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내가 가끔 월튼 집안의 미래 세대에 관해 걱정한다는 건 사실이다. 그들이 모두 아침에 일어나 신문 배달을 하리라고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고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나는 내 후손 중 누구도 내가 ‘게으른 부자’라고 부르는 부류에 들어가는 꼴을 보기는 싫다. 그런 부류가 쓸모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샘 월튼이 1992년 출간된 회고록(메이드 인 아메리카)에 남긴 말이다. 그는 아들 셋(롭, 존, 짐)과 딸 하나(앨리스)를 두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 모두 신문 배달을 시켰다. 그것이 좋은 교육이 되리라고 믿었다. 월튼은 아주 어릴 때부터 아이들도 부모에게 받기만 하기보다 집안 살림을 꾸리는 데 보탬이 돼야 한다고 배웠다. 그의 아이들은 늘 가게에 나가 일을 했다. 큰아들 롭은 운전면허를 따자마자 트럭에 물건을 가득 싣고 밤새 운전해야 했다. 월튼은 가족 캠핑을 갔을 때도 케이마트 매장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꼭 차를 세우고 둘러봐야 직성이 풀렸다.

월튼은 훗날 장인이 되는 L. S. 롭슨이라는 사업가를 존경했다. 롭슨은 자신의 목장과 가족 사업을 아들딸들이 모두 동업자가 되는 파트너십 형태로 조직했다. 1953년 그는 월튼에게도 그렇게 해보라고 조언했다. 1945년 잡화점 하나로 시작한 월튼은 가진 게 많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한데 모아 아이들과 파트너십 체제를 만들었다. 그 파트너십이 바로 훗날 월마트를 지배하는 월튼엔터프라이즈가 된다. 월튼엔터프라이즈의 이사회는 가족들로 구성되며 의사 결정은 합의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가끔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분배금은 모두 똑같이 가져간다. 월튼은 번 돈을 각자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지 않고 엔터프라이즈에 차곡차곡 쌓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런 파트너십은 몇 가지 바람직한 효과를 냈다. 우선, 가족이 공동으로 월마트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지분을 저마다 되는대로 조각조각 팔아버리지 못하게 막는 구조였다. 월마트 같은 거대기업이 지금처럼 높은 지분을 유지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월마트 간판을 내건 지 61년이 지난 2023년 4월 현재 지주회사인 월튼엔터프라이즈는 월마트 발행주식 27억 주 가운데 37.1%(10억 주)를 보유하고 있다. 월튼 패밀리 홀딩스 트러스트도 9.1%의 지분을 보유한다. 롭(0.12%)과 짐(0.38%), 앨리스 월튼(0.25%)은 각자 개인적으로 약간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월튼엔터프라이즈와 패밀리 트러스트의 의결권을 공유하는 공동관리자다. 간접적인 지분을 더하면 이들의 의결권은 46%를 넘는다. 뱅가드그룹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이 전체 주식의 30% 넘게 가지고 있고 일반 개인투자자의 비중은 20%도 안 된다.

월튼은 이와 같은 소유와 지배구조가 기업 사냥꾼을 물리치는 가장 좋은 방책이라고 했다. 그는 “단합된 힘과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믿는 어떤 가족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너무나 이른 시기에 소유지분을 넘겼으므로 거액의 상속세와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원리는 간단하다”라며 “유산에 물리는 세금을 줄이는 최선의 길은 평가액이 오르기 전에 자산을 나눠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돌이켜보면 파트너십은 훌륭한 전략이었으며 롭슨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확실히 자신이 그런 방안을 생각해 내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일찍이 이런 구조를 설계했기 때문에 지나치게 호화롭지 않게 살면서 가족의 결속과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세계 최대 가족 기업인 월마트에서 오너 일가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큰아들 롭 월튼(79)은 1969년 회사에 합류했다. 로스쿨 졸업 후 월마트의 대표변호사로 주식 상장 일을 맡기도 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1992년부터 23년 간 회장으로 있다가 2015년에 물러났다. 그 자리는 사위 그레그 페너(54)가 물려받았다. 롭은 지금도 이사회에 들어가 있다. 일찍이 독립했던 둘째 아들 존 월튼은 2015년 세상을 떠났다. 막내아들 짐 월튼은 2016년 이사회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에 아들 스튜어트(42)가 들어왔다. 앨런 앤 오베리 변호사를 거쳐 월마트에서 기업 인수·합병 업무를 하다가 사모 투자회사를 창업하기도 한 그는 확실히 창업세대와는 다른 피라고 할 수 있다.

오너 일가가 확고한 지배력을 가지고 이사회를 이끌고 있지만 일상적인 경영은 전문경영자 몫이다. 샘 월튼은 1988년 CEO 자리를 데이비드 글래스에 넘겨줬다. 2000년에는 리 스콧, 2009년에는 마이클 듀크, 2014년에는 더글러스 맥밀런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가족 기업은 일반적으로 혁신보다 안정을 중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긴 안목으로 전략적 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경영권 승계에 따르는 위험도 크다. 사상 최고 몸값을 기록하고 있는 월마트는 지금까지 그런 위험들을 잘 피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족 기업은 창업 후 3대를 넘기기가 힘들다는 이른바 ‘3대 가설’이 남의 이야기가 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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