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종 이노비즈정책연구원장
김세종 이노비즈정책연구원장

최근 국가 안보에 대한 개념이 경제 안보, 나아가 기술・과학 안보까지 확장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벌리는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우리도 경제 안보를 넘어 기술 안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기술 패권 경쟁이란 강대국 간 군사적인 충돌 대신에 절대적인 기술적 우위를 위해 다양한 경제적, 비경제적 수단을 동원하는 경쟁(냉전)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반도체,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5G)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부상을 강하게 경계하고 있다. 이러한 첨단기술 분야는 미래의 경제・군사 패권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국가간 첨단산업에서 기술경쟁이 치열해지고 기술분쟁이 격화되면서 미국, 일본, EU, 중국 등은 자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핵심기술 분야를 지정하여 국가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러한 핵심산업과 기술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으로 국내 투자 강화 및 공급망 자립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공급망 자립에 관한 전략적 의도는 미국의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에서 찾을 수 있다. 반도체지원법은 2022년 8월에 발표한 것으로 반도체 산업에 대한 시설투자 인센티브 390억달러를 포함한 재정지원 527억달러, 투자세액공제 25% 등을 규정하고 있다.

2023년 3월 21일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지원법에 대한 가드레일(Guardrail) 즉 안전조치 조항을 발표하였다. 미국 정부의 투자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5% 이상 증설하거나 10만달러 이상 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만 일정 사양 이하인 반도체, 예를 들어 28나노미터(㎚) 이상 시스템 반도체, 128단 미만 낸드플래시, 18나노 초과 공정의 디램(DRAM)은 10년간 10% 미만까지 증설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만약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설비확장 제한 의무를 위반할 경우, 보조금 전액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미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으면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의 우려 대상기관과 국가안보상 민감한 기술・품목과 관련된 공동 연구 및 기술 라이센싱도 제한되어 중국 업체와의 공동 연구개발은 사실상 막히게 되었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에서의 기업경영에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되었다. 다만 반도체 생산량의 85% 이상이 중국 내수 시장에서 소비되는 기업은 10% 이상의 설비 투자가 가능하다는 예외 조항이 있지만,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상무부에 안전조치 규정 준수 여부를 지속적으로 보고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그래도 반도체 업계는 이번 안전조치로 인해 중국 공장 생산설비의 유지 및 부분적 확장은 물론 기술 업그레이드도 계속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삼성과 SK의 경우, 첨단 5% 설비확장 제한 조항만 준수한다면 일단 10년간은 중국 공장을 운영할 수 있게 되어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조치에 유럽연합(EU)도 합류하였다. 2023년 4월 18일 유럽연합(EU)은 430억유로(약 62조원)을 투입해 역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 생산을 늘리기 위한 ‘유럽 반도체법’시행에 최종 합의했다고 발표하였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 법을 통해 세계 시장 점유율을 2030년까지 현재의 두 배인 20%로 끌어올리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 다만 현재 유럽연합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9% 수준인데 2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현재 생산량을 네 배로 늘려야 한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한국도 국가 전략기술에 대한 세액공제율 상향 등의 내용을 포함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이른바 K-칩스법으로 불리는 법안을 지난 4월 11일 공포하였다. 이차전지・백신・디스플레이・수소 및 전기차・자율주행차 등에 대한 투자세액공제 비율을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세액공제율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경우 현행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각각 확대된다. 직전 3년간 연평균 투자 금액보다 많은 투자를 할 경우, 증가분에 대해서는 올해에만 10%의 추가 공제(임시투자세액공제) 혜택을 주게 된다.

국가 전략산업에 대한 기술안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부도 늦게나마 전략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범정부적 육성에 나선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올바른 방향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 경제전쟁의 핵심은 산업 전반의 기술력에 좌우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K-칩스법 이후의 전략산업 육성에 대한 후속 조치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산업생태계 전반의 혁신역량을 높여야 한다는 점에서 첨단기술 확보를 위한 기술혁신, 연구개발, 전문인력 양성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노비즈정책연구원장 김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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