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적자에도 낮은 산업용 전기료 소명하지 못한 듯"
대선 앞둔 바이든 행정부 업계 눈치보기…대응책도 불투명

포항제철소 제 3부두에서 철강제품을 선적하는 모습.
포항제철소 제 3부두에서 철강제품을 선적하는 모습.

미국이 우리나라 철강업계에 7년 만에 다시 제기한 ‘값싼 전기료’ 논란을 이번엔 쉽게 넘기지 못하는 분위기다. 올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한국전력이 낮은 산업용 전기료에 대해 제대로 소명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이달 5일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의 후판에 대해 1.1%의 상계관세를 부과한데 이어 포스코의 후판과 냉연, 열연 제품에 대해서도 관세 부과를 위해 심의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과거에도 전기료를 이유로 관세를 부과하려 했던 시도가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한전의 대규모 적자에도 산업용 전기료가 낮은 이유에 대해 소명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8월 미국은 국산 철강제품에 최고 61%의 반덤핑과 상계관세를 물었다. 하지만 미국 국제무역법원이 한국의 전기요금이 보조금과 같은 특혜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후 업계에서는 미국이 산업용 전기료를 이유로 다시 억지를 부리기는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다.

한전은 2014년 5조원을 넘어 2015년 11조원, 2016년 12조원에 이르는 영업이익을 기록했었다. 하지만 2021년에는 5조8464억원, 2022년에는 32조6551억원, 올해 상반기는 8조4499억원 적자를 보이고 있다.

올해 1월 OECD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료는 MWh당 94.8달러로 조사 대상 34개국 중 12번째로 낮으며 미국 68.3달러보다는 높다. 또 대규모 적자를 보기 시작한 2021년 kWh당 105.48원에서 2022년 118.66원, 올해 상반기 146.79원으로 산업용 전기료를 올렸지만, 적자 규모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 판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EU와 일본은 관세 조치를 풀어 줬고,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난 중간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편을 들었던 미국 철강협회의 눈치를 보면 우리나라는 관세를 피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4월 1조 달러(약 1235조원) 규모 공공 인프라 지원 예산을 미국산 자재에 한해 지출을 허용한다는 권고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 당시 EU와 일본은 철강 제품에 대해 25%의 고율 관세를 선택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5~2017년 연평균 대미 철강 수출 물량의 70%인 263만 톤만 수출하는 쿼터제를 선택했다.

미국은 2021년 10월 EU가 고율의 보복관세 부과를 중단하는 것을 조건으로 저율할당관세(TRQ) 방식의 합의를 도출했다. 이를 통해 EU는 쿼터제를 적용받는 330만 톤을 포함해 430만 톤이 25% 관세를 적용 받지 않고 수출 가능해졌다.

이어 일본과는 지난해 2월 8일 연간 125만 톤에 대해 현재 적용하는 25% 관세를 철폐하고, 이를 넘어선 물량에 대해서는 25% 관세를 매기는 저율할당관세를 적용하기로 합의했다. 또 3월에는 영국과 대미 수출 물량 중 연간 50만 톤에 대해 무관세 혜택을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쿼터제를 선택했던 우리나라로서는 협상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관세까지 더해진 모습이다. 지난해 초 우리나라를 방문한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한국과의 철강 관세 재협상 의사에 대해 "한국은 철강 수입 관세 조치의 혜택을 가장 먼저 확보한 국가 중 하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며 "쿼터제를 통해 이미 한국산 철강 제품 일부에 대해 면세 수입을 허용하고 있으며, 한국은 다른 많은 국가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고 이미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연 초 미국 내 인프라 투자와 리쇼어링 등에 따른 철강 수요 증가 기대감에 올랐던 미국 철강가격이 2분기부터 떨어지고 있는 점도 관세 협상에 좋지 않다. 올해 초 미국 열연 강판 가격은 톤당 1000 달러를 돌파했지만, 최근 700달러 초반 대까지 낮아진 상태다.

우리나라로서는 대응책이 마땅치 않다. 업계 관계자는 "철강 관세 때문에 산업용 전기료를 올리는 건 전체 산업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힘들어 보인다"며 "철강 업계로서는 한전의 적자가 문제가 된 만큼 사실 이렇다 할 대응책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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