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만석꾼 조의관은 죽기 전에 손자 덕기를 불러 금고 열쇠를 맡긴다. “이 열쇠 하나를 네게 맡기려고 그렇게 급히 부른 것이다. 이것만 맡겨놓으면 인제는 나도 마음 놓고 눈을 감겠다.” 조부는 그 금고를 지키느라 일생을 소모했다. 나중에 본 유언의 내용은 이랬다. ‘산(産)을 남겨줌이 도리어 화를 끼치는 수도 없지 않기로, 내 생전에 이처럼 분배하여 놓은 것이다. ··· 덕기 자신에게 줌이 아니라 조 씨 일문에 대대로 물려 내려갈 생활의 자료를 위탁함이니 모름지기 일 푼 일 리라도 임의로 하지 못할지니라.’ 염상섭의 소설 ‘삼대(三代)’ 이야기다. 배경은 일제 강점기다. 조덕기가 조부에게서 물려받은 자본이 훗날 어떤 동학을 거칠지 상상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부자는 3대를 못 간다(富不過三代)는 것은 동서고금에 회자된 속설이었다. 가족 기업의 역사에는 으레 ‘3대 가설’이 나온다. 숱한 반례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가설이다. 그 자신 자수성가한 기업가인 앤드루 카네기는 ‘셔츠 바람으로 시작해서 삼대 안에 도로 셔츠 바람으로 돌아가는’ 부의 사이클을 이야기했다. 영어의 ‘나막신에서 나막신으로’도 같은 표현이다. 이탈리아인들은 ‘마구간에서 별로 갔다 다시 마구간으로’ 돌아온다는 비유를 썼다. 브라질 사람들도 ‘부유한 아버지, 고상한 아들, 가난한 손자’를 숱하게 봤다.

구글링으로 가족 기업에 관한 자료를 찾다 보면 3대 가설을 뒷받침하는 듯한 통계도 많이 만난다. 특히 30-13-3이라는 숫자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족 기업 중 창업자의 아들 세대까지 살아남는 기업은 30%, 손자 세대까지 생존하는 기업은 13%에 불과하고 그 이상 버티는 기업은 3%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숫자는 여러 손과 입을 거치면서 심하게 와전된 것이다. 대체 어디서 이런 숫자가 나왔을까?

와전된 통계의 연원을 추적하다 보면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미국의 가족 기업 연구자인 존 워드는 1987년에 펴낸 책(Keeping the Family Business Healthy)에서 일리노이주 제조업체 중 무작위로 추출한 200개사의 분석 결과를 소개했다. 그는 1924년에 이미 설립한 지 5년이 더 되고 종업원이 스무 명을 넘는 기업들이 60년 후에 어떻게 됐는지 조사했다.

그는 책 머리에 이렇게 썼다. ‘성공적인 가족 기업 중 13%만이 세 세대를 거쳐 살아남았고 두 번째 세대를 넘어 살아남은 기업은 3분의 2에 못 미친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으면 세 세대를 ‘거쳐(through)’ 살아남은 기업은 적어도 90년을 생존하는 셈이다. (물론 월마트의 경우처럼 창업자가 초기부터 아들과 함께 일하면 2세대로 넘어가는 데 30년이 안 걸린다. 하지만 존 워드의 분석에서는 30년 단위로 끊어서 세대를 구분했다.) 이 통계를 인용하는 이들은 흔히 세 번째 세대에 ‘이르기까지(to)’ 살아남은 기업이 13%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단어 하나가 와전되면서 30년이 줄어든 것이다.

‘살아남은’ 기업이라는 말도 오해를 불렀다. 가족 기업을 팔거나 공개한 경우 창업자 가족이 계속 통제하지 않더라도 ‘살아남지 못하고 죽은’ 기업은 아니다. 시장과 기술 변화로 창업 초기의 주력 사업을 접고 새로운 분야에서 성장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존 워드의 분석은 표본이 작고 업종과 지역, 시기 면에서 온갖 편향을 지니는 것이었다. 숱한 오해와 와전에도 불구하고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그 어설픈 숫자가 여전히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가족 기업의 생존율이나 지속가능성에 관한 믿을 만한 통계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들은 분석하기가 더 힘들다. 중소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말 조사 대상 70만 개 기업 중 설립 후 50년이 넘은 장수기업은 0.23%(1629개사)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가족 기업의 경우 부자 삼대 못 간다는 오랜 속설이 맞을지 틀릴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대부분 기업의 업력이 너무 짧다. 믿을 만한 통계도 부족하다. 그러나 가족 기업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경영권 승계는 이미 눈앞에 닥친 일이다. 97% 가까운 기업의 업력이 30년이 채 안 되므로 세대교체 문제는 먼 훗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기업 넷 중 하나는 대표자의 나이가 60세 이상이다. 50년 이상 장수기업의 경우 대표자가 60~70대인 경우가 절반이나 된다.

성공적인 가족 기업은 성공적인 가족이 만든다. 어느 기업이 3대 가설의 반례가 될지는 먼저 그 가족을 들여다봐야 알 수 있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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