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안면을 몰수하고 체면 싹둑 자르기를 일상처럼 반복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텔레비전 화면이나 유튜브 영상에서 감언이설로 자기 합리화를 일삼으면서, 민초들이 내지르는 손가락질과 눈 총질을 먹고 산다. 어찌 보면 대중들로부터 매를 벌거나 욕을 구하는 것이 자기 팬덤들로부터 오히려 옹호와 지지를 더 받는다는 비뚤어진 관점의 시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런 이들에게 들려줄 대중가요 유행가가 바로 금잔디가 열창한 <시치미>라는 노래다. 바람에 등 떠밀려 가는 듯한 인생, 시들면 그만인 것을~. 자꾸 시치미를 떼면서 미운 도리질을 하고 있으니~.

시들으면 그만인 것을 / 피는 꽃도 지고 마는데 / 바람에 등 떠밀려 가는 인생아 / 한 줌도 안 되는구나 / 무심한 저 세월은 눈치도 없이 / 시치미 떼고 가는데 / 한번 왔다 갈 길인 걸 뭣 하러 왔소 / 뜨내기 손님이더냐 / 야속하다 원망을 말자 / 세상사 별거 없더라.

뜨내기 손님이더냐, 야속하다 원망을 말자. 세상사 별거 없더라. 이 소절에서 노래 속 화자의 염세(厭世)적인 마음 태세가 엿보인다. 이 대목이 여의도 갓 머리 건물을 들락거리며 세상의 손가락질을 한 몸에 받고 사는 이들을 풍자한 면면으로 칠 수 있으리라.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부산 정치파동을 풍자한 박재홍의 열창 <물방아 도는 내력>의 가사와 엇대인다.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실어~. 1960년대 초반 혼잡하던 사회상을 풍자한 <유정천리> 속의 화자도 되새겨진다.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

노래 제목으로 이름 패를 단 <시치미>는 사냥을 하던 매의 이름표(명찰, 名札)였다. 이것이 금잔디의 음반 타이틀곡이 된 것. 이 곡은 스치듯 무심코 지나치는 우리네 인생살이를, 피고 지는 꽃 세월에 비유하여 애절하게 얽은 곡조다.

흐르는 세월을 아쉬워하며 후회 없이 잘살아보자는 정통트로트인데, 21세기형 정치 풍자곡으로 회자 될 수도 있으리라. 금잔디는 대중들의 가슴팍을 후벼 파는 알토색소폰 전주로 본 노랫말을 불러낸다. 이 노래를 미스트롯2에서 공서율이 열창을 했다.

공서율은 ‘신유 오빠 저 왔어요’라는 닉네임을 들고 무대에 올라섰다. 그녀는 신유(본명 신동룡)의 팬이다. 신유가 출연하는 전국노래자랑에 고등학생 시절부터 따라다니는 찐~팬덤. <시치미>를 부르기 전 공서율은 자신의 음악 뮤즈(Muses, Muse)는 바로 신유라고도 했다. 신유는 <무효> 노래를 열창한 가수 신웅(본명 신경식)의 아들이다. 뮤즈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과 학문의 여신이다.

<시치미> 노래 속 화자는, 꽃을 피우고 지우는 세월과 마주하고 있다. 그가 마주한 세상사 속에는 얼마나 많은 선택과 관계의 씨줄과 날줄이 교차 되어있을까. 아무 일 없는 듯 휙휙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하다. 그래도 원망을 말자고 다짐한다. 시들면 그만인 세상사 별거 없단다.

그래도 왠지 개운하지 않다. 무심한 세월에 등 떠밀리어 가는 인생, 한번 왔다가 가는 한 줌도 안 되는 뜨내기손님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연연불연(戀戀不緣)인데, 왜 그리 연연하는가. 집착하면 할수록 인연은 더욱 멀어져만 가는데, 어찌하랴. 2절 노랫말도 무심한 세월을 한탄한다.

시들으면 그만인 것을 / 피는 꽃도 지고 마는데 / 바람에 등 떠밀려 가는 인생아 / 한 줌도 안 되는구나 / 무심한 저 세월은 눈치도 없이 / 시치미 떼고 가는데 / 한번 왔다 갈 길인 걸 뭣 하러 왔소 / 뜨내기 손님이더냐 / 야속하다 원망을 말자 / 세상사 별거 없더라 / 야속하다 원망을 말자 / 사는 게 별거 없더라.

