그를 미국 최고 부자로 꼽았다)인 그는 과연 동전을 주울까? 거들떠보기나 할까? 월튼이 돌아오자 사진가는 휴이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권했다. 월튼이 말했다. “좋아. 어디에 설까? 동전 위에?”

물론 월튼은 사진을 찍고 나서 동전을 주웠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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