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추석(秋夕)이 눈앞이다. 낱말로는 가을 저녁. 가을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 달이 유난히 밝은 날(절기)이란 의미로 풍류 하면 좋으리라. 추석을 중추절(仲秋節·中秋節)이라고 하는 것은 가을을 초추, 중추, 종추로 나누었을 때, 8월(음력) 중간에 해당하므로 붙인 이름이다. 중국에서는 팔월절 혹은 팔월회라고 부르기도 했고,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라는 뜻으로 단원절(團圓節)이라고도 했다.

이러한 추석이 다가오면 사람들의 마음은 몸보다 앞서 고향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마음을 따라서 고향으로 달려가지 못하고, 타향에서 먼 곳 고향 하늘을 바로보기만 했던 사람들이 많다. 특히 산업화로 질주하던 1970년대 이농향도(離農向都) 시대는 유난했다. 이런 이들의 향수병(鄕愁病)을 위무한 유행가가 1971년 박정웅 작사 작곡으로 나훈아가 절창한 <머나먼 고향>이다.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 / 천리타향 낯선 거리 헤매는 발길 /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갑니다 / 천리타향 낯선 거리 헤매는 발길/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갑니다.

우리나라에서 추석은 삼국사기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추석의 역사는 오래고, 그만큼 우리 민족의 영혼에 아롱져 있다. 노랫말에 한숨이 묻어나고, 사랑하는 부모 형제들 얼굴이 겹친다. 한 잔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몸이 마음의 날개를 따라 날아갈 수가 없다.

이 절창은 노래를 만든 박정웅의 실제 경험담이다. 1968년 추석 하루 전 날밤, 서울에서 남녘 하늘, 머나먼 고향 밀양 하늘을 바라보며 부른 망향가다. 그 해 추석날은 10월 6일, 일요일이었다. 앞뒤로 5일과 7일은 토요일과 월요일로 3일 연휴, 하지만 그 시절의 공휴일은 달력 속에는 있었어도 현실 속에는 없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랬다. 박정웅은 그해 10월 5일 저녁, 타관 땅 서울에서 남녘 고향 하늘을 바라보면서 즉흥적으로 노래를 흥얼거린다.

박정웅은 그날 저녁 여기저기 흠집이 잡히고 긁힌 자국이 선명한 어쿠스틱 통기타에 선율을 얹었다. 어두침침한 골방, 의도하지 않았던 작가 개인의 넋두리 상황이었지만, 이는 결국 1970년대 산업화와 근대화의 물결 속에 고향을 떠나 낯선 타관에서 외로이 명절을 맞이하고 보내야 했던 수 많은 이방인들의 현실이었다.

이런 상황이 노래로 불리면서, 그 시절 객지살이 나그네들의 공감 카테고리로 범주화되었다. 그들의 황량한 가슴속에 담고 있던 향수의 불화로에 기름을 뿌리고 불길을 활활 타오르게 했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고향을 모티브로 지은 노래는 1934년 고복수의 <타향>(타향살이)이 초창기의 애곡이다. 제목은 타향이지만, 식민지 시절 망향과 고향을 은유한 노래, 27살의 나이로 요절한 작사자 금릉인의 타향살이 10년을 얽은 절창이다.

뒤이은 망향가는 1948년 송민도가 송민숙으로 발표한 데뷔곡 <고향초>다. 이 곡은 1950년대 장세정이, 1960년대 백설희가, 1970년대 홍민이 리메이크하여 인기를 얻었다. 뒤이은 망향곡의 1954년 한정무가 절창한 <꿈에 본 내 고향>이다. 이 노래는 6.25전쟁 중 자유대한으로 온, 함경북도 나진 출생 한정무 본인의 망향 신세타령 같은 곡조라서 대중들의 인기가 높았다.

뿐만아니라 1945년 해방광복 후 38선을 넘어서 남쪽으로 온 월남민(越南民)들과 1951년 1월 4일, 1.4후퇴 당시 38선을 넘어서 남쪽으로 이들의 망향가로 울려 퍼졌다. 기다리는 사람도 갈 곳도 없는 사람들이,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따라온 사람들을 그들끼리는 ‘38따라지’라고 부른다. 서로를 위무하는 공감어(共感語)이다.

뒤이은 곡은 명국환의 <내 고향으로 마차는 간다>, 나훈아의 <고향역>(원곡 제목:차창에 어린 모습), 김상진의 <고향이 좋아>·<고향 아줌마>, 박인희의 <고향바다>, 윤수일의 <제2의 고향>, 박미선의 <갈 수 없는 고향>으로 이어지다가 2020년 나훈아가 <고향으로 가는 배>로 트로트 열풍 시대에 망향의 배를 띄운다. 고향은 늘 노랫말처럼 절절하다.

