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오곡백과가 무르익은 들녘이 풍성하다. 검붉고 진노랑으로 물드는 산자락 나뭇잎들이 자꾸 말을 걸어온다. 그대, 이 가을에 수확할 사랑은 잘 여물어 가고 있는가. 이런 가을 사랑은, 유정음수포(有情飮水飽)라고 하면 좋으리라. 사랑을 하면 물만 마셔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다. 즉, 연애할 때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만 봐도 좋다는 뜻. 쪽빛 하늘 금빛 들녘 차오르는 날들이 이런 날이 아니랴. 1979년 중동 건설 붐이 한창이던 시절,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로 데뷔한 현숙이 이런 사랑 노래를 절창했다. 정현숙 작사 김동찬 작곡의 <확실합니다>, 사랑의 콩깍지가 낀 노래다.

알짜배기 진짜배기 / 내 사랑이 확실합니다 / 확실합니다 확실합니다 / 당신이 확실합니다 / 알짜배기 진짜배기 / 내 손발이 되어 줄 사람 / 당신은 엔돌핀 내 인생 에너지야 / 미쳤나 봐 사랑하면 / 비바람도 눈보라도 / 자장가로 들려 / 당신과 함께라서 / 난 너무 행복해 / 사랑합니다 좋아합니다 / 당신을 사랑합니다 / 별도 달도 따다 줄 사람 / 내 사랑이 확실합니다.

누가 이런 사랑을 마다하랴. 통속적인 노랫말이지만 현실 속에서는 찾기 어려운 나의 반쪽이다. 이 노래 작사가 정현숙은 가수 현숙의 본명이다. 이 노래의 메시지는, 당신은 진짜배기 내 인생 에너지, 내 손발이 되어 줄 사람이다. 여기서 당신은 사랑하는 연인이기도 하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대중들이기도 하다. 당신은 내 손발이 되어 줄 사람, 나의 엔돌핀~.

그렇다. 사랑에 빠지면 비바람 눈보라도 자장가로 들린단다. 하지만 현숙은 이런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는, 사랑에 빠질 겨를이 없었다. 부모님 간병(看病)을 연애보다 우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숙을 효녀가수라고 하는 것이다. 현숙은 여러 방송매체에 출연하여, 좋은 피앙새가 나타나면 언제라도 결혼할 것이라고 말했었지만, 이 또한 여의치가 않은가 보다. 풍성한 올해의 10월이 가기 전에 현숙을 바라보는 콩깍지가 낀, 백마를 탄 기사(騎士)가 황금벌판을 달려오기를 기원한다.

현숙은 평소 나폴레옹의,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다는 말을 좋아할 만큼 긍정 마인드 소유자다. <확실합니다> 노래 멜로디 도입부는 힘찬 팡파레로 희망을, 전반적으로는 폴카 리듬을 얽어서 생동감을 넘치게 했다. 작곡가 김동찬이 현숙의 창법을 고려하여 엮었단다. 가락은 단순 반복, 가사도 중복이다. 유행가로서의 중독성을 얽은 시도다. <확실합니다> 노래는 2005년 장윤정이 부른 <사랑의 콩깎지>와 같은 맥락의 노래다. ‘사랑의 콩깍지 씌여 버렸어/ 나는 나는 어쩌면 좋아~’ 직설적인 노랫말이 현실 속 남녀의 사랑 빨랫줄에 결려서 펄럭거리는 감흥이다.

사랑의 콩깍지 시조(始祖)라고 할 수 있는, 춘추전국시대의 미인 서시는 양귀비와 더불어 동양에서 미인의 대명사로 일컫는 여자였다. 경국지색(傾國之色), 임금이 반하여 나라가 흔들려도 모를 지경의 미인. 그녀의 본명은 시이광(施夷光)이다. 저라산 출신으로 오나라에 패망한 월왕 구천의 충신 범려가 서시를, 호색가인 오왕 부차에게 바쳐, 서시의 미색에 빠져 정치를 태만하게 한 부차를 마침내 멸망시켰다고도 전해진다.

이때 범려는 서시와 함께 정단이라는 미녀도 바쳤으나, 부차는 정단보다 서시를 더 총애했다. 그 일로 인해 정단은 상사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범려 눈에 정단의 콩깍지가 씌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행가는 춘추전국시대로부터 21세기 미인들까지 한 줄에 꿜 수가 있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노랫말의 모티브로 등장한, 연산군의 후궁 장녹수와 중종 임금 시대의 기생 진랑 명월이 황진이도, 이 반열에 놓을 수가 있는 역사 속의 실존 인물이다. 전미경의 <장녹수>와 박상철의 <황진이>가 우리나라의 서시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니 인류 7천 년 역사나, 우리나라 근현대사 100년을 유행가 한 곡조에 얽을 수가 있다. 기승전결로 얽어 3~4분 안에 허공중에 날려 보낼 수가 있다. 유행가 노랫말은 악보가 그려진 종이 위에 눌러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허공중에 명멸(明滅)하는 감흥의 깃발이다. 그러니 역사의 마디를 얽은 유행가만큼 확실한 서사가 어디 있겠는가. 내 인생의 앤돌핀이 되는 사랑의 반쪽도 인생사의 확실한 좌표다. <확실합니다> 노랫말을 이어간다.

