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칼럼니스트
장경덕 칼럼니스트

2023년 4월 24일 일본 야마구치현 2선거구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기시 노부치요(31)는 기시 노부오 전 방위상의 맏아들이다. 기시 노부오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친동생이다. 그는 외삼촌의 양자로 들어가 아베가 아닌 기시 성을 가졌다. A급 전범이었다가 총리가 된 기시 노부스케가 외조부다. 핵무기는 만들지도 갖지도 들여오지도 않겠다고 선언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는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이다. 아버지가 사토 가의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성이 달라졌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양자입적 사례는 헤아릴 수도 없다. 이토 히로부미는 아버지가 하급 무사 이토 집안의 양자가 되면서 성을 바꾸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정략적으로 양자가 되기도 하고 양자를 들이기도 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에서 중국과 대조적으로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핏줄이 다른 이를 양자로 삼는 관행이 광범위하고 쉽게 이뤄졌다고 썼다. 가부장의 자리는 보통 맏아들에게 물려준다. 하지만 맏아들의 ‘역할’은 적법한 양자로 입적만 되면 가족 밖의 누구에게도 맡길 수 있었다. 가업을 물려줄 아들이 없거나 아들의 능력이 없을 때 가장 흔하게 쓰는 방식은 사위를 얻어 집안의 성을 따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가산을 물려받고 그 집안의 핏줄과 다름없는 대접을 받았다.

게으르고 무능한 아들을 제치고 낯선 이에게 가장의 자리를 물려주는 관행은 메이지유신(1868~1889) 이전의 전근대 사회에서 더 흔했다. 친아들을 제치고 후계자를 입양하는 사례는 상인과 사무라이 계층에 특히 많았다. 전쟁(혹은 경제전쟁)에서 살아남는 일이 더 절박하고 물려줄 자산도 많은 계층이었다. 후쿠야마가 인용한 연구들은 후계자 입양 비율을 25~34%로 추정하기도 했다(제인 M. 배크닉, 1983; 존 C. 펠젤, 1970). 사무라이 가문의 입양 비율은 17세기 26%에서 18세기 36%, 19세기 39%로 높아졌다(R.A. 무어, 1970). 적어도 서너 집 중 한 집은 입양된 후계자가 가업을 이었다는 말이다.

재산을 아들 형제들에게 같이 나눠주었던 중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14~16세기 무로마치 시대부터 장자에게 몰아주는 전통이 굳어졌다. 잉글랜드와 유럽의 지주들의 장자상속(혹은 한사상속)처럼 가산이 흩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가족의 사업을 물려받은 장자는 동생들이 사업을 거들거나 독립하도록 도와줄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재산을 나눠줘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1400년 넘게 명맥을 이어온 곤고구미(金剛組)도 장자상속의 전통을 따랐다. 여기서 잠시 이 최장수기업의 역사를 훑어보자.

6세기 오사카의 시텐노지(四天王寺) 건축(578~593)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들은 유중광(柳重光)을 비롯한 백제의 장인들이었다고 한다. 곤고 시게미쓰(金剛重光)라는 이름을 쓰게 된 그가 목조 건축과 보수를 위한 장인 집단을 꾸린 것이 이 가족 기업의 시초로 알려졌다. 곤고구미는 전화로 무너진 시텐노지와 오사카성의 보수에서 전문성을 발휘했다. 이 절의 목탑은 도쿠가와 시대의 내전, 화재와 태풍, 2차 세계대전의 공습을 겪으며 여러 차례 재건을 거쳤는데 그때마다 곤고 가의 기술력이 동원됐다.

에도 시대(1603~1868)에 곤고구미는 사찰 건축을 놓고 다른 집단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럴수록 가장 기술력이 뛰어나고 지도력을 갖춘 지도자를 찾아야 했다. 장자라도 자질이 없으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 1930년대 세계적인 불황기에는 일거리가 없었다. 37대 당주 곤고 하루카즈는 회사의 어려움에 책임을 느끼고 조상의 제단에서 할복하고 말았다. 그는 아들을 남기지 않았으므로 가업은 부인이 이었다. 그다음에는 막내딸과 결혼한 데릴사위 도시타카를 후계자 삼았다.

그의 아들 마스카즈는 1970년대에 UCLA와 캘리포니아주립 공대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빚을 내 아파트와 빌딩을 지으며 사업을 확장하다 일본경제의 거품이 꺼지자 경영난에 빠졌다. 곤고구미는 결국 2006년 오사카의 다른 건설사 다카마쓰에 인수되면서 곤고 가의 가족 기업으로서는 막을 내렸다. 인수자는 곤고의 오라를 지키려 사명을 살려놓았다. 2020년 말 니케이비즈니스는 마사카즈의 딸이 곤고 가문에서는 유일하게 함께 일하며 41대 당주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곤고구미는 오랜 가업 승계의 역사에서 핏줄과 능력을 함께 고려했다. 일본 장수기업들은 흔히 후계자가 될 아들이 없거나 실망스러울 때 딸을 재능 있는 남성과 결혼시켰다. ‘아들은 고를 수 없어도 사위는 고를 수 있다’라는 말도 있었다. 핏줄이 다른 외부인을 아예 아들로 들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양자나 데릴사위 관행은 지구촌에서 흔치 않다. 다른 나라 가족 기업들은 피라미드 같은 지배구조를 만들거나,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하거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쪽을 택했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21세기 자본』 『좁은 회랑』 등을 옮겼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