<시치미>는 오래전 사냥을 하던 매의 꼬랑지에 매달아 두었던 매주인 이름표다. 오늘날 애완동물이나 반려동물 목에 걸어 둔 주인 이름표와 비슷한 것. 여기서 ‘시치미를 떼다’는 말이 생겨났고, 이 말이 무슨 일을 하고서 아닌 척한다는 의미의 말 시치미가 되었다.

그 시절 사냥매에서 시치미를 떼어내면, 누구의 매 인지 알 수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예전의 사냥은 활과 창은 물론이고, 길들인 개나 매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개사냥이나 매사냥이라는 말도 생겨난 것이다. 이 가운데 매사냥은 호사스러운 사냥이었다. 이 매는 해동청(海東靑, 사냥매)으로 불렸다.

우리 전통 민요 <남원산성>에 묘사된 매도 이 매와 독수리 등을 말한다.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니/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 보라매/ 떳다 보아라 종달새~.’여기서 수진이 날진이 해동청은 모두 매다.

수지니는 새끼 때부터 길들인 매, 날지니는 야생으로 사는 매, 보라매는 생후 1년 미만의 새를 길들인 사냥매다. 해동청은 푸른색을 띤 우리나라 고유의 매로서 아주 사나운 매다. 이 매는 연해주나 함경도 해안에 주로 서식하며 원숭이도 사냥할 정도로 용맹하단다.

우리나라에서 매사냥은 백제 시대부터 시작되었단다. 특히 고려조에는 응방(鷹坊, 매를 관리하는 국가기관)을 두어 매를 기르고 훈련을 시켰다. 이렇게 매사냥이 유행하다 보니 사냥매도 많아지고 또 매가 바뀌거나 누군가 훔쳐 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 매 관리 차원에서 주인을 표시하는 일종의 이름표를 매의 꽁지에 매달았는데, 이것이 바로 시치미이다.

이 시치미는 얇게 깎은 네모꼴의 뿔이다. 여기에다 매의 이름, 종류, 나이, 빛깔, 주인 이름 등을 기록한 뒤 꽁지 위 털 속에 매달았단다. 이 시치미만 보면 주인을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매를 잡으러 다니는 사냥꾼이나 매를 데리고 사냥을 다니던 사람이 어쩌다가 이러한 매를 잡으면 시치미를 보고 놓아주었다. 하지만 이 시치미를 떼어버리고 마치 자기 매인 것처럼 하거나 자기 이름이 적힌 시치미를 얼른 달아 놓고, 자신의 매인 것처럼 행세하기도 했단다. 여기서 생긴 말이 ‘시치미를 떼다’이다.

<시치미>를 부른 원곡 가수 금잔디는 1979년 홍천 출생 본명 박수연이다. 예명은 박노희·박수빈이고, 공주에 있는 한국영상대 실용음악과를 졸업했다. <우지마라> 가수 김양(본명 김대진)과 동문 선후배이다. KBS 강원 어린이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한 그녀의 노래는 <영종도 갈매기>, <일편단심>, <바람의 유혹>, <초롱새>, <불어라 미풍아>(OST), <세월아>, <사랑탑>, <시치미> 등이다. 이 노래를 2020년 미스트롯2에서 열창한 공서율은 한국예술원 16학번 본명 이유진이다.

오늘날 민초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이 사람들의 가장 반대편에 있는 이들이 누구일까. 아마도 시치미를 가장 잘 떼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뻔뻔스러운 안면을 몰수하고, 체면을 싹둑 자르고 불덩어리를 들고 있는 이들 앞에서 비실거릴 이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투표(投票)의 표(票) 자가 ‘불똥 튈 표, 흔들리는 모양 표’라는 의미를 모르고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이제부터 시치미를 떼 놓고서, 또다시 입으로 국리민복(國利民福)과 부강평상(富强平常)을 뇌까리는 이들을 눈여겨 살피자. 금잔디의 <시치미> 노래에 매다는 필객(筆客)의 여망이다.

유행가는 민초들 영혼의 양식이다. 강퍅한 일상의 삶을 위무하고, 한숨 나오게 하는 현실 속의 상대방들을 풍자·해학 하는 노래 소절에서 심리적인 보상도 받는다. 그래서 유행가가 유행하는 사조와 경향의 바람결을 펄럭거리게 하여야 한다.

대중가요는 서정가요(抒情歌謠)와 서사가요(抒史歌謠)로 대별 할 수 있는데, 필자가 스토리텔링 하는 대상 노래들은 후자이다. 노래 탄생 시대이거나 노랫말로 차운 된 단어·지명·사람·역사 속의 사건이나 상황 등을 풀어서 해설을 곁들이는 감흥의 대상을 말한다. 이것은 대중가요평론이 아니라 유행가스토리텔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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