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레스터 서로 MIT 교수(1938~2016)는 20세기 마지막 해에 나온 책(The Knowledge Advantage)에서 이렇게 썼다. ‘월마트는 현재 미국의 가장 큰 소매업체다. 나는 20년 후 이 회사가 미국 최대 소매업체가 아닐 것이라는 데 기꺼이 내기를 걸겠다.’ 당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월마트는 전자상거래 물결에 올라타려고 온라인 가게를 열었으나 모든 상품 가격을 오프라인 가게보다 조금씩 높게 책정했다. 같은 물건을 온라인으로 20~30% 싸게 살 수 있게 하면 모두가 오프라인 가게에서는 구경만 하고 정작 구매는 인터넷으로 할 테고 그것은 곧 제 살 깎기가 되리라고 염려했기 때문이다. 혁신적 기술에 맞닥뜨린 유통 공룡 월마트는 스스로 고통스럽게 탈바꿈하기보다 경쟁자들에 의해 서서히 도태되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였다. 인터넷이 초래한 신경제를 예찬하던 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보았다. 아마존과 월마트의 결투는 보나 마나라고 생각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월마트는 여전히 미국 최대 소매업체로 굳건히 버티고 있다. 오프라인 최강의 월마트와 온라인 최강자 아마존을 비교하면 지표에 따라 우열이 엇갈린다. 지난해 월마트(1월 결산)의 총매출은 6112억 달러로 아마존(12월 결산)의 5139억 달러보다 많았다. 영업이익도 2042억 달러로 아마존(1224억 달러)보다 훨씬 많았다. 9월 11일 현재 주식시가총액으로 따지면 아마존(1조4760억 달러)이 월마트(4423억 달러)의 세 배 가까이 된다. 미래 성장성을 그만큼 높이 평가받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마존의 사업은 훨씬 다각화돼 있다. 상품 판매보다 웹서비스(AWS)를 비롯한 서비스 매출이 더 많다. 미국 그로서리(식료품·잡화) 시장만 보면 아직 월마트가 압도적이다.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월마트는 이 시장의 17%를 가져가는 데 비해 아마존의 점유율은 2%에도 못 미친다.

20세기 말 10여 년 동안 최고경영자로서 월마트 성장을 이끈 데이비드 글래스는 “온라인 판매는 창고형 매장 하나의 매출도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마존의 폭발적인 성장을 지켜본 월마트는 결국 온라인 경쟁에 뛰어들어 열심히 쫓아가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30억 달러를 들여 전자상거래업체 제트닷컴을 인수했다. 하지만 8000억 달러를 웃도는 미국 그로서리 시장에서 온라인 판매는 여전히 1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존이 2017년 137억 달러에 홀푸드마켓을 사들인 것은 온라인만으로는 그로서리 시장을 장악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월마트의 미국 내 매장은 샘스클럽을 포함해 5300개가 넘는다. 그러나 홀푸드와 아마존 프레시, 아마존 고 매장을 합쳐도 약 600개에 그친다. 미국인 열 명 중 아홉은 월마트 매장에서 16㎞ 이내에 산다. 그러나 아마존 프레시에 접근할 수 있는 미국인은 3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존이 해마다 50개씩 매장을 늘려가더라도 월마트의 접근성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아마존이 오프라인 가게에서 파는 식료품은 아직 200억 달러가 안 된다. 쇼핑은 사회성과 오락성을 지닌다. 사람들은 자동차보험은 온라인으로 해결하더라도 명절 장보기는 북적대는 매장에서 하려 한다. 특히 식료품은 가능하면 직접 눈으로 보고 촉감과 냄새도 느껴보면서 사고 싶어 한다. 여간 바쁘지 않으면 신선한 육류나 채소를 직접 고르고 싶을 것이다.

최후의 승리를 거머쥐려는 월마트와 아마존의 경쟁은 종종 극단으로 치닫는다. 두 거인이 벌인 기저귀 전쟁이 단적인 예다. 2005년 퀴드시라는 회사가 다이퍼스닷컴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기저귀와 아기용품을 팔기 시작했다. 월마트와 아마존은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그러나 엄마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고 벤처캐피털이 거액을 투자하자 두 거인이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 시장에 눈독을 들이던 아마존은 파격적인 할인으로 퀴드시를 압박했다. 석 달 동안 기저귀 한 품목에서만 1억 달러의 손실을 볼 것으로 추산될 만큼 파격적이었다. 아마존은 5억4000만 달러, 월마트는 6억 달러를 제시하며 퀴드시 인수전을 벌였다. 제프 베이조스는 인수팀에 절대로 퀴드시를 월마트에 빼앗기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아마존은 퀴드시가 월마트로 가면 기저귀를 공짜로 팔아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그들은 승자가 되기 위해 전투지를 완전히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의지를 갖고 있었다.(브래드 스톤,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월마트가 아마존을 일방적으로 추종하리라는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두 거인은 싸우면서 서로에게서 배우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 센서 기술 혁신으로 온라인이 오프라인 매장의 비교우위를 상쇄할 수 있게 되면 판도는 또 달라질 것이다. 야구의 전설 요기 베라가 말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유통혁명에서는 특히 그렇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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