알짜배기 진짜배기 / 내 사랑이 확실합니다 / 확실합니다 확실합니다 / 당신이 확실합니다 / 알짜배기 진짜배기 / 내 손발이 되어 줄 사람 / 당신은 엔돌핀 내 인생 에너지야 / 미쳤나 봐 사랑하면 비바람도 / 눈보라도 자장가로 들려 / 당신과 함께라서 난 너무 행복해 / 사랑합니다 좋아합니다 / 당신을 사랑합니다.

현숙의 목청에 엔돌핀 에너지가 카랑거리도록 곡을 얽은 작곡가 김동찬은 1949년 부여에서 출생하여 부여고를 졸업하였으며, 어린 시절 가수의 꿈을 안고 성장했다. 1968년 21세에 서울로 와서 한양스튜디오에서 일을 했으며, 그 시절 그는 수세미 장사도 해보고, 막노동판에서 등짐도 졌으며, 산꼭대기 판자촌에서 살면서 공동변소를 이용하고 물을 길어 먹으며 살았다.

그러던 중 동아방송에 입사했고, 동아방송이 KBS와 통합되면서 KBS 직원이 되었다. 이후 KBS 음향효과 팀에서 뼈가 굵어져 사령탑인 음향감독까지 역임하면서 <용의 눈물>, <전설의 고향>, <무인시대>, <장희빈> 등 대역작의 음향효과를 연출하였고, 지난 2008년 퇴임하여 작사 작곡가로 인생의 대미를 엮어가고 있다.

그는 송대관의 <네박자>, 현철의 <봉선화 연정>·<사랑의 이름표> 등을 만든 에피소드를 비롯한 자신의 40년 음악 인생을 정리한 책, 『기·똥·찬 사나이 김동찬의 네박자, 둥지 그리고 봉선화 연정』을 출판했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 여정에서 트로트의 부활 바람결에 영향을 미친 기록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틈틈이 써오던 노랫말에 얽힌 뒷얘기를 담았으며, 자신이 쓴 히트곡을 송대관·현철·태진아·남진·하춘화 등 가수별로 분류해 숨은 스토리를 얽었다. 이 책에서 그는 송대관이 부른 <네박자>의 원래 제목이 <뽕짝>이었는데, 음반 취입을 하면서 송대관과 PD들의 제안을 고려하여 이름을 바꿨단다.

현숙은 1959년 김제 출생 정현숙 12남매 중에서 11번째다. 그녀는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 <정말로>, <포장마차>, <건곤감리 청홍백>, <사랑하는 영자씨>, <요즘여자 요즘남자>, <오빠는 잘 있단다>, <춤추는 탬버린>, <내 인생에 박수>, <이별 없는 부산정거장>, <김치볶음밥> 등으로 대중들과 소통하다가 <확실합니다>를 신곡으로 내놓았다.

그녀는 데뷔 1년 전 성남으로 이주, 순창 출신 작곡가 임종수의 스카우트로 데뷔하였다. 데뷔 전 부른 노래는 1976년 <끓고 있네>이다. 그녀의 인기 터닝포인터는 1995년 KBS 휴먼다큐멘터리 《사람과 사람들》에서 병환 중의 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본인(현숙) 이야기가 방송되며, 삽입곡으로 <사랑하는 영자씨>가 나왔는데, 이를 계기로 노래가 히트됐다. 김제여고를 졸업한 그녀는 발랄하고 밝은 얼굴로, 여러 곳의 홍보대사를 많이 했다. 그녀와 동갑내기(돼지띠) 연예인은 김연자·이무송·이문세·김흥국·이성미·최일화·이충희 등이다.

대중들이 노래에 광분하며, 분(憤)과 통(痛)과 한(恨)을 흥(興)으로 발산하는 것은, 노래는 세상과 통한다는 유행가의 본질을 방증한다. 중국 고서 『예기』에, 노래는 세상과 통한다고 하면서 치세 락(樂), 난세 분(憤), 망국 탄(嘆)이라 했다. 평안한 시대에는 즐거운 노래, 난세에는 분통 터지는 노래, 망국 상황에서는 탄식의 노래가 불린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 속에서 미인 서시(西施)가 나온단다. 남녀 간 사랑의 눈총은 제 눈이 안경이고, 그 초점에 맞게 서로의 가슴팍이 정조준된다. 눈꺼풀에 콩깍지가 끼었다는 말과 통한다. 현숙을 서시로 바라볼 콩깍지 낀 기사여 어서 출현하시라~.

붉고 노란 단풍이 자꾸 말을 걸어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황홀함이 펼쳐지는 이 계절의 끝자락에, 효녀 가수 현숙이 피앙새를 만났다는 소식이 깃발처럼 펄럭거리기를 앙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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