고향으로 가는 배 꿈을 실은 작은 배 / 정을 잃은 사람아 고향으로 갑시다 / 산과 산이 마주서 소곤대는 남촌에 / 아침 햇살 다정히 풀잎마다 반기는 / 고향으로 가는 배 / 꿈을 실은 작은 배 / 정을 잃은 사람아 고향으로 갑시다.

중국의 옛 서적 신라조에는, 8월 15일이면 왕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쏘게 하여, 잘 쏜 자에게는 상으로 말이나 포목을 준다고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서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왕이 육부(六部)를 정한 후, 이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편을 짜고, 7월 16일부터 날마다 육부의 마당에 모여 길쌈을 했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게 하고, 8월 보름에 이르러 그 공(功)의 다소를 살펴서, 지는 편은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모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하였으니 이를 가배라 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추석은 신라시대부터 유래되었음을 시사하는 단초이다.

중국 고서 한비자에 해대어(海大漁)라는 말이 있다. 바다에 사는 큰 물고기, 이 고기는 그물로도 잡을 수가 없고 작살(斫煞)과 낚시로도 엄두를 낼 수가 없다. 하지만 물을 떠난 뭍에서는 금방 숨이 끊어지고, 땅 거죽을 기어 다니는 개미 밥이 되고 마는 고기다.

이 물고기는 바다가 고향이다. 사람들은 고향이 마음속의 바다다. 엄마의 바다 같은 바다다. 타관 객지를 떠돌며 살아가는 사람은 물고기가 모래사장에 튕겨 올라온 것 같은 상황에 자주 처한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시절의 유랑객들과 6.25 전쟁의 상흔인 고향이 이북인 실향민과 이산가족들, 독일로 파견되었던 탄광 광부들과 간호사들의 삶이 그런 시절을 관통한 것이었고, <머나먼 고향> 같은 노래가 그런 시절을 위문한 유행가다.

근수지화(近水止火)다. 가까운 곳에 있는 물로 불을 끌 수가 있다. 고향마을 뒷산에 불이 났는데, 멀리 있는 바닷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때의 바닷물은 물이라도 소용 있는 물이 아니다. 그렇다. 객지살이 떠돌이에게는 멀리 있는 고향은 고향이 아니라 슬픔이다. 그래서 고향을 찾는다.

고향에 가면 익음과 늙음이 있고, 고향의 익음과 늙음은 질서의 상징이었다. 고향 마을 어귀에는 늘 연세 드신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서 있다. 이들은 장유유서의 상징인 동시에, 한양으로 향하는 과거(科擧) 길 선비들의 이정표였다. 고향 어르신들의 투박한 말투에 매달리는 세평(世評)이 그립다.

요즈음 고향은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없다. 하지만 100세 시대 어르신들의 꼿꼿함은 넘친다. 그래서 고향에는 질서가 있고, 지혜와 슬기가 살아 있다. 그분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손마디가 휘었어도 세상을 살피고 바라보는 영혼은 고결하다.

그분들의 지내 온, 살아낸 인생이 우리 고향(나라)의 밑거름이다. 민족의 대이동, 평상시의 고속도로가 저속도로 주차장이 되어버리는 명절, 그래도 설렘을 안고 거북이처럼 남으로 남으로 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머나먼 남쪽 하늘 산마루 아래는 영혼의 샘이 있다. 칡넝쿨 우거져서 보랏빛 꽃을 피우는 갈천(葛泉)이 있다.

<머나먼 고향> 노래를 발표할 당시 박정웅은 28세, 나훈아는 24세였다. 나훈아, 본명 최홍기도 우리 대중가요사의 살아 있는 전설이지만 작사 작곡가 박정웅과 얽힌 노래의 사연이 더욱 진한 서정을 불러준다. 고향 밀양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박정웅은 1968년 25세의 나이로 성공을 향한 막연한 꿈을 안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을 한다. 이렇게 상경한 그가 타관 땅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명절이 그 해 추석이었다.

그날 밤, 서울 친구의 골방에서 민족 대 명절 전야를 홀로 보내며 멀리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즉흥적인 서정을 기타 줄에 걸치며 흥얼거린다.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이 노래는 최초 가수 유지성에 의하여 취입되었으나, 별 반응을 얻지 못하였고, 1971년 나훈아가 리메이크로 취입하여 대박을 친다. 한편 이 곡은 나훈아가 취입하기 전 조영남이 눈독을 들였다는 설도 있으나, 나훈아가 깨끗하게 불러라, 울지 말고 불러라 등을 요구한 박정웅과 약속을 하면서 나훈아와 인연의 끈이 닿았단다.

유인지향(有人之鄕), 심근고저장생구시지도(深根固柢長生久視之道)다. 사람은 고향이 있고, 그 고향에 마음의 뿌리를 박되, 튼튼하게 하는 것이 사는 것을 길게 하고, 오래 사는 인생길이 된다.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고향처럼 